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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나뵈뵈 Nov 21. 2024

아찔했던 순간 2

- 도대체 왜?

<아찔했던 순간, 그 두 번째>


2년 뒤, 2014년 10월.

다시 중국의 국경절 연휴의 어느 날.

대학 시절부터 알고 지냈던 교회 자매님을 방문차 남경(南京)을 여행하던 때의 일이다.


남경공항에서 자매님 사시는 시내까지 지하철이 연결되어 있어서 찾아가기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인천공항에서 공항철도를 이용하여 홍대입구, 서울역으로 쉽게 진입하듯이...


숙박은 자매님 댁에서,

관광은 자매님이 데려가 주시는 곳으로.


남경은 중국의 6대 고도(古都) 중의 하나인 도시인지라 남경성벽이 있었다. 성벽을 따라 걸으며 아래를 내려다보면 '현무호(玄武湖)'라는 커다란 호수가 보인다. 아이들은 저건 바다가 아니냐고 물었었다.
그 호수 수양버들아래 돗자리를 펴고 그간 지낸 이야기를 나누며 여유로운 시간을 보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자매님이 돌보는 학생들이 다니는 남경대학도 둘러보았다.


그다음 날엔 중국 사람들이 가장 존경하는 지도자라고 하는 손문(쑨원의 호, 중산)의 묘가 있는 중산릉에도 갔다. 릉은 산 위쪽에 있어 오르는 계단이 상당히 많다. 오르다가 숨을 고를 겸 뒤를 돌아보면 눈앞에 남경시내가 훤히 펼쳐진다.
 
이번 여행에서는 남경성벽과 현무호, 남경대학, 중산릉, 이렇게 세 군데만 둘러보았지만, 나중에 수학여행에 인솔교사로 동행해서 난징대학살기념관(1937년 12월, 일본에 의해 자행된 만행 고발 기념관)과 부자묘(공자를 모시는 사당)도 둘러볼 기회가 있었다.


오랜만에 자매님을 만나 회포도 풀고, 자매님 자녀들과 우리 아이들이 서로 알고 친해지는 시간을 가져서 아주 따뜻하고 유쾌한 여행이었다.




그러나 우리의 남경 방문기는 위의 마지막 문장으로 끝나지 않는다. 잔잔하고 평화로왔던  '전반부'와 대조되는 '후반부' 이야기.


중산릉을 방문한 게 우리 일정의 마지막 날의 오전. 관광을 마치고 오후 비행기 시각에 맞춰 집을 나서 부지런히 움직였다. 아니 엄마인 나는 부지런히 움직이려고 했으나, 아이들은 친해진 언니(누나) 오빠(형)랑 장난도 치면서, 길거리에서 먹고 싶은 아이스크림도 하나씩 사서 먹느라 공항으로 가는 시간이 지체되고 있었다. 나 자신도 우리에게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는 걸 충분히 감지하지는 못했던 것 같기도 하다.


공항으로 가는 지하철에서 시계를 보면서, 이거 조금 빠듯한데... 못 탈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점점 마음이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지하철을 내려 부랴 부랴 티켓팅을 하러 갔지만, 탑승 불가였다. 이미 게이트가 닫히고, 비행기는 이륙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WHAT? 비행기를 놓쳤다고?

 YES, indeed, we did.


이런 황당한 일이 있나... 오늘이 국경절 연휴 마지막날이었으면 어쩔 뻔했어? 돌아갈 표는 있을까?

다행히 다음  오전에 표가 있어 구입했고, 여행사에는 우리가 놓친 비행기표에 대한 환불 요청을 해 두었다.


그럼 이제 우리 어떡하지? 자매님께 연락해 하룻밤 더 묵게 되었다고 해야겠네...

싫다 하실 분은 아니지만, 좀 전에 작별인사 하고 떠나 왔는데, 처음 왔던 때처럼 캐리어 들고, 애들과 함께 우르르 자매님 댁으로 돌아가야 한다. 아이고, 쑥스러워라...




그리하여 우리는 다시 남경 시내로 돌아가는 지하철에 오른다. 몇 정거장쯤 갔을까? 잠깐 기다린다는 방송이 있었는지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지하철이 어느 정거장에서 문을 연 채 한참을 서 있다.


그 순간, 나에게 열린 문과 큰 아이 손에 들려 있는 빵봉지 (좀 전에 공항에서 나서기 전에 먹었던)와 승강장 쪽에 있는 쓰레기통이 눈에 들어온다. 이 세 가지 것이 한꺼번에 내 시야에 들어오면서 나의 '뇌'가 명령을 내린다. 큰 아이에게 이렇게 말하라고...


"David, 빨리 내려서 네 손에 있는 빵봉지 쓰레기통에 버리고 와."

"네?"

"어서. 문 열려 있으니까 금방 갔다 올 수 있어."


큰 아이는 마지못한 표정을 지으며 나선다.  아이가 쓰레기를 버리고 돌아서서 오는 순간!! 지하철 문이 닫히고 만다. 


"악..., David!"


당황한 나는 다급히 창문 너머로, 그 또한 당황했을 아이에게

다음 정거장에서 기다릴게. 다음 정거장!!  거기서 내려!!라는 말을 다.  

아이가 알아들었기를 간절히 바라며...


도대체  나의 뇌는 그때 그런 명령을 내리고, 나는 그 명령을 이행했는가?

도대체 왜 그 빵봉지가 그리 눈에 거슬렸는가?


그다음 정거장에서 내려 다음 열차가 기다리는 5분여의 시간 동안,

어린 동생들의 원망자신에 대한 질책의 언어들로 내 마음은 잔잔하지 않았다.


감사하게도 우리는 무사히 큰아이와 '상봉'하여 이산가족이 되는 것을 면했다.


지금 생각해도 엄마의 불찰로 아찔했을 큰 아이에게 정말 미안하고, '뭣이 중한디?'라는 사투리로 나 자신을 한 번 더 추궁해 본다.




<아찔한 순간 1, 2>는 자녀와 헤어지게 될 뻔했던 잠깐의 해프닝에 대한 기록이다. 그때의 아찔했던 감정을 떠올리며 작은 신음소리를 한 번 내 본 것이다.  


그러나 자녀와 헤어진다는 것, 자녀를 잃게 된다는 것은 너무 무겁고 슬픈 이야기이다. 어디서든 자녀를 잃은 소식을 접하게 되면 내 일처럼 가슴이 아파오는 것은, 그 부모가 느낄 통증이 부모 된 입장에서 고스란히 전달되어 오기 때문이다. 물론 그 부모가 느끼는 슬픔, 아픔과는 무엇으로도 비교할 수 없을 것이다.


이 글을 기회로 삼아


전쟁으로,

불의의 사고로,

질병으로,

다 알지 못하는 여러 이유로

사랑하는 자녀와 '이별의 아픔'을 겪으신 모든 분들께

애도의 마음을 전하며,


내가 믿고 사랑하는 분으로부터

'영원 위로' 

그분들께 끊임없이 도달되기를 기도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자신과 하나님 우리 아버지, 곧 우리를 사랑하시고 은혜 안에서 우리에게 영원한 위로좋은 소망을 주신 분께서/ 여러분의 마음을 위로하시고 온갖 선한 일과 선한 말에서 여러분을 견고하게 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살후 2: 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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