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개를 넘어간다
꼬부랑 할머니가
꼬부랑 고갯길을
꼬부랑꼬부랑
넘어가고 있네
꼬부랑꼬부랑~
꼬부랑꼬부랑~
고개는 열두 고개~
고개를 고개를 넘어간다
(작사 한태근, 작곡 한태근)
유난히 바쁘고 힘들게 보냈다고 느낀 3월의 두 주를 마치고, 금요일 저녁에 샤워하는 데 이 동요가 생각났다. 더불어 예전에 잠깐 함께 활동했던 합창단에서 부른 이 동요의 편곡한 버전의 합창곡과 그때의 공연 퍼포먼스까지 연달아 떠올랐다.
갑자기 이 동요가 생각난 것은 3월부터 시작된 2025학년도의 두 고개를 넘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고개'의 사전적인 정의는 1. 산이나 언덕을 넘어 다니도록 길이 나 있는 비탈진 곳, 2. 일의 중요한 고비나 절정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3. 중년 이후 열 단위만큼의 나이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라 한다. (출처: 네이버 국어사전)
이제 3월의 두 주를 보냈는데, 한 주에 한 고개씩 넘었다고 하는 건 사전적 정의의 기준에서 볼 때 너무 지나친 표현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긴 하지만... 아무튼, 우리의 삶의 노정에는 크고 작은 고개가 기다리고 있고, 우리는 그 고개들을 하나하나 넘어가면서 우리 삶의 종착지에 이르게 되는 게 아니겠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3월 첫 주의 한 고개.
3월 4일(화)에 새 학년 새 학급의 담임으로서 아이들을 만났다. 아이들도 긴장되고 설레고 조금은 낯선 느낌으로 새 담임선생님과 친구들을 만난다. 3월 첫 주에는 새롭게 시작하는 학급생활에서 지켜야 할 규칙과 약속 정하기, 친구들 알아가기, 학급 내에서 봉사할 자신의 역할 정하기 등 1년 학급살이의 굵직굵직한 기초석을 놓는 기간이다.
그런데 그다음 날인 3월 5일, 어제 처음 만났던 담임선생님이 학교에 오시지 않았다!!
1월에 입대했던 둘째의 훈련수료식이 3월 5일에 있어, '연가'를 내고 다녀왔기 때문이다. 개학 첫날을 보내고 밤에 유성을 내려가 하루 묵고, 다음 날 아침 논산으로 향했다.
11시에 있었던 수료식.
보통 훈련 기간이 6주이지만 설연휴가 끼어 있었던 관계로 7주간이 된 훈련 수료를 축하하는 여러 의식 후, 식의 마지막 순서로 군복에 태극기와 계급장을 달아주기. 우르르 달려 나가는 부모님들 사이에 끼어 우리도 아이가 서 있을 자리 주변을 헤매고 헤매 드디어 군모를 쓰고 우뚝 서 있는 아들을 발견했다. 아들 눈가에 한 줄 눈물이 고인 걸 보고, 나도 이 상봉의 감격스러움에 한 줄 눈물이 고이고...
아이도 1년 6개월이라는 군복무 기간의 한 고개를 넘은 것이다.
점심식사 장소로 가정을 열어주신 한 형제님 댁에서 할아버지, 할머니, 큰 이모, 이모부, 형제자매님들과 함께 풍성한 점심을 먹고 나서, 아들의 7주간 체험하고 느낀 소감을 듣고 3시 반쯤 헤어져 서울로 돌아왔다.
학기 초의 1박 2일간의 잠깐의 일탈!
다음 날, 다시 돌아온 담임으로서 아이들과 둘째 날(원래는 셋째 날이어야 하는데...)을 보내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 잠이 쏟아지는 것을 주체할 수 없었다. 푹 자고 나서 그다음 날이 금요일. 이렇게 해서 3월 첫 주의 한 고비(고개의 동의어로 느껴진다)를 넘겼다.
3월 2주 차의 두 번째 고개.
주일 저녁 갑자기 소변을 보려는 데 통증이 느껴지고, 방광에 소변이 수시로 고여 들어, 화장실 다녀오고 난 지 1분 만에 다시 화장실로 가기를 여러 차례... 뭔가 문제가 생긴 것 같았다.
월요일은 조금 지켜보자는 생각에 병원을 들르지 않았고, 화요일 일과를 마치고 퇴근 시간 이후까지 마저 일을 하다가 '안 되겠다'라는 생각이 들어 병원을 찾았다.
과로하셨나 봐요. 방광염 증상인 것 같다고... 항생제 주사 한 대 맞고 약을 지어왔다.
주사 효과가 있었다. 다음 날부터 통증이 바로 사라졌다.
올해 학교에서 맡은 업무가 꽤 육중하다. 돌아봐야 할 게 무척 많다. 잘해 낼 수 있을지 매일 압박감을 느끼지만, 하나 하나 해 나가고 있다. 이번 주에 해야 할 일인 강사 선발 건과 계획안 써내는 두 가지 일을 마쳤다. 이렇게 하여 두 번째 고개를 넘었다.
또 한 고개 한 고개를 넘어갈 것이다.
<내가 사랑한 꽃 이야기>의 계속으로 '할미꽃'에 관한 글을 쓰기로 마음먹고 있은 지 꽤 되었다.
3월의 바쁨이 글을 한 동안 멈추게 한 부정적인 역할도 했지만, 고개를 넘는다는 표현을 사용하여 글을 풀어낼 '영감'도 주었다.
우리가 중국에서 생활하고 있을 때, 어느 날 애들 할아버지께서 산에서 캐어다가 집 안 화분에 심으셨다며 '할미꽃' 사진을 하나 보내 주셨다. 사진을 받자마자 뭔지 모르지만, 마음이 뭉클했던 기억이 난다.
꽃을 보자마자 어릴 적 시골에서 함께 지냈던 나의 할머니가 생각났고, 이 꽃을 그림으로 그려보고 싶다 하는 마음까지 들었다.
따스한 햇살아래 조용히 고개 숙인 이 꽃이 풍기는 고즈넉함, 여린 듯하지만 세상 풍파를 견뎌낸 장중함, 둘 다가 느껴져 이 꽃이 정말 사랑스러웠다.
친하게 지내던 동료교사에게도 이 사진을 보여줬다. 그녀도 할머니에 대하 애틋한 추억이 많았던 사람이라 보자마자 할머니가 떠오른다고 먹먹해했다.
앞서 인용한 동요 '꼬부랑 할머니', 열 두 고개를 넘어가는 할머니는 인생의 노정에서 만나는 여러 고개를 넘는 우리 모두를 대표할지도 모른다. 딸의 집을 찾아가다가 죽은 그 자리에서 피어났다는 '할미꽃 전설'은 슬픈 이야기이지만, 그가 자신 앞에 있는 고개를 넘어가며 사랑과 희생의 삶을 산 것에 대한 '인증'으로서 이 꽃을 바라본다면 이 꽃의 의미는 숭고하다고 느껴진다.
'할미꽃'에 대한 글을 쓰려고 마음먹고 있을 때 접했던 브런치 작가 '여상' 님의 글이 인상에 남았었다. 다른 분의 글을 소개해보긴 처음이지만, 잔잔한 울림이 있는 글이니 한 번 읽어보시길 권해 드린다.
https://brunch.co.kr/@tegie/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