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느 교정 이야기
추억이 깃든 길.
분홍 넝쿨 장미가 학교 담장을 빼곡히 덮는 길.
중간중간 빨강 넝쿨 장미, 하얀 찔레꽃이 있는 길.
6년 동안 점심 식사 후 어김없이 산책한 길.
4월이면 운동장 가장자리에 겹벚꽃이 피고,
5월이면 그 맞은편에서 분홍 넝쿨장미가 피는 길.
10월이면 겹벚꽃 나무의 잎이 가을꽃을 피우는 길.
12월이면 눈꽃으로 덮이는 길.
아이들을 사랑하고 이 교정을 사랑하여
아이들과 함께하는 이 교정의 사계를 담아두기 좋아하는 한 교사가 호출하면, 언제든 그 길에 서서 멋진 각 반 단체 사진을 얻을 수 있는 길.
산책을 하다가 문득 함께 걷는 사람과 순간을 저장하고 싶으면 한 컷 찍는 길.
운동장에서 공을 갖고 놀고 있는 아이들,
이 길에서 풀꽃이나 개미, 무언가를 관찰하고 줍고 있는 아이들,
그저 돌아다니며 깔깔거리는 아이들을
바라보거나 말을 거는 길.
각양각색 차종의 교직원들 출퇴근 차량이
드나드는 길.
이 교정을 지나간 셀 수 없이 많은 학생들과 교직원들의 재잘거림과 속삭임,
웃음소리와 한숨 소리를 들었을 길.
타닥타닥 터덕터덕,
때론 경쾌하고 때론 무거운 그들의 발자국 소리를 들었을 길.
나의 목소리와 나의 발자국 소리는 거기 없지만
그 길은 항상 거기에 있어
내가 아는 사람들과 작년에 새로 와 내가 알지 못하는 사람들의 목소리와 발자국 소리를 듣고 있을 길.
그 길에서 주차장을 지나 왼쪽으로 돌아가면 교정의 첫 번째 건물 아래 텃밭.
상추, 방울토마토, 양배추, 가지, 고구마, 오이, 고추, 토마토, 오쿠라, 블루베리 나무가 자라고,
그 길을 따라 쭉 올라가면 교정의 세 번째 건물 뒤에 가금이 사는 우리.
수탉, 암탉, 오리, 거위가 한가롭게 물이나 모이를 먹는다.
이 길에 서서 볼 때 운동장 바로 앞에 있는 교정 두 번째 건물 뒤에는 머리 길게 늘어뜨린 수양버들,
담장 너머엔 체리나무, 복숭아나무가 보인다.
점심 식사 후, 교정을 한 바퀴, 두 바퀴 돌다 보면 매일 새로운 무언가를 발견하고,
그 작은 발견에도 위대한 발견처럼 즐거워한다.
추억이 깃든 교정.
누군가 이 교정을 스쳐간 사람들에게
이 교정의 하이라이트가 뭐라고 생각하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단연코 '5월의 분홍 넝쿨장미'를 꼽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