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ena homme +, 2022_03...?
나는 근 열흘 동안 구교환을 생각했다. 구교환을 왜 좋아하는 건지. 일단 나는 넷플릭스 드라마 <DP>를 보고 좋아하게 됐다. 배역 자체가 정의로움 50 + 현실 감각 30 + 개그 20 정도의 캐릭터여서 좀처럼 싫어하기 어렵다. 여기서 중요한 건 현실 감각이다. 왜냐? 무턱대고 정의로운 캐릭터는 매력 없으니까. 그런데 단순히 배역 자체가 괜찮았다 정도로는 설명이 안 되는 부분이 있는데, 좀 애매한 단어지만 ‘느낌’인데, 뭐랄까, 구교환은 현실에서도 정의로움과 현실 감각과 개그가 적절히 잘 섞인 인물일 것 같다고 느껴진다는 것이다. 연기를 잘해서 진짜 같이 느껴진다고도 볼 수 있겠지만, 음, 좀 무책임하지만, 나도 잘 모르겠다. 구교환에겐 저건 연기가 아닐 것 같다.
영화 <반도>를 본 사람은 서 대위를 기억할 거다. 기억을 못 할 수가 없지. 악당인데 애처롭다. 비열한 면도 있다. 그런데 이런 설명이 다 의미가 없다. 나는 서 대위를 보고 “와, 저 새끼 뭐야?”라고 여섯 번 말했다. 일곱 번 일 수도. 연출자가 뭘 원했든, 대본에 어떻게 적혀 있었든, 서 대위는 굉장히 복합적이고 신비하고 마치 ‘나쁜 물’처럼 오묘한 캐릭터가 되었는데, 이런 경우는 누군가 만들어서 된다기보다 배우가 감각을 읽는 천부적인 능력을 갖고 있을 때 가능하다. 네가 어떻게 알아?라고 하면 할 말 없지만, 아, 없는 건 아니지. 이건 감각의 영역이고, 나는 감각이 초절정으로 독특한 사람이라 안다. 믿거나 말거나. 그러니까 구교환은 관객의 시선을 집중하게 하는 마술을 부리는데, 이게 구체적으로 어떻게 했다,라고 설명하는 건 매우 어렵다. 일단 지금부터 해보긴 할 건데.
영화 <모가디슈> 무대 인사 영상을 유튜브에서 찾아보면, 구교환 옆에 무려 조인성이 서 있다. 관객 대부분이 조인성을 쳐다보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구교환이 말할 때는 관객은 물론 조인성도 구교환을 본다. 아니 누가 말을 하는데 쳐다보는 게 당연한 거 아냐,라고 반문할 수 있다. 그런데 내가 하는 말은 그게 아니다. 예를 들면 이런 거다. 싫어하는 선생님이 수업할 때도 쳐다는 본다. 좋아하는 선생님이 수업할 때는 당연히 열정적으로 쳐다본다. 구교환을 바라보는 시선이 그랬단 것이다. 그래서 나는 구교환의 능력을 이렇게 정의하기로 했다. 연기, 외모, 말투, 뭐 이런 거 다 떠나서, 좋아하게 하는 능력. 구교환 주변에 구교환을 싫어하는 사람이 없거나 매우 드물 거라고 조심스럽게 예측해본다. 그의 능력을 질투하는 사람, 딱 그 정도가 싫어할 순 있겠지.
나는 구교환이랑 친한 동네 형도 아니고 당연히 조인성도 아니기 때문에 정말 구교환이 그런 사람인지 확인할 길이 없다. 그래서 어렵게, 최근 구교환을 만난 사람에게 몇 가지 질문을 했다. 그는 구교환과 화보 촬영을 한 에디터다. 질문은 삭제하고 대답만 옮겨 적자면 이렇다. “아, 굉장히 좋아요. 밝고 친절하고, 아, 그리고 생각보다 키도 크더라고요.” “어떤 거 찍을 건지 이야기를 해달라고 하더라고요. 원하는 거 자기가 다 맞춰줄 테니까 말만 하라고. 자기도 연출할 때, 찍을까 말까 망설이다가 안 찍은 적 많았는데, 그때마다 후회했다고.” 딱히 이 취재원에게 이 이상 의미 있는 답변을 듣기 어려울 것 같아 대화를 마무리했다. 하지만 인상적인 부분도 있다. 바로 이 대목. ‘자기도 연출할 때.’ 아, 그랬네, 들어본 것 같기도 하다. 구교환이 감독도 겸하고 있다는 걸. 그래서 찾아봤다, 어떤 걸 찍었는지. 동일한 혼잣말을 여러 번 했다. “이 새끼 똘아이네.” 험한 말이어서 죄송합니다만, 매우 긍정적인 의미로 받아들여 주세요.
첫 연출 작품은 2011년에 개봉한 <거북이들>이다. 소개에 이렇게 적혀 있다. ‘어느 날 교환은 대변 대신 거북이를 배설하고 걱정된 마음에 한의원을 찾아간다.’ 또라이다, 구교환. 천성이 독특하지 않고서야 이런 발상이 가능하겠나! 이 한 줄 소개만으로도 감독이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진다. 2013년에 <왜 독립영화 감독들은 DVD를 주지 않는가?>라는 영화도 개봉했다. 정말 개봉을 하긴 한 건가? 어디에서 한 건지, 이렇게 독특한 제목은 들으면 잘 안 잊히는데. 갑자기 다른 얘기지만, 튀는 독립영화가 많을 거고, 개봉관은 매우 적을 거고, 소중한 재능을 온전히 보여줄 기회조차 못 얻는 감독도 많을 거다. 음, 이런 생각을 하고 나니 구교환이라는 인물이 더 소중하게 느껴진다.
사람들이 구교환을 좋아하는 이유도 찾아봤다. 대부분 귀여워서 심장이 꿍꽝거린다,라고 한다. 연기를 잘해서 좋아하는 사람도 있다. 표면적으로는 물론 그럴 것 같다. 다만 귀여운 배우는 구교환 말고도 많고 연기 잘하는 배우도 구교환 말고 꽤 있다. 아 물론, 구교환처럼 리얼한, 사실은 리얼하다기보다, 좀 과하게 엉뚱한 포즈를 취한 사진을 공유하는 경우도 많… 아니 있… 없나? 팬들은 이런 사진을 보며 구교환과 가까워지고 멀어지는 감정 놀이를 한다고 하는데, 음 드문 경우네. 뭐, 그냥 그렇다고.
구교환은 여자 친구가 있고, 영화감독 이옥섭이라고 한다. 7~8년 사귄 것으로 알려져 있다. 둘이 함께 운영하는 유튜브 계정도 있다. 훑어보면, 유명해지기 전부터 구교환은 이미 자신의 세계가 확고했으며, 그것이 일반적인 감각과 거리가 멀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래서 나는 막연히 이 글의 초반에 ‘느낌’이라고 쓴 부분에 대해 부연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왜 구교환을 좋아할까? 성공하기 위해, 인기를 얻기 위해 누군가의 취향과 동시대 감각을 습득했다기보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더 좋아하고, 자신이 보여주고 싶은 걸 더 보여주고, 시대의 감각보다 자신의 감각을 더 존중하려고 했던 배우가, 그 자신의 오롯함으로 주목받았기 때문이다. 덕분에 우리는 (상당히 죄송한 말씀이지만) 비슷한 배우가 차고 넘치는 상황 속에서 구교환이라는 독특하고 신비한 배우를 만나게 되었다. 기적이다! 또한 유명해지기 전에도 구교환은 이미 연기적 숙련도가 높은 상태였다. 물론 이 부분은 추정의 영역! 재능 넘치는 사람들이 대부분 그렇듯, 그는 갑자기 뭘 해야 할지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자신이 해온 것들이 있으니까.
더불어 나는 구교환을 통해 이런 교훈까지 얻는다. 다른 사람과 비슷해지려고 노력하지 말자. 달라지려고 노력하지도 말자. 하고 싶은 걸 하자. 진부한 교훈이지만, 현실에선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리고 다른 사람은 어떤 줄 모르겠으나, 나에게는 구교환을 좋아하는 이유가 한 가지 더 있다. 누군가와 오래 사랑하는 재능. 이거야 말로 뛰어난 재능 아닌가? 그저 이 한 가지 사실만으로도 누군가를 좋아하고 존중할 이유가 충분하다고 생각하는데, 나는 그런 사람을 통해, 그 자신 얼마나 세계를 진지하게 바라보는지를 느낀다. 나는 그의 내면의 깊은 사색을 맘대로 추측하면서 흐뭇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