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 전상서 9

- 2025년 1월

by 미나뵈뵈

사랑하는 부모님,

그동안 잘 지내셨어요?

한국으로 귀국해서 보낸 첫 해였던 2024년이 지나가고,

2025년 또 새로운 한 해가 밝은 지 벌써 9일째입니다.

방학하고 춘천에 내려와 고요한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부모님 기일 가까이에 쓰는 편지이지만,

뭔가 해 드리고 싶은 말들이 많은지 어서 쓰고 싶어 일찍 시작합니다.

방학하면, 가장 많이 하게 되는 일 중 하나가 요리이지요.

학기 중엔 퇴근하고 돌아오면, 음식을 할 의욕이 별로 안 생겨요. 최대한 간단히 해결할 수 있는 것만 찾게 되고요. 그런데 이제 시간의 여유가 있으니, 시간을 들여 뭔가를 해서 가족들을 먹이는 기쁨 더하기 묵혀 두었던 식재료를 하나씩 하나씩 해치우는 기쁨까지 맛보고 있습니다.

1월 2일에 춘천 내려올 때, 학기 중에 해 먹으려고 사 두었던 식재료들, 냉동실에서 또는 주방 선반에서 겨울잠 자고 있던 애들을 데려와서 최근 일주일 동안 여러 가지 것들을 해 먹었네요.

- 호떡. 어느 날 주방 선반에서 막내가 호떡 믹스를 보고 호떡 먹고 싶다고 했지만, 방학하면 해 줄게 하며 미뤄 두었다가 두 차례.

- 스파게티. 토마토스파게티 소스를 웍에 부어 채소와 함께 섞으면서 제가 하는 말, "스파게티가 제일 쉬웠어요!”

- 미역국, 콩나물국, 배추된장국, 부대찌개

- 수육, LA 갈비, 닭갈비

- 어묵 볶음, 으깬 감자샐러드, 콘양배추샐러드

- 초간단 토르티야 피자

- 해물파전, 해물누룽지탕

많이 해 먹었지요?


저보다 열흘이나 늦게 방학하는 ○서방은 계란치즈토스트, 큰언니가 선물해 준 두유 제조기로 간 검은콩두유, 사과 등을 먹고 출근합니다. 모처럼 챙겨주는 아침 먹고 출근하고, 퇴근해서는 가족과 함께 따뜻한 저녁 식사를 함께하는 나날을 보내고 있어요.

신혼 첫해를 주말부부로 시작해 2년 함께, 2년 반 주말부부, 5년 반 함께, 중국 가서도 2년 함께, 4년 주말부부, 6년 함께... 이렇게 살기를 반복하다가 귀국한 지난해, 다시 서울-춘천을 오가는 주말부부로 생활한지라 집에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 주는 안도감과 온기의 가치는 그 반대의 경우를 경험해 본 사람만 알 거예요.


2일 저녁 퇴근해서 따끈한 미역국에 저녁 식사를 마치고서 “좋네요.”라고 한 그 짧은 한마디에 포함된 여러 감정들을 제가 왜 모르겠어요? 마치 연어의 회귀나 뫼비우스의 띠처럼 시작했던 곳으로 다시 돌아온 우리 가정의 주말부부 생활, 주님의 넘치는 은혜가 함께 하시기에 저희가 제 위치에서 꿋꿋하게 생활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작년 한 해를 돌아볼 때, 주님께서 우리 가정을 위해 참 많은 일을 하셨습니다.

외적으로 내적으로.

외적인 일들에서 그분이 우리를 위해 무엇을 해 주셨기 때문만이 아니라,

내적으로 그분이 우리 안에 함께 계시면서 우리의 위로, 평안, 기쁨, 오래 참음, 지혜, 믿음, 기도가 되신 것을 인해 감사가 넘칩니다. 그분이 우리 안에 계신 것, 그 자체로 모든 찬양과 감사를 드립니다.

어떤 일을 하셨는지 하나하나 세어볼까요?


첫째, 새 보금자리를 마련하게 하신 일.

분수에 맞지 않는 평수의 아파트를 구입해서 1년 살고 12년 동안 작은 아빠네한테 살도록 내준 아파트를 팔고, 마음에 평강이 있는 아담한 평수의 아파트를 찾아 주셨습니다. 자녀들, 시부모님, 명절에 대가족 한 번씩 드나드는 데 그다지 어려움 없는 크기의 아파트입니다.

15년 된 구축 아파트이지만, 손 볼 데 손 보고 화장실을 리모델링하고 깨끗하게 도배하고 커튼, 블라인드 새로 달고, 필요한 가구 가전 들여놓으니 ‘신혼집’처럼 산뜻한 보금자리가 되었습니다.

여름에 언니들이랑 형부 오셔서, 이 집에서 쾌적한 여름을 만끽하고 가셨지요.

둘째, 아이들 안에서 하신 일.

David이 군 생활을 무사히 마치고 7월 1일에 전역하여 함께 생활했어요. 식당에서 점심시간동안 하는 아르바이트를 구해 용돈 벌고, 운동하고 취미생활하고. 군대 가기 전에 교회 집회에 참석하는 것이 생활의 일부가 되어 있어 권면하지 않아도 자원해서 집회에 잘 참석하는 것. 그것을 보는 것만으로도 참 감사했습니다. 형이 (오빠가) 신실하게 교회생활에 자신을 드리는 본을 세워놓으면 동생들이 그 발자취를 따라가기 수월할 것이기 때문에.


Timothy가 대학교 1학년 생활을 마치고 군 입대를 결정하였어요. 활발하고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해 축구동아리, 풍물동아리, 교환학생멘토동아리, 학과 내 모임, 초중고 친구들과의 만남 등 참으로 분주한 한 해를 보냈지만, 주님의 긍휼 하심이 Timothy에게 항상 머물러 1학기 말쯤 되어 주님과 교회 생활로 돌아왔습니다. 형제자매들을 통해 주님의 말씀하심을 듣는 데 열려있게 하심에 감사합니다. 분주한 생활을 일단락하고 잠시 자신을 정비할 시간으로 입대를 결정한 것이 참으로 주님의 크신 은혜라고 느낍니다.


Grace도 학교에 잘 적응해서 1년을 잘 마쳤습니다. 주님과 교회 생활에 대해 적극적인 태도가 부족한 듯하여 염려를 했지만 자매집 자매들과 정기적으로 섞임의 식사 시간을 갖고, 기회 닿는 대로 성경 읽기와 찬송이 우리 가정에서 있었던 관계로 Grace가 주님으로부터 아주 멀어지지는 않았습니다. 형제자매님들이 Grace를 위해 기도해 주고 계심을 인해 감사하고 올 한 해 Grace 안에서 주님에 대한 인식과 체험과 누림이 전진할 것을 믿습니다.


아이들 어릴 때 재우면서 이런 자장가를 불러주곤 했었습니다.

잘 자라 잘 자라

귀여운 우리 David, Timothy, Grace

잘 자라 잘 자라

우리 David, Timothy, Grace

너희들이 주 사랑할 때

아빠 엄마는 더 이상 바랄 게 없다


슈베르트의 자장가에 개사한 곡을 불러주었는데, 아이들이 대학생이 되고 성인이 되어갈 때

나의 소망과 기대가 여전히 마지막 소절에 있다는 것을 상기시켜 봅니다.


아이들이 높은 지위나 부, 영예나 명성을 얻는 것보다 순수하게 주님을 사랑하는 이들, 주님을 사랑함으로 그분의 마음의 갈망을 알아서 그 갈망을 이루기 위해 자신을 드리는 이들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그것 외에 다른 것 바라지 않습니다. 아이들의 마음 안에서 주님께서 가장 으뜸의 위치를 차지하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셋째, 학급담임을 무사히 마치게 하신 일. 12년 동안 영어교과만을 가르치다가 학급담임을 맡게 되었을 때, 3월의 하루하루가 살얼음판 위를 걷는 느낌이었습니다. 하지만 한 달 한 달 지나갈 때, 제가 알지 못했지만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지내온 날들 동안 제 안에 저장되어 있는 무언가가 저로 이 책임을 감당하게 하는 것을 느꼈습니다. 참으로 주님께서 함께 하심이었습니다.

넷째, 브런치에 글을 쓰기 시작한 일.

중국에 있을 때부터 관심을 갖고 있었지만 어떤 시도를 하지 않았었어요. 그런데 아이들이 학령기를 마치고 귀국해 제 마음에 여유가 생겨서일까요? 이 플랫폼에 글을 쓰는 것을 시도해 보았네요. 그동안 부모님께 썼던 여러 편의 편지글이 있어서, 저의 공개적인 글쓰기는 오래전에 이미 시작된 게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요. 매거진에 30편의 글을 올리는 게 1차 목표인데, 부모님 전상서가 이 편지까지 포함하면 아홉 편을 차지합니다. 다른 어떤 글보다 부모님께 드리는 편지에서 가장 솔직하게 저희 근황을 말씀드리게 된다는 생각이 드네요. 그래서 글이 더 쉽게 쓰이고요.


저에게는 주님께서 허락하신 평범하지만 소중한 나날동안 제 내면에서 일어나는 느낌과 상념을 기록으로 남기는 습관이 있었어요. 주로 공책에 펜으로 써서 남겼었는데 이제는 공개적인 플랫폼에 조심스럽게 써 보고 있습니다. 생면부지의 사람들이 기회가 닿으면 언제든지 읽을 수 있는 곳에...


글 한 편을 써서 올리는 것아이 한 명을 출산하는 것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내 속에 오랫동안 머물던 것이 내 몸 밖으로 빠져나오는 것.

하나가 빠져나오고 나서 한동안의 시간이 지나면 또 하나가 잉태되는 것.

대략의 형상을 이루어 나온 것을 다듬기 위해 조금 더 세심히 돌보는 것.

글을 쓰면서 삶을 조금 더 진지하게 대하게 되고, 다른 사람들의 삶에 대한 이해도 좀 더 깊어져 가는 것 같습니다. 이 또한 주님께서 허락하신 특별한 체험입니다.


다섯째, ○서방과 저의 영과 마음을 새롭게 하신 일.

두 사람 다 쉰이 넘었고, 우리에게 낭비할 시간은 없지만, 추구하며 앞으로 전진할 시간은 남아 있다는 말씀에 100% 공감합니다. 한국을 떠나기 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새로워진 영과 마음으로 주님을 사랑하고 경외하며 말씀을 추구하며 기도에 힘쓰는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자녀들을 위해 기도하고,

우리가 관심하도록 맡기신 이들을 위해 기도하고

형제자매님들과 연결되어 말씀과 교통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올 한 해도 이러한 생활을 계속하고자 합니다.

아버지, 어머니!

그분은 ‘숨어 계시는 하나님’(사 45:15)으로서 우리의 생활의 장면 뒤에서 얼마나 많은 일을 하셨고 또 하시고 계시는지...

다만 감사와 경배를 드립니다.

올 한 해도 그리스도 안에 있는 각 사람이 주님을 충만하게 누리고, 각자의 위치에서 그분을 합당하게 표현하고 대표하기를 소망합니다.


부모님의 중보기도가 있다는 것도 잊지 않습니다.

사랑으로 돌봐주시고 그 사랑을 우리 속에 남기고 가신 것을 잊지 않습니다.

항상 감사하고 그립습니다.


다음 주에 둘째 입대 전 가족여행으로 제주도에 갑니다.

제가 대학생이었을 때 부모님 환갑 기념으로,

결혼하고 첫째가 뱃속에 있었던 해에 부모님 칠순 기념으로 함께 갔던 제주도 여행을 추억하며 다녀 볼게요.

형부와 큰언니 덕분에 자녀들과 특별한 여행을 하실 수 있으셨지요.

형부와 큰언니한테도 항상 감사합니다.

아버지, 어머니!

이제 편지를 마무리할게요. 안식 가운데 편히 계세요. 다음 주에 현충원에서 뵐게요~.

사랑합니다!!


2025. 1. 9

부모님의 막내딸 mina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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