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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우성 Nov 17. 2018

선배랑 있었던 두 가지 일



마감 때여서 밥 먹으러 나갈 시간이 없었다. 선배가 중국집에서 시켜 먹자고 해서 시켰다. 뭘 시켰는지는 기억이 안 난다. 당연히 나는 선배보다 바쁘기 때문에 선배보다 빨리 먹었다. 그대로 계속 앉아 있기도 애매하고 할 일도 많아서 먼저 일어나며 말했다. “선배, 다 드시면 부르세요. 와서 치울게요.” 선배가 나를 빤히 쳐다보며 소리를 질렀다. “내가 언제 너한테 그릇 치워달라고 했어?” 바로 죄송하다고 말했다. 뭐가 죄송한지 몰랐지만 선배가 화내니까 죄송하다고 말하는 게 당연했다. 그러고 보니 선배는 나에게 그릇을 치우라고 말한 적이 없다. 그냥 내가 치운 거지. 먹고 일어나 버리면 내가 치워야지, 누가 치우겠어? 늘 그래왔는데 왜 나한테 화를 내지? 정말로, 십 년이 훨씬 넘은 지금도, 한 달에 한두 번은 생각이 난다. 화가 나고 억울하다. 하지만 그땐 서럽고 슬펐다. 그때 나는 어떤 일에도 화가 나지 않았고 억울하지도 않았다. 지방대를 나왔고, 아무것도 모르는 바보였으니까. 

한 번은 선배 둘과 나 이렇게 셋이 저녁을 먹었다. 늘 야근을 했으니까 늘 같이 밥을 먹을 수밖에 없었다. 그때가 아마 인턴 3개월 차인가, 그랬다. 계속 그 회사에서 일하게 될지, 짤리게 될지 모를 때였다. 물론 나는 계속 일하게 되기를 고대했다. 아무튼 저녁을 먹는데, 평소처럼 선배들 눈치를 보며 조용히 밥을 먹는데, 아까 저 ‘그릇’ 선배가 화를 내며 말했다. “넌 왜 말을 안 하니?” 지금 생각하면, 뭐 만날 혼만 나고 겁먹어 있으니까 선배들에게 말하는 게 불편하고 어려웠겠지. 당연하잖아. 그런데 그때 내가 정신이 나갔었는지, 마음의 끝에서 더 밀려날 곳이 없다고 느꼈는지, 나도 모르게, 정말로 나 자신도 모르게, 이렇게 대답했다. “선배님, 저도 이런 저를 죽이고 싶어요.” 정말로 지금도 자주 그 날이 떠오른다. 왜 그렇게 처절하게 말했는지 당연히 안다. 견디고 견디고 또 견뎌도 힘들었으니까. 도대체 끝이 나지 않을 것 같은 암흑 속에 있었으니까. 

그런데 놀랍게도 그날 이후로 선배들과의 관계가 급격히 좋아졌다. 내가 정말로 죽어버릴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걸까? 정말? 응! 정말 그랬던 게 아닐까? 그때의 나를 본 사람이라면 분명히 그렇게 생각했을 거다. 아픔이 아픔을 누르고, 더 큰 아픔이 그 아픔을 누르고, 그렇게 아픔이 쌓이면, 몸 안에 아픔이 가득 차면 살아도 죽은 게 될 테니까. 뭐, 이렇게까지 과장할 필요는 없는데... 그때는 정말 그랬으니까. 


P.S. 그때 그 선배들과 지금은 매우 친하게 잘 지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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