기꺼이 존중받아야 하는 사람
[한겨레 esc ] 이우성의 좋아서 하는 인터뷰
‘섀도 오브젝트’ 전시회 공동 기획한 독립기획자 구정연
의류 브랜드 ‘코스’(COS)가 서울 강남 청담동에 매장을 열었다. 왜 갑자기 옷 얘기냐고? 이곳 4층에서 김영나와 구정연이 기획한 전시 ‘섀도 오브젝트’가 열린다. 단어로만 번역하면 ‘그림자 사물들’이다. 그래픽디자이너 김영나와 독립 기획자 구정연이 공동 기획했다. 우선 김영나에 대해 설명할 필요가 있다. ‘디자인’에 관심이 있거나, 관련된 일을 해온 사람이라면 <그래픽>(GRAPHIC)이란 잡지를 알 거다. 나는 이 잡지가 대한민국의 디자인 전반을 온전하고 우아한 방식으로 기록한 드문 사례라고 생각한다. 디자이너라면 누구나 아름다움과 실용성을 중요하게 여긴다. 디자인은 그렇게 완성된다. 그런데 그것을 다시 잡지라는 방식, 즉 종이를 매개로 소개할 때 아름다움과 실용성이 온전히 전달될까? 쉽지 않다. 종이는 평면이다. 평면 위에 디자인 제품(혹은 프로젝트)을 다시 디자인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래픽>의 디자이너는 김영나였고, 그는 <그래픽>을 디자인을 읽어내는 잡지로 만들었다. 그는 이 ‘신’의 품격을 몇 단계 높였다. 지금은 미국 뉴욕에 머물며 작품들을 구상하고 있다.
구정연은 5년 전 독립 공간 ‘더 북 소사이어티’를 만들었다. 훗날 누군가 대한민국 서울의 문화사를 기록한다면 ‘구정연’이라는 이름을 강조해서 적어야 한다. 구정연은 더 북 소사이어티를 통해 서울의 지형을 바꿨다. 더 북 소사이어티는 독립 출판물을 판매하는 서점이다. 이렇게만 설명하면 평가절하다. 물론 이곳에선 세계 여러 곳의 독립 출판물들, 특히 디자인, 미술, 건축에 관한 서적을 볼 수 있다. ‘디자인, 미술, 건축’은 뭉뚱그려 표현한 것이다. 관련 없는 책도 있다. 그런 책조차 마치 ‘디자인, 미술, 건축’에 관한 책처럼 보인다. 왜냐하면 이곳에 있는 책들은 시각적으로 잘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구정연은 이를테면 수많은 책 가운데, 시각적으로 돋보이는 책을 골라 더 북 소사이어티에 ‘전시’하는 것이다. 나는 그가 ‘책 큐레이터’라고 생각한다. 더 북 소사이어티엔 당연히 <그래픽>도 있다.
이곳에 있는 책들은 대부분 개인이 만든 독립 출판물이다. 하지만 그런 책들만 판매하는 것은 아니다. 구정연이 책을 고르는 기준은, 과연 이 책이 대형 서점에서 살 수 없는 가치를 지니고 있는가이다. 지금 서울엔 30개가 넘는 독립 서점들이 있다. 구정연이 이 공간을 만들 당시에는 ‘독립 서점’이라는 말조차 낯설었다. 지난 5년 사이 독립 출판물을 만드는 사람들도 늘었다. 나는 감히 이것이 민주주의 발전이라고 생각하는데, 더 북 소사이어티 같은 공간이 없었다면 가능했을까? 대형 서점에선 독립 출판물을 판매하지 않는다. 이유? 돈이 안 되니까.
“원하는 일을 하려면 희생을 감수하긴 해야죠. 공간을 운영하기 위해 여러 활동을 하고 있어요. 전시 기획을 하고, 출판물 편집도 해요. 디자인 관련 서적을 모아서 보관하려는 분들이 계시면 책도 소개해드리고요.” 책이 전시물이 될 수 있다는 인식은 이제 보편적이다. 미술관이 운영하는 카페, 기업의 휴식 공간 등에 책들이 진열되어 있다. 책의 가치가 활자 언어에 의해서만 결정되는 것은 아니라는 인식, 이것은 의심할 바 없이 책의 확장이다. 나는 이 흐름을 구정연이 혼자 이끌어왔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구정연이 큰 역할을 했다는 것은 사실이다. “아트북을 취급하는 해외의 문화 공간과 계속 교류를 해왔어요. 그러다가 2010년에 더 북 소사이어티를 열었어요. 이 공간이 누군가에게 영향을 주었을 거라는 생각을 조금은 해요.” 그러나 그의 고민은 깊다. “언제까지 운영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어요. 10년은 하고 싶었는데, 과연 할 수 있을지. 최근에 프랑스 파리에 갔다가, 더 북 소사이어티와 비슷한 공간을 운영하는 분을 만났어요. 7년째 하고 계시대요. 그분도 고민하시더라고요. 계속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이것이 단순히 돈에 대한 고민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대안 공간’이라는 게 있다. 2010년을 넘어서면서 자주 등장하는 표현이다. 말 그대로 대안이 되는 공간이라는 뜻이다. 대안 공간에선 상업 갤러리, 대형 미술관이 구현할 수 없는 전시가 열린다. 젊은 작가들이 활동할 수 있는 공간이 생긴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공간이 이제 꽤 많다. 여전히 이것을 대안 공간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대안’의 새로운 방식을 고민할 순간이 찾아온 것이다. 더 북 소사이어티도 대안 공간이다. 대형 출판사에서 할 수 없는 일들을 해왔다.
“책을 통해 좋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어요. 책은 사람들을 불러들이니까. 그리고 함께 책을 만들면서 다양한 협업을 했어요. 책이 매개체가 된 거예요.” 무엇보다 이곳은 서점을 넘어선다. “책을 매개로 문화예술 프로그램도 운영해왔어요. 전시도 하고, 세미나도 하고, 워크숍도 개최하고….” 그는 말끝을 흐리더니 말을 이었다. “그런데 이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아이디어가 있으면 주세요.” 나는 정말 무슨 말이든 해주고 싶었다.
구정연과 김영나는 결국 만나야 할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김영나는 책 속에 공간을 생성한다. 그는 그것이 북 디자인이라고 믿는다. 구정연은 그 책을 다시 공간에 전시한다. 그는 그것이 사람과 관계 맺는 일이라고 믿는다.
구정연과 김영나가 기획한 전시 ‘섀도 오브젝트’는 사람과 사물은 어떻게 관계를 맺는지 새삼 생각하게 한다. 자, 우리는 의자를 어떻게 사용하는가? 탁자를 어떻게 사용하는가? 책을 어떻게 사용하는가? 두 명의 기획자, 그리고 참여하는 작가들은 새로운 사용법을 소개한다. 관객은 그 사용법을 읽거나 보고, 각자의 새로운 사용법을 상상해볼 수 있다. 사진과 글 그리고 사물이 조화를 이룬 전시다. 미술관 벽은 하얗고 창에서 빛이 들어온다. 오후에 한 권의 책을 읽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곳에 서 있으면 사물의 그림자와 내 그림자가 수시로 겹쳐진다. 그림자에 체온이 있었나. 따뜻하다.
어느날 지하철 6호선 상수역 부근을 걸어가다 한 공간에 들어갔다. 서점처럼 보였지만 서점 같지 않았다. 그곳엔 내가 경험하지 못한 책들이 투박하게 진열돼 있었다. 정리 안 한 거실 책꽂이 같기도 했다. 따뜻했다. 결이 고운 옷을 입은 것처럼. 나는 조금, 특별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안의 책들처럼. 계절이 몇 번 바뀐 후에 그곳이 더 북 소사이어티라는 것을 알았다. 지금 더 북 소사이어티는 종로구 서촌에 있다.
이우성 시인
:
이 글 때문에 슬픈 며칠을 보냈다.
일민미술관 함영준 큐레이터가 이 글을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렸다.
디스...라고 표현해도부당하지 않다.
핵심은 '그래픽 디자인이 뭔지, 시각 문화 기반의 책 만들기가 뭔지 개뿔도 모르면서 어디로 주워 들은 말로 부정확한 수사를 잔뜩 붙인다. 디자인을 인쇄된 지면에 옮기는 게 어쩌구 하는 소리나 하고'
라는 문장이랑
'대안공간이 2010년 넘어서 인구에 회자되는 개념이라고...?'
이 문장이다.
나 패션 잡지 11년 만들었다.
그래픽 디자인을 얼마나 알아야 안다고 할 수 있을까?
시각 문화의 책 만들기를 얼마나 더 해야 개뿔만큼이라도 알까?
'인구에 회자'된다는 게 무슨 뜻인지 그 큐레이터에게 국어 사전 찾아보라고 해야하나?
(하지만 그의 지적은 분명히 옳다!)
뒤이어 '왜 모르는 걸 안다고 생각할까. 왜 꼭 무식 커밍아웃을 하려는 걸까' 라는 문장이 붙는다.
이딴 반응을 읽어야 하니 기분이 나빴지만, 그의 마음을 이해한다. 충분히 저렇게 말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는 나보다 훨씬 많이 알 거다. 큐레이터니까. 그래픽 디자인에 관해서도 많이 알 거다.
시각 문화의 책 만들기가 뭔지는 내가 그 사람보다 적게 알지는... 않을 것 같지만.
내가 뭘 잘 모르면서 아는 척 한 것 같기는 하다. 겸손해야 하는 데 그러지 못했다.
맞아, 그거... 내가 잘못했어. 기분 나빠도... 어쩔 수 없지...
그 큐레이터가 쓴 글의 마지막은 이렇다.
'뭔가 했더니 아... '시인'이셔서...'
뭔가... 라... 나 사물이야?
그가 사람을 존중하는 큐레이터가 되면 좋겠다.
그가 한 작업들을 좋아했다. 특히 커먼센터... 공간을 점유하고, 그것을 구성하는 방식,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내가 '시인'이셔서, 라고 무시당하기엔,
너 님의 인격이 쓰레기다.
인터뷰에 거론한 구정연 대표와 김영나 작가는 함영준과 아는 사이다.
나는 아주 주관적이고 개인적이고 편협한 애라서,
만약에 내가 아는 사람이 기사에 나오면, 그 기사를 못 씹을 것 같다.
나는 이런 놈이니까.
음, 그래서 그렇게 씹혔구만.
함영준 큐레이터 페이스북은 비공개다.
친구신청을 했으나 답이 없다.
그의 친구가 되기에 나는 너무 무식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