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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우성 Nov 19. 2018

당신을 이해하고 싶어서

이윤이의 '나타남'



골프연습장이다. 멀리서 작은 공 하나가 굴러오는 것 같은데, 점점 커지는 형태를 보니 사람이다. 여자. 평범한 여자. 여자는 왜 저기서 오는가? 저기가 어딘데? 잠깐 딴짓하다 보니 여자가 골프채로 공을 맞추고 있다. 맞은 공은 인조 잔디로 날아간다. 여자는 그렇게 계속 공을 맞춘다. 골프연습장 바닥이 경사져 있어서 날아간 공은 굴러서 다시 여자 쪽으로 오다가 사라진다. 또 딴짓하다 보니 여자가 두 명이다. 둘은 잔디로 내려가 걸어간다. 멀어진다. 한참 동안 그렇게 가고 마침내 작은 공처럼 보인다. 사라진다. 이윤이의 영상 작품 ‘샤인 힐’의 일부분이다. 둘은 어떤 사이일까?라는 질문에 답하기 위해 생뚱맞게도 이 영상은 ‘전생에 둘은 어떤 사이였을까?’라는 질문에 답한다. 황당한 사연이 밝혀진다. ‘스포’가 될 테니 여기까지.

영상이 상영되는 공간을 나오자마자 오른쪽으로 돌아 몇 걸음 가면, 가늘고 긴 녹색 조명이 걸려 있다. 그 아래 골프공이 한 개 놓여 있다. 빛의 자장 안에서 공은 마치 여기라는 낯선 세계로 이제 막 도착한 것 같다. 눈을 감았다 뜨면 다시 어딘가로 사라져 버릴 것 같다.

뒤로 돌아 전시장 입구로 가다 보면 몇 개의 설치 작품이 모여 있는 곳을 보게 된다. 동그란 기둥 형태의 작품 두 개가 눈에 띄는데 하나는 천장에 매달려 있고, 하나는 바닥을 딛고 있다. 종이나 천처럼 얇고, 그래서 입으로 불면 흔들린다. 반투명한 재질이어서 경계의 구분을 모호하게 만들어 놓은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어떤 경계? 그 자리에 원래 두 개의 원 기둥이 있었다고 한다. 전시장 내부를 리모델링하면서 제거했다. 주변을 자세히 보면 콘크리트 기둥이 있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그렇다면 기둥이 ‘돌아’ 왔다고 할 수 있을까? ‘살아’ 났다고? 

<2018 아트선재 프로젝트 #3: 이윤이 - 내담자>의 풍경은 대략 이렇다. 각각의 작품은 보이지 않는 ‘에너지’에 의해 연결돼 있다(‘힘’이라는 단어는, 왠지 부족한 것 같다). 내부에 흐르는 에너지를 곰곰이 느끼다 보면 이 에너지가 나를 어딘가로 데려갈 것 같다. 팔은 팔대로, 몸통은 몸통대로, 발은 발대로. 그런데 나는 이 전시가 전생과 후생 혹은 인연에 대해 말하고 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면, 둘은 누구일까? 둘은 ‘나’와 타자, 즉 다른 사람일 텐데, 둘은, 그러니까 우리는 왜 다투고, 왜 사랑할까? 우리는 다른 사람을 왜 이해하고, 어떻게 이해할까? 관계에서 이해만큼 중요한 가치는 없다. 우리는 영원히 누군가를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며 살아간다. 그 사람이 어디에서 왔는지, 어떤 형태로 존재했는지, 지금은 어떤 마음을 갖고 있는지 궁금한 것도 다 이해하고 싶어서다. 전시는 6월 3일까지 아트선재 프로젝트 스페이스에서 열린다. 부디 내 오독이 당신의 ‘이해’에 영향을 미치지 않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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