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지 순례 - 안흥 찐빵
나는 빵을 먹기 위해 어디까지 가 보았는가
빵지 순례라고 하면 전국에 있는 오래되고 이름난 원조 빵집에 직접 가 보는 것이다. 간혹 원조 빵집이 있는 지역 중에서 그 빵이 지역의 명물로 발전하여 사람들의 발길이 닿는 곳마다 빵을 팔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경주의 경주빵, 찰보리빵이라던가 통영의 꿀빵, 천안의 호두과자 등이 있다. 원조는 물론 하나이지만 체인점부터 해서 유사업체까지 여기저기 빵집이다.
예시의 빵집들은 물론 빵으로 유명하다는 곳을 전국을 돌며 찾아 가보았지만, 빵 중에서 안흥찐빵은 찐빵에 지역명이 붙어 찐빵 하면 안흥찐빵이 바로 나올 정도로 고유명사가 되었다. 대체 안흥찐빵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를 정도로 그렇게 큰 도시도 아닌데 찐빵 하나로 어떻게 전국을 평정하게 되었는지 궁금해졌다. 그래서 찐빵의 본 고장, 안흥에 직접 찾아가 보기로 했다.
횡성, 지금에서야 서울에서 영동고속도로를 타고 강릉으로 가다 보면 지나가게 되는 곳이고, 안흥찐빵도 영동고속도로가 생기기 전 서울에서 강릉으로 넘어가는 사람들의 허기를 달래주던 찐빵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차도 없던 뚜벅이 시절 안흥찐빵의 원조를 찾아 거의 산골 오지나 다름없던 강원도 횡성군 안흥면 안흥리 찐빵마을에 갔다 왔다는 것이 나에게는 영웅담에 버금갈 정도로 빵지 순례에 대한 사명의식이 투철했다.
때는 2014년 여름 내일로 여정 중이었다. 첫 여행지 안동을 떠나 강원도 원주역에 내렸는데, 원래는 충북 제천으로 바로 가려고 했으나 강원도까지 포함해 팔도를 유랑해보자는 의지이자 찐빵마을 대탐험을 위해 원주역을 사이에 넣었다.
지금은 강릉으로 가는 KTX 횡성역이 생겼지만 그때 당시 횡성에는 기차역이 없어 버스를 타야 했는데 찐빵마을로 바로 가는 버스가 거의 없어 원주에서 횡성 시내로 버스를 타고 들어갔다. 모든 버스가 왔다 가는 횡성오거리에서 강림 방면으로 가는 2-3 버스(현재 31~34번 버스)를 1시간을 기다려서 타고 40분 정도 걸려 찐빵마을에 내렸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여기가 찐빵마을이다라고 누가 봐도 알 수 있게 바로 앞에 찐빵집이 있고 버스정류장 그림도 찐빵이고 심지어 마을 입구에 귀여운 찐빵 비석도 있다. 주변에 아무것도 없는 시골마을인데 찐빵 가게들만 늘어서 있다. 시골마을에 대학생 두 명이 내리니 버스를 같이 타고 온 할머니가 어디 가냐고 물으신다. “저희 찐빵집 가려고요”라고 대답했더니 “그럼 여기로 가”하시며 바로 앞에 있는 찐빵집에 직접 데려가셨다. 원래라면 정류장 바로 건너편에 있는 가장 먼저 시작했다는 원조집에 가려고 했으나 얼떨결에 인심 좋은 찐빵집에 들어와 버렸다. 할머니 찬스로 주인분이 시식하라며 찐빵을 하나씩 나눠줬는데, 드디어 안흥찐빵의 본고장 안흥에서 찐빵을 맛보게 되었다.
오랜 여정 끝에 찜기 한가득 찐빵을 찌고 있는 걸 보니 ‘드디어 여기까지 왔다’라는 성취감이 먼저 들었다. 그리고 흰색의 원조 안흥찐빵 말고도 다양한 색과 맛의 찐빵들을 처음 보고는 정신없이 이것저것 담아버렸다. 이날 산 찐빵을 내일로 여행 내내 물리도록 먹었다.
같이 여행 중이던 일본인 친구를 데리고 차로 가도 먼 여정인데 굽이굽이 강원도 산골로 버스를 타고 들어가 찐빵만 사 먹고 나온 것도 다시 생각해보면 웃긴 일이다. 그때의 내일로는 내가 가보고 싶었던 전국의 빵집을 다 돌았던 빵지 순례 여행이었는데, 아무 말 없이 잘 따라와 줘서 고마웠다. 분명 ‘아니 어디 갈 때마다 빵집만 가나' 했을 것이다. 그때가 있었기에 빵에 미련이 없는 지금의 내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