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지 순례 - 코롬방제과의 기억
1. 2015
빵집이 아니었으면 지금까지도 가 보지 못했을 것 같은 도시가 몇 있다. 특히 나에게는 미지의 세계와도 같은 전라도 지역, 특히 남도 지역의 빵집들인데, 대표적인 도시인 광주는 오로지 전국 5대 빵집 중 하나라고 이름 날렸던 궁전제과에 팔고 있는 공룡알 빵과 나비 파이를 영접하기 위해 내일로 여행 중 들른 적이 있다. 좀처럼 갈 기회가 없어 어렵게 찾아간 빵집이니 아껴먹으려고 순천의 한 게스트하우스 냉장고에 넣어 놓았는데, 다음날 도둑맞았다. 그 후로 한 번도 광주에 가지 못했다. 빵지 순례를 했으나 빵을 먹지는 못했다.
그 후로도 이어진 빵지 순례 중에서 미지의 세계에 있는 목포의 코롬방 제과가 목표물에 들어왔다. 목포는 태어나서 한 번도 가 보지 않은 도시로, 크림치즈 바게트와 새우 바게트가 그렇게 유명하다는 오래된 빵집이 있는 도시가 궁금해졌다. 그때는 대학을 갓 졸업하고 서울에 남아 있으면서 뜨거운 여름에 불안정한 주거 문제를 겪으면서 어느 곳에 마음 둘 곳 없는 취업 준비 생활을 이어나가고 있었는데, 이제는 방학이 있는 것도, 휴가가 있는 것도 아니지만 어디론가 떠나고 싶다는 열망이 간절했다.
제주 유학시절 사귄 여행 친구와 목포에서 만나기로 하고 낯선 호남선 센트럴시티 터미널에서 버스를 타고 목포로 내려갔다. 목포에서 느껴지는 항구도시의 냄새. 그나마 부산에서 자주 갈 수 있었던 여수의 느낌과 비슷했다. 자주 보이는 건 낙지와 장어, 그리고 가까운 영암에서 온 무화과들. 목포역 앞 시내의 분위기는 속초의 로데오 거리를 연상시켰다.
목포에 무려 1박 2일이라는 계획으로 내려와 가장 먼저 수산시장 근처에서 낙지볶음을 저녁으로 해결했다. 목포 낙지집에서 생전 처음 봤던 메뉴인 무안산 낙지 호롱 구이가 개당 만원이나 하는 걸 백수는 그저 바라만 보았다. 너무 궁금했지만 선뜻 주문할 수 없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러고 나서 우리는 목포의 새로운 명물 바다분수를 보러 갔다. 부산 다대포의 낙조분수는 한 번도 본 적이 없지만 바다분수는 그만큼 멋있었다. 그리고 다음 날 목포의 천연기념물 갓바위를 구경하고 코롬방제과 뒤에 있는 유달산에 올라갔는데, 한 여름이어서 그런지 불쾌지수가 높아 짜증이 만연했다. 무려 서울을 탈출해서 낯선 도시에서 새로운 경험을 하고 있음에도 말이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때 가지고 있던 취업에 대한 마음속의 불안감으로 인해 여행이 불편하지 않았나 한다.
뙤약볕이 내리쬐는 시간에 들어간 코롬방제과는 이름이 주는 레트로한 멋에서도 그렇듯이 여기에 아주 오래 있었어요 하는 느낌이 물씬 났다. 당시로서는 개당 가격이 만만치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가장 유명한 바게트 두 개를 사서 2층에 올라가 90년대 스타일의 밀크셰이크와 함께 먹었는데, 맛 평가는 둘째치고 드디어 빵지 순례에 성공했다는 안도감이 먼저 들었다. 그때의 나는 그렇게 빵지 순례에 대한 사명감이 투철했다. 자갈치 과자 맛과 비슷한 듯 안 비슷한 듯 맛은 짭조름하지만 새우 바게트가 더 나은 것 같기도 하고, 짠맛의 빵을 싫어하는 내 취향으로는 크림치즈가 더 나은 것 같기도 하고, 그렇게 목포에 온 본연의 임무를 완수했다. 이 시기의 빵지 순례는 그곳의 빵 맛이 궁금한 게 아니라 가 보았다는 경험이 나에게 훈장처럼 여겨졌을 때였다.
2. 2017
두 번째 코롬방제과는 일을 시작하고 나서, 가장 일이 재미있을 시절에 다녀왔다. 가을의 선선한 날씨 속에서 전라도에서 배추밭과 오래된 가옥을 찾아다니던 프로젝트를 했을 때였다. 충청도의 바닷가 마을에서 김 양식장을 찾고 예산의 전통 한정식집에 갔다가 전라도 고추장마을의 장독대를 찾아다니고 강진을 거쳐 마지막으로는 해남까지 내려가 배추밭과 김 양식장을 돌고 목포에 잠시 들른 후 나주를 거쳐 서울로 올라왔던 일정이었다. 이런 지방 출장의 묘미는 일을 하면서 그 지역의 맛집과 명소에 가 볼 수 있다는 것인데, 목포로 넘어가야 했던 날 돌아가더라도 코롬방제과에 들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뇌리를 스쳐갔다. 그래 봤자 몇 분 돌아가는 건데 일정에 큰 무리가 없을 듯싶었다.
두 번째로 방문한 코롬방제과에서 2년 만에 똑같은 바게트를 맛보았을 때, 그때의 맛은 왜 그렇게 뚜렷했는지, 크림치즈보다는 새우가 훨씬 맛있었고, 허겁지겁 들이켜 코가 찡했던 밀크셰이크도 꿀맛이었다. 아마도 지방 출장의 부담감과 고생 속에서 이러한 일탈의 재미와 함께 빵맛이 살아난 게 아닐까. 이때의 기억 덕분에 코롬방제과는 가끔씩 생각이 난다.
전국 5대 빵집이라는 유명세에 힘입어 자본의 유입과 함께 빵집들이 오래된 역사에도 불구하고 로고를 새롭게 만든다거나, 인근 지역이나 다른 도시에 체인점을 만든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3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 코롬방제과를 검색해보니 가슴 아프게도 새로운 건물로 이전하여 그 명맥은 유지하되 새로운 이름으로 영업을 하고 있다고 한다. 검증이 되지는 않았지만 맛이 변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밀크셰이크도 더 이상 레트로한 컵에 담아주지 않는 모양이다. 기존에 위치해있던 코롬방제과는 '코롬방제과점'이라는 빵집으로 영업은 하고 있다. 서로 바게트를 팔면서 양쪽 모두 오리지널이라고 하니 대체 어찌 된 영문인지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전국 5대 빵집 코롬방제과에 대한 기억은 빵지 순례의 추억만으로 남겨야 할 듯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