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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자란

- 축복하는 마음

by 미나뵈뵈


군자란과 그 꽃의 색의 조합은 석류나무와 그 꽃의 조합과 비슷하다. 그 강렬하고 선명한 색의 조합이 너무 좋다.

넓고 두터운 진녹색의 군자란잎 사이를 비집고 올라오는 진주황의 꽃대를 보았을 때 흥분을 감추지 못했었다.

항상 예상하지 못했던 기쁨이 찾아올 때 느끼는 흥분은 예상과 함께 느끼는 때보다 훨씬 강하다.


우리는 대련에서 두 군데의 아파트 단지에서 살았다. 전반 3년과 후반 3년. 전반 3년은 한 집에서 쭉 살았고, 후반 3년은 같은 아파트 단지 내에서 한 집에서는 2년, 또 한 집에서는 1년을 살았다.


901호와 907호. 둘 다 복층구조였다. 집 내부에 계단이 있는 복층집에 사는 것은 여러 사람에게 '로망'으로 여겨진다. 우리 아이들도 입체적인 이 구조의 로망에 사로잡혀 이 집으로 이사오자고 재촉했었다. 이사할 때, 2층으로 짐박스를 올리는 게 참 번거롭다는 어른들의 현실적인 문제는 간과하고서 말이다.


그 두 집과 관련하여 흥미로운 점은 집주인이 같다는 사실이다. 901호는 집주인이 세를 놓기 위해 구입한 아파트이고, 907호는 본인들이 살다가 다른 집으로 이사 가면서 우리에게 세를 준 아파트이다.


907호는 901호보다 좀 더 넓고 인테리어나 가구, 가전이 더 세련되었었다. 아무래도 집주인 본인이 살았던 집이니까 더 신경을 많이 썼을 것이다. 그들이 이사 나가면서 가꾸던 화분도 몇 개 남기고 갔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이 군자란이다. 그들이 살 때, 이 군자란이 꽃을 피웠을까? 그건 모를 일이다. 그들이 살 때 내가 그 집에 가 본 적이 없으니까...


아무튼 우리는 이 집에 딱 1년 살았는데, 이사 들어간 지 한 달이 못되어 꽃대가 올라오기 시작하더니 이렇게 예쁜 꽃을 피우는 거다. 양지바른 베란다에서 햇살을 받으며 활짝 핀 군자란의 꽃은 마치 '이 집에 온 걸 환영해! 이 집에서 너희가 사는 나날이 유쾌하고 행복하길 바라!'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군자란꽃의 '환영 인사' 덕분인지, 우리는 이곳에서 유쾌한 나날을 보냈다.

그 해가 우리의 대련에서의 생활의 마지막 해라는 걸 알았을까?

환영 인사뿐 아니라 '아름다운 이별을 위한 축사'까지 포함한 개화이었을까?



우리의 유쾌하고 축복된 나날 더듬어 기억해 본다. 6학년이 된 둘째, 셋째가 이 아파트 앞 넓은 공터에서 인라인 스케이트나 보드를 타고, 친구들과 '경찰과 도둑' 놀이를 하고 그룹 세븐틴의 '너 예쁘다'라는 춤 연습도 하여 한인회체육대회에서 2등을 차지한 나날,

6월 중순에 할아버지 할머니께서 오셔서 한 달 정도 머무시면서 아이들이 한국에 있는 것처럼 할아버지 할머니의 소중히 품음을 누린 나날,

중3이었던 첫째는 친구들과 학교나 주변 곳곳을 배경 삼아 재미있는 '동영상'을 제작했던 나날,

10월 국경절 연휴엔 이모네가 오셔서 산시성(山西省)으로 여행도 다녀오고 이모들의 사랑을 듬뿍 받았던 나날 등등.


더 많은 날들이 있었지만, 현재 기억나는 주요한 일들만 적었다. 그 해의 하루하루는 대련에서 마지막 추억의 발자국을 남기는 나날이었다.


이 모든 게 다 군자란꽃의 '축복하는 마음' 덕분이지 않았을까? 먼 훗날이 된 지금도 이 꽃의 환영축복에 감사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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