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학교 보내고 내가 한 일들
발리에서 생활한 지 12일째 되던 날, 나는 아이가 다니는 학교의 카페 한 켠에 앉아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었다. 정확히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을 하고 있었다.
8박 9일 동안 함께한 부모님이 한국으로 돌아가시기 전날, 남편이 입국했다. 그리고 사흘째 되던 새벽, 아이가 발리밸리에 걸렸다. 토와 설사가 이어졌고, 나는 그 작은 등을 쓸어내리며 아이 곁을 지켰다. 다행히 병원을 다녀온 그날 오후, 아이는 빠르게 회복했다. 아이는 학교에 완전히 적응했고, 남편도 곁에 있었다. 처음 일주일처럼 긴장의 끈을 바짝 쥐고 있을 필요가 없어졌다. 그제야 나는, 발리를 살기 시작했다.
발리 하면 가장 먼저 떠올랐던 건 요가였다. 특히 우붓의 요가는 워낙 유명해서, 오기 전부터 꼭 해봐야지 마음먹었었다. 강아지와 함께하는 요가, 사운드 요가, 선라이즈 요가 등등 인스타그램 속 발리는 늘 초록의 자연 아래 완벽한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그런데 막상 와보니, 발길이 잘 떨어지지 않았다.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주고 나면, 나는 그냥 학교 카페에 남았다. 키가 큰 나무 사이로 통하는 바람이 더운 공기를 가르고, 앉아 있는 내내 녹음의 냄새가 났다. 굳이 택시를 잡아 타고 우붓 시내로 나가지 않아도, 굳이 시간 맞춰 수업을 찾아가지 않아도, 거기 그냥 앉아 있는 것만으로 충분히 좋았다. 때로는 일을 했고, 때로는 멍을 때렸다. 그게 전부였는데, 이상하게 충만했다.
그러던 중 3주차에, 같은 학교에 아이를 보내기로 마음먹은 친구가 한국에서 발리로 날아왔다. 친구는 부지런했다. 이미 갈 만한 요가원을 알아봐 뒀다고 했다. 나는 친구 손에 반쯤 이끌리듯, 처음으로 요가원에 갔다. 남편도 함께.
예상대로 요가원은 예뻤다. 열대 나무가 울창한 우붓의 숲 한가운데, 시원하게 통창으로 트인 공간에서 수업이 진행됐다. 바람 소리와 새 소리가 배경처럼 깔렸다.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영어로 진행되는 수업에서 나는 자꾸 리스닝에 집중하느라 정작 내 몸을 잊었다. 선생님의 다음 지시를 놓칠까봐 귀를 곤두세우고 있으니, 요가가 요가 같지 않았다. 좋긴 했지만, 열심히 하는 것보다 그냥 설렁설렁 흘려보내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
결국 한 달 살기를 하는 동안 요가원에는 그날 딱 한 번 갔다. 남들은 매일 요가를 간다는데, 나는 그러지 않았다. 그래도 괜찮았다.
반면, 무드라 카페는 한국에서부터 저장해 둔 곳이었다. 일부러 핸드팬 연주가 있는 날에 맞춰 찾아갔다. 연주자의 배경으로 초록이 흔들렸고, 핸드팬에서 울려 퍼지는 소리는 공기 중에 천천히 번졌다. 소리가 눈에 보이는 것 같았다. 처음 먹어본 요거트볼은 색깔만큼이나 맛있었고, 우리는 그 자리에 오래 머물렀다.
며칠 뒤 핸드팬을 직접 배워볼 수 있는 수업이 있다는 걸 알게 됐고, 친구와 함께 참석했다. 난 솔직히 요가보다 좋았다. 처음 두드려 본 핸드팬에서 소리가 났을 때의 그 느낌을, 아직도 손바닥이 기억하고 있다.
솔직히 별거 없다. 매일 새로운 곳을 다니지도, 매일 요가 매트 위에 서지도 않았다. 대신 가끔 카페를 갔고, 바람을 느꼈고, 아이 얼굴을 자주 들여다봤다.
한 달 살기를 계획하면서 나는 '발리에서 뭔가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요가도 배우고, 서핑도 해보고, 힐링도 하고. 그런데 실제로 발리에서 내가 얻은 가장 큰 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을 용기였다.
느슨해도 괜찮다는 마음, 가짐
그게,
내가 발리에서 한 가장 잘한 일이다.
*업데이트 : 화, 금
겨울방학 동안 발리 한 달 살기를 마치고 돌아왔더니 주변 엄마들이 물었다. "발리 어땠어", "영어 캠프 괜찮았어?", "총 얼마 들었어?" 등등… 그래서 친구들의 질문에 답을 하듯, 직접 경험한 발리 한 달 살기를 하나씩 정리해본다.
발리 장기 여행을 계획하는 분들에게는 참고가 되고, 여행을 좋아하는 분들에게는 낯선 섬에서 보낸 한 달의 에세이 같은 기록으로 읽히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