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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감나무

- 추억 수집 기록

by 미나뵈뵈

전남 해남의 어느 마을에 비포장도로였다가 이제는 아스팔트로 깔린 (신작로로 불렸지) 도로변에 '감나무집'이 있다. 담장 너머로 보이는 탐스럽게 주렁주렁 열린 단감은 지나가는 뭇 학생들의 군침을 돌게 하기 충분했다. 감나무집의 손녀들은 친구들이 부러워하는 감나무집에 사는 것이 자랑스러웠다. 친구들 앞에서 어깨가 뿜뿜 올라갔다.



감꽃은 예쁘다. 연노랑빛 작은 화병 모양의 소담스러운 꽃. 중국 옌타이의 우리 집 아파트 정원에서 감나무에 핀 감꽃을 발견하고 또 나는 한참을 그 앞에 서 있었다. 감나무는 나에게 가족이자 사랑이고, 그리움이고 맛남이다. 물컹한 홍시보다 단단하지만 사근사근 씹히며, 씹을 때 단맛이 배어 나오는 '단감'을 사랑한다. 시골집 단감나무에서 열린 그 단감나무를 먹고 자랐기 때문일 것이다.




"큰언니, 언니는 우리 시골집 감나무에 대해 어떤 게 기억나요?"


"감나무 서리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할아버지께서 감나무 아래서 솜이불 덮고 주무셨지.

과수원집 다음으로 우리 집에 감나무가 열 그루 정도 있었으니까 상당히 많은 거였거든.

감나무 덕분에 우리 모두 광주로 유학 가는 게 가능했던 거야. 막내 작은아버지부터 우리까지.

감을 팔아야 해서 고모들이랑 나는 많이 못 따먹었어. 막내작은아버지랑 네 셋째 언니는 많이 따 먹었다고 하더라. 할아버지께서 연세 드시면서 막내 작은아버지와 손녀들에겐 좀 너그러워지셨나 봐. 작은아버지가 가장 생생한 기억 보유자이셔. 작은아버지께도 여쭤봐."


"네, 알겠습니다. 감나무가 우리 집 가보(家寶)네요. 이 집에서 자라면서 추억을 가진 분들의 얘기를 다 수집해야겠어요."




"작은 아버지, 시골집 감나무에 대해 얘기 좀 해주세요. 제가 질문을 드릴게요. "


질문 1. 해남 시골집은 할아버지께서 언제부터 사신 걸까요? 그 집에 감나무는 원래부터 있었을까요? 아니면 할아버지께서 심으셨을까요?


"네 증조할아버지께서 갑부이셨는데, 마을의 어떤 분에게 보증을 섰다가 빚더미에 앉게 되셨단다. 그래서 할아버지는 바닥부터 다시 시작하는 자수성가형의 삶을 사셨어. 해남 시골집을 지으시고 앞마당, 뒷마당에 감나무를 심으셨어. 앞마당에는 장두감, 접시감나무 다섯 그루, 뒷마당에는 단감나무가 대여섯 그루가 있었지. 마을 어르신께 감나무 접붙이는 것을 배우셔서 접붙여 좋은 열매 맺는 감나무를 키우셨단다.


질문 2. 단감을 파는 게 수입이 좋았을까요? 보통 소 팔아서 공부시켰다고 하는데...

저희 집은 단감 팔아서 학비를 대셨어요?


"할아버지께서 많이 배우지는 못하셨어도 지혜롭고 생활력이 무척 강하셨지. 농사지어 얻은 소득은 저축해 두고, 감나무 팔아서, 참외밭 가꾸어 참외 팔아서 가용(家用)으로 쓰신 거란다. 생활비를 거기서 충당하니까 유학 보내 학비를 댈 여윳돈이 있으셨던 거지.

감나무 한그루에서 감이 얼마나 많이 열리니? 아무리 헐값이라도 한 나무에서 몇 상자씩, 열 그루에서 딴 감을 팔면 수입이 짭짤하지 않았겠니?"


질문 3. 단감나무에 대해 작은 아버지께서 가지고 계신 좋은 기억, 안 좋은 기억... 무엇이든 말씀해 주세요.


"시골집에서 여름날에 주로 마루에서 밥을 먹었잖니? 밥을 먹고 있는데, '툭!' 앞마당 감나무에서 감이 떨어지는 소리가 나. 그러면 네 고모들이랑 나랑 그 감 주으러 달리기 시합을 한다. 서로 먼저 주워 먹고 싶은 마음에. 그런데 비가 자주 오는 여름철엔 흙마당과 감나무 밑엔 이끼가 끼어있기 마련이지. 달려가다가 꽈당 미끄러진 기억이 난다. 누가 달리기가 빨랐든 넘어진 사람은 꼴찌가 되는 거지. 감도 놓치고... 허허."


"뒷마당에 있던 단감나무 중에 담장 옆에 있는 감나무가 서리를 많이 당했어. 할아버지께서 감나무 밑에서 자면서까지 서리하는 애들을 잡으려고 하셨지. 그런데 하루는 밤중에 서리하는 애를 잡아보니, 서리 두목이 외손주였던 거야. 자식 낳고 일찍 세상을 떠난 내 큰 누님의 아들말이야. 외손주이니 할아버지가 야단도 못 치시고 보내셨대. 또 우스운 건, 아무리 감 서리를 막아보려고 해도, 서리하는 사람들이 비 오는 날, 할아버지께서 감나무 아래서 못 주무시는 날을 틈타 서리를 하더란다. 허허."




"셋째 언니, 언니는 우리 시골집 감나무에 대해 어떤 게 기억나요?"


"난 추억이 너무너무 많아. 나도 우리 시골집 감나무 무지 사랑하지."


추억 1. "내가 2학년 때였을 거야. 감나무 가지에 앉아 구구단을 외웠는데, 1단부터 9단까지 30분 만에 외워버렸단다."


추억 2. "또 감나무 밑에서 노래를 무척 많이 불렀어. 그 당시 텔레비전 광고에서 나오는 CM송들 있잖아. 열두 시에 만나요 OOO콘~, 손이 가요 손이 가 OO깡에 손이 가~, 껌이라면 역시 OO껌 ~ 같은. "


추억 3. "추석에 서울 고모 딸한테 물려받은 연두색 한복을 입고 감나무 밑에 갔었는데, 쐐기에 물리지 않았겠니? 얼마나 따갑고 아팠던지, 엉엉 울면서 나 이 한복 안 입을 거야 하고 투정 부렸던 생각도 난다."


추억 4. "뒷마당 감나무 밑에 커다란 소변 항아리 있었던 것 생각나니? 겨울철 밤새 방에서 요강에 모인 소변을 거기다 모아두었다가 감나무 한 그루 한 그루 둘레에 뿌려줬었어. 그렇게 우리 집 감나무가 영양분을 듬뿍 공급받아 맛있는 감을 낼 수 있었던 거지."


추억 5. "저녁 먹은 후 너랑 나랑 감나무 밑에서 노래 부른 것 기억나니? 거의 1시간을 넘게 불렀어. 나는 이게 우리 집 단감나무가 맛있었던 이유 중에 큰 몫을 차지한다고 생각해. 고운 노랫소리 들으며 자라니 감나무가 항상 행복하고, 그 행복감당도를 높이지 않았겠어?"


"동감해요. 우리 집 단감 맛은 비교불가야. 아무튼, 언니는 추억이 참 많네요. 기억도 잘하고... 하하."




"미나뵈뵈, 넌 어떤 추억이 있니?"


"나는, 집집마다 전기세를 받으러 다니시던 내 친구 아버지가 계셨는데, 그분이 전기세를 받으러 왔다가 할아버지랑 '감 판매'와 관련된 대화를 나누셨던 게 기억나요. 요즘 말로 하면 '딜(Deal)'을 하고 계신 거였겠죠?"


"또 한 번은, 엄마가 시장에서 사 주신 파란색 운동복(추리닝이라 했었지) 한 벌을 입고 감나무 아래 있었어요. 감나무를 돌아보고 계시던 할아버지께서 저를 보시고, '얘는 누구냐?'라고 물으셨던 게 생각나요. 평소 때 내가 입던 옷이 아니라 낯설게 느껴지셨나 봐요. 막내 손녀를 못 알아보셨어... 하하."


"결혼하고 나서 일인데, 가을에 아버지가 단감 한 박스 보내셨어요. 상자를 여는데 눈물이 핑 돌더라고요. 할아버지 떠나시고 남은 자리에서 감나무를 이어 돌보시다가, 막내딸 생각나서 보내주신 아버지의 마음에... 남편한테 잔뜩 상기된 얼굴로 이거 우리 집 단감이라고 맘껏 자랑하고 같이 먹었더랬죠."




감나무에 관련된 추억을 수집하면서 시골집 감나무가 우리에게 어떤 의미였는지 새삼 깨닫게 된다.


- 감나무는 우리 가족이고 우리 집의 역사다. 감나무는 세 세대를 거쳐 우리와 함께 했다. 우리 가족의 희로애락, 생로병사를 지켜보며 거기 서 있었다. 우리가 그 집과 감나무를 떠날 때까지.


- 감나무는 사랑이다. 집을 세우고 자식, 손녀들까지 가르치기 위해 깐깐하다는 말까지 들어가시며 뒷바라지하셨던 할아버지, 떨어진 감을 향해 줄달음쳤던 우리 윗세대 꼬마들, 딸에게 수확한 단감을 보내신 아버지와 감나무를 향해 노래를 들려줬던 자매들이 베푼 사랑과 받은 사랑.


- 감나무는 늘 우리에게 그리움이다. 우리의 추억의 시조이신 할아버지에 대한 그리움, 말로 별로 표현 안 하시지만 행동으로 그분의 사랑을 보여주신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 금방이라도 그 장면 안에서 뛰어놀고 깔깔댈 것 같은 유년 시절과 유년 시절에 맛본 그 맛에 대한 그리움.


- 감나무는 맛남(만남)이다. 우리 집 단감나무의 맛남을 아는 사람들의 현재의 나와 유년 시절의 나와의 만남이다. 이 맛남을 기억하고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만남이다. 또한 어디에서든 나를 그리움과 추억 속으로 즉각 데려가는 강력한 매체와의 맞닥뜨림이다.



단감나무에 대한 추억 수집 기록을 마치며 외친다.

사랑한다, 감나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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