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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우성 Nov 17. 2018

바자의 피처디렉터 김경



당연한 이야기지만 나는 글을 잘 쓰고 싶었다. 에디터가 됐을 때 나는 당황했다. 글을 못썼기 때문이다. 정말 못 썼던 건지, 늘 너무 혼이 나서 위축돼서 못 쓰게 된 건지는 잘 모르겠다. 아무튼 나는 글을 잘 못썼다. 신입 에디터가 글을 못쓰는 건 당연하지 않아,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래도 나는 당황스러웠다. 대학교 4학 년 때, 나는 세상에서 내가 글을 제일 잘 쓰는 줄 알았기 때문이다. 이 문장은 과장이다. 하지만 그만큼 자신이 있었다. 뭘 어떻게 쓰든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고, 그걸 온전히 표현할 줄도 알며, 드라마라고 할까 감정을 고양하는 방식들을 갖고 있다고 믿었다. 대학에 다니는 동안 시를 썼기 때문이다. 누구보다 열심히 썼기 때문에, 그러는 와중에 문장이 단련되었을 거라고 느꼈다. 그냥 어느 날 그걸 느꼈다. 지방대를 졸업했고, 딱히 부유한 집안 자식이 아니어서 문화적으로 다양한 경험을 한 건 아니지만, 그래도 문장만은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런 내 확신이 깨져버린 것이다. 

하지만 나는 가만있는 사람이 아니다.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하는 사람이다. 나는 늘 서점에 갔다. 큰 서점에 갈 시간이 없어서, 집 근처 버스 정류장 옆에 있는 서점에 갔다. 밤이 늦어서 서점 문을 닫을 때가 아니면 늘 갔다. 집에 들어가기 전의 습관 같은 거였다. 가서 책을 골랐다. 사지 않아도 골랐다. 내가 읽어야 할 좋은 책들은 뭘까, 고르고 고르고 또 골랐다. 그러면서 내가 궁금해하는 것, 진심으로 알고 싶어 하는 것에 대해 생각했다. 물론 그때 책을 많이 샀고, 가장, 정말로 ‘가장’ 오래 들고 다니며 읽은 책은 김경의 <김훈은 김훈이고 싸이는 싸이다>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거의 매일 울었다. 김경은 <바자>의 피처 디렉터였다. 피처 에디터의 대빵이 피처 디렉터다. <바자>는 유명한 잡지고, 김경이 거기 피처 팀장이었다. 나 같이 작은 잡지사에서 일하는 평범한 에디터는 그저 동경할 수밖에 없는 대상이었다. 나는 그녀의 존재를 몰랐고, 이 책을 먼저 알았다. 이 책은 인터뷰 책인데, 아주 독단적이다. 상대방의 언어를 기록하지만 자신의 판단과 감정도 같이 기록한다. 그게 내가 쓰고 싶은 글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쓸 수 없었다. 그래서 읽고 읽고 또 읽었다. 많이 읽었다. 그리고 흉내 내지 않았다. 어설프게 읽으면 흉내 내게 되니까, 외울 듯이 완벽하게 읽었다. 나는 김경의 책을 읽으며 내가 써야 할 글에 대해 많이 생각했다. 김경처럼 쓰되, 김경처럼 쓰지 않는 것이 내 목표였다. 그러나 그럴 수 없어서, 사실 흉내조차 낼 수 없어서, 나는 울 수밖에 없었다. 작은 잡지사에 다니는 내 신세를 한탄할 순 있다. 하지만 내 능력을 한탄할 순 없다. 그건 온전히 나에게 달린 일이었으니까. 그 후 브랜드 행사장에서 김경을 두 번 보았다. 말을 걸진 않았다. 내가 너무 작았기 때문에. 

몇 년 후에 나는 그녀와 나란히 앉아서 이야기하게 되었다. 어떤 계기가 있었다기보다는 자연스럽게 그렇게 됐고, 그게 별로 어색하지 않았다. 하지만 어느 순간 내가 오만해지고, 혹은 오만하게 행동하는 척하게 되었다 하더라도, 정말로 나는 단 한 번도, 김경만큼 글을 잘 쓰는 에디터가 되지는 못했다. 김훈은 김훈이고 싸이는 싸이고, 김경은 김경이기 때문이다. 그녀를 동경하는 동안 나는 이우성은 이우성이다, 라는 문장을 나 스스로 쓸 수 있게 되기를 바랐다.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P.S. 이제 김지수와 신윤영, 이 두 선배에 대해 써야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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