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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우성 Nov 17. 2018

꿈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나는 작은 잡지사에 다녔다. 아무도 나에게 뭘 가르쳐주지 않았다. 짜증 내는 사람만 있었다. 나는 말이 많은데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정확하게는, 이야기 나눌 사람이 없었다. 선배들이 무서웠고 편집장은 더 무서웠다. 나는 그들이 나빴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그들 자신이 너무 힘들게 일하고 있었기 때문에 나에게 따뜻한 말을 건넬 여유가 없었다고 말할 것이다. 이제 와서 누가 물어보지도 않겠지만. 아무튼 그랬든 저랬든 새로 누군가 왔고, 하물며 그 사람이 나처럼 어리바리하다면 당연히 무엇인가를 알려주면서 일을 시켰어야 하는 거 아닌가? 하지만 그 사람들은 화만 냈다. 첫 기획 회의를 할 때였다. 기획 아이템을 왜 이렇게 적게 내냐며 갈궜다. 회의 중에 그 얘기를 수십 번 아니 정말 수백 번 했다. 본인들도 많이 내진 않았다. 하지만 나는 막내니까 당연히 아이템을 더 많이 찾아와야 한다고 말했다. 나는 몇 개가 많은 건지 기획안을 어떻게 쓰는 건지도 몰랐다. 

그들은 나만 보면 왜 이걸 못하냐, 왜 이렇게 못하냐,라고 말했다. 그때 나는 자책했다. 그걸 못하는 나를, 그렇게 못하는 나를. 나는 늘 이렇게 말했다. “죄송합니다.” 연차가 쌓이면서 그 시절을 떠올리면 화가 난다. 못하는 게 당연했고, 그들은 나를 가르칠 의무가 있었다. 하지만 선배 중 한 명은 입버릇처럼 이런 말을 했다. “회사가 학원이니?” 

그때 나는 꿈이 있었다. 꿈? 음, 꿈이라고 할 만큼 중요하고 거대한 목표였나? 지금은 별 거 아니게 느껴지지만 당시에는 ‘꿈’이 맞았던 것 같다. 그 꿈은 <GQ>였다. <지큐 코리아>였다. 일을 정말 못하는 바보인 내가 보기에도 <지큐>는 정말 멋있었다. 잘 만든 잡지다, 라는 생각이 늘 들었다. 내가 피처에디터여서인지, 피처가 특히 마음에 들었다. 피처에디터가 5명이었는데 전부 글을 잘 써서, 읽을 때마다 기가 죽었다. 솔직히 말하면 기가 죽을 만큼 피부에 와 닿지도 않았다. 꿈이어서, 내게 너무 먼, 무엇처럼 느껴졌으니까. 그런데 그때 내가 가장 동경한 사람은 그들이 아니었다. 나는 이충걸이라는 사람을 만나고 싶었다. <지큐 코리아>의 편집장이었다. 그 똑똑한 에디터들을 모두 이끌며 <지큐>를 만드는 남자. 매달 ‘편집장의 글’만을 쓸 뿐이지만, 그 1장의 글 안에 <지큐>의 거의 모든 것을 담아내는 남자. 몇 줄만 읽어도 도대체 이런 글을 쓰는 사람은 누구야, 라는 궁금증을 갖게 하는 남자. 나는 그를 동경했다. 그래서 정확하게 말하자면, 내 꿈은 <지큐>의 피처에디터가 되는 게 아니라, 이충걸과 함께 일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나는 그것이 가능하다고 믿었다. 

다시 저 작은 잡지사에서 일하던 이야기로 돌아가자면, 나는 한 달에 30~40쪽 이상을 만들었다. 패션에디터들이야 화보 하나만 찍어도 4~6페이지는 훌쩍 채워지지만 피처에디터는 아니다. 써야 할 글이 너무 많다. 기사 수도 패션에디터들에 비해 훨씬 많다. 한 달에 15개 이상은 썼다. 신문 기자처럼 취재 다녀와서 글만 쓰는 게 아니라, 기획도 해야 하고, 사진가랑 미팅한 후 촬영 진행도 해야 하고, 물론 그 사이에 소품도 구하러 다녀야 하고, 사무실로 돌아와 기사 마감을 해야 한다. 매달 15개가 넘는 기사를 그렇게 만들어내는 게 나 정도 연차에서 가능한 건가? 아무도 도와주지 않았다. 스트레스가 심해서 얼굴에 여드름이 수십 개 난 적도 있다. 하지만 나는 늘 아침 일찍 출근하고 자정이 넘어서 집에 갔다. 그렇게 1년을 하고 나니 나름 일이 늘었다. 놀라운 변화였다. 선배들도 편집장도 나를 적당히 존중해주었다. 그러다가 여느 때처럼 시간을 내서 <지큐>를 보며 공부를 하고 있었다. 음, 이 에디터는 글을 이렇게 쓰고, 저 에디터는 글을 이렇게 쓰니까, 나는 그럼 그들과 다르게 이런 식으로 써볼까, 뭐 대략 이런 비교를 하며 잡지를 읽는 게 내 공부였다. 남들과 다른, 세상에 하나뿐인 이우성이 되고 싶었기 때문에 항상 내 좌표를 확인하고 나아갈 바를 궁리하곤 했다. 내 손으로 이렇게 적어서 낯 뜨겁지만, 뭐 그렇게 일하고 공부를 한 건 사실이니까. 암튼 그러다가 문득, ‘음, 아, <지큐>에 가도 내가 할 게 있겠는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지큐>에 있는 에디터들이 내가 생각했던 것처럼 뛰어난 사람들이라면, 언젠가 당연히 나를 스카우트해야 하는데. 나한테 그런 전화를 안 하면, 정말 바보인 건데…’ 나는 전화가 올 거라고 믿었다. 나를 알아볼 거라고, 믿었다. 그리고 전화는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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