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월의 문턱에서
오늘은 찬 공기, 찬 바람을 피해
건물 안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정류장 표지판 아래 서서 봄공기를 느낀다.
어제는 급식실 가장 창쪽에 앉게 되어
급식을 먹으며, 중간중간 창밖을 내다보았다.
저 나무에도 봄이 사뿐히 내려앉고 있구나.
4월이 시작되었다.
여느 달처럼 냅다 달릴 것이다.
이 계절의 그리움이
더운 열기 속에 증발해 버리기 전에
붙잡아 적어 두련다.
4월의 그리움.
중국 옌타이 해변가에서 즐긴 또 하나의 별미는 ‘튤립’이었다.
네덜란드 쿠겐호프에서 열린다는 튤립축제, 풍차가 있는 튤립 풍경은 아니지만,
충분히 ‘눈호강’을 할 수 있었다.
매년 4월이면, 옌타이 래산구 정부 건물 아래쪽 공원에 오색찬란한 튤립밭이 출현한다.
‘출현’이라는 표현을 쓰는 건, 그 밭이 계절마다 각기 다른 식물들로 채워졌다가 사라졌다가 또 다른 식물로 채워지곤 하기 때문이다.
아주 자주 오가는 길은 아니라서 무엇 무엇이 출몰했는지 다 알 수는 없지만, 대표적으로 봄에는 튤립, 여름에는 라벤더로 채워졌던 게 생각난다.
구획마다 각기 다른 색깔의 튤립들이 줄지어 서 있는데, 아주 가까이 가서 한 송이를 들여다보아도 감탄이 나오고, 멀리서 바라보아도 감탄이 나온다. 자연이 만들어낸 고유의 그 빛깔과 함께 어우러져 이룬 오색의 물결은 경이로움 그 자체이다.
세 번 놀랐다.
4월의 어느 날, 집 근처 바닷가로 산책을 나섰다가 지나쳐야 하는 작은 숲에서 튤립밭을 처음 발견했을 때.
그곳은 아담한 크기였다.
아무 기대 없이 걷던 길에서 갑작스러운 아름다움과 마주쳐서 놀랐다.
두 번째 놀랐을 때는 위에서 말한 래산구 정부 건물 아래 있었던 튤립공원에 갔을 때.
이번엔 상당히 큰 스케일이었다. 각양각색의 튤립 군락, 구획마다 각기 다른 색깔로 끝없이 펼쳐지는 튤립의 행진에 놀랐다.
세 번째 놀란 건 올해도 당연히 거기 있으려니 했던 튤립공원이, 도로 확장 공사로 인해 다시 우리 집 근처 바닷가 쪽으로 옮겨와 있는 것에 놀랐다. 내가 이 튤립공원을 보는 마지막 해가 될 것이라 놓치고 싶지 않아 찾았는데, 기대하지 않은 곳에서 우연찮게 만나서 반가웠고 그러나 이전 영광보다 못해서 약간은 아쉬웠다.
튤립이 심긴 그 결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한 면으로 눈이 부시게 아름답지만, 또 한 면으론 군대의 열병식을 보는 것 같기도 하고, 진시황릉에서 보았던 테라코타로 만든 병마용이 정렬하여 서 있는 것 같은 인상도 주어
'아, 내가 중국에 있는 게 맞구나! 내가 네덜란드에 있었으면 이 아름다운 튤립을 보며 병마용이 생각났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편견의 소산이라 할 수도 있고, 내가 인접해 있는 환경에 영향을 받은 사고작용이라 할 수도 있겠다. 네덜란드에서 풍차가 있는 튤립 풍경에 대해선 자유와 낭만을 떠올린다면, 중국에서 줄 맞춰 심긴 튤립의 대형을 보며 열병식이나 병마용을 연상하게 되는 것...
그러나 가족과 함께, 또 동료샘들과 함께 한 두 차례 방문하면서 외쳤던 말을 기억한다.
'와, 너무 예쁘지 않아? 네덜란드에 가지 않아도 이런 튤립이 있는 풍경을 만끽할 수 있다니! 너무 감사하다!'
4월은 나에게 튤립 물결이 그리워지는 계절.
전에 찍어둔 사진을 넘겨보며 이 그리움을 달래 보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