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리밸리를 피하는 방법

웰컴티를 마시지 말라고?

by 미나리즘

Q8. 발리밸리, 안 걸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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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서워서 환영조차 거절해야 하는 여행

발리 여행을 계획하다 보면 한 번쯤 듣게 되는 단어가 있다. ‘발리밸리’다. 나 또한 여행을 준비하면서 이 단어를 여러 번 접했다. 웰컴티 마시지 말라는 이야기부터, 음식점에서도 물은 피해야 한다, 얼음이 들어간 음료는 특히 위험하다는 조언까지 여행 준비 과정에서 접한 정보들은 점점 많아졌고, 그럴수록 여행이 기대보다는 조심해야 할 것들로 가득한 일정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막상 발리에 도착하고 보니 상황은 생각과 많이 달랐다. 더운 뜨거운 햇볕 아래에서 이동하다 숙소에 도착했을 때 건네받는 시원한 웰컴티는 생각보다 강한 유혹이었다. 더위에 지친 몸으로 시원하고 달콤한 음료를 앞에 두고 마시지 않는다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이었다. 발리밸리를 피하기 위해 모든 것을 조심하겠다고 마음먹었지만, 현실 속에서는 매번 그 선택을 지켜내기가 어려웠다.


그 선택이 불안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겠지만, 동시에 그 순간은 ‘아, 여행을 왔구나’라는 감각을 되찾게 해주기도 했다. 여행지에서의 작은 환대와 여유를 온전히 받아들이는 순간이었고, 그렇게 나의 발리 생활이 조금 더 살아보는 여행이 되어갔다.


*발리밸리란?
발리밸리(Bali Belly)는 발리 여행 중 물, 음식, 환경 변화 등으로 인해 발생하는 설사, 구토, 복통 등의 배탈 증상을 통칭하는 여행자들 사이의 표현이다. 정식 병명은 아니며, 세균성 장염이나 식중독, 환경 변화로 인한 소화기 질환 등을 포함해 흔히 ‘발리밸리’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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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심한 순간, 찾아온 발리밸리

발리 생활 11일째 되던 날 새벽, 발리밸리에 대한 긴장이 풀릴 무렵이었다. 아이가 아프기 시작했다. 밤새 뒤척이던 아이가 새벽녘 급히 화장실로 달려갔고, 구토와 물처럼 쏟아지는 설사가 이어졌다. 배가 꿀렁꿀렁 아프다며 얼굴이 창백해지는 아이를 보면서, 발리밸리라는 단어가 머릿속을 스쳤다. 다행히 열은 없었지만 증상은 꽤 심했다. 짧은 시간 안에 여러 번 이어진 설사는 분명 가볍게 넘길 상황이 아니었다.


하필 그날은 2주간 신청해 둔 영어 캠프 두 번째 주 월요일이었다. 아이는 아픈 와중에도 학교에 가고 싶다고 했고, 일단 등교를 했지만 학교에 도착하자마자 다시 화장실로 직행했다. 그 순간 더 이상 버티는 것은 의미가 없다는 판단이 들었고, 바로 병원을 찾아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낯선 나라에서 병원을 찾는다는 것이 쉽지 않은 결정이었지만, 아이의 상태를 보니 망설일 여유가 없었다.


다행히 학교에서 만난 한국 어머님이 병원 정보를 알려주셨고, 야채죽과 누룽지까지 챙겨주셨다. 낯선 여행지에서 받는 도움은 평소보다 더 크게 느껴진다. 날의 작은 친절은 불안했던 마음을 조금은 가라앉혀 주었고, 우리는 우붓에 있는 작은 병원인 우붓 로얄 메디컬로 향했다.


발리밸리, 빠른 대응이 답이었다

병원으로 가는 길에 잠시 고민이 들었다. 한국에서 가져온 배탈약을 먼저 먹여볼까 하는 생각이었다. 인터넷에서는 수액을 맞거나 입원을 하면 병원비가 많이 나온다는 이야기도 있었고, 여행자 보험을 들고 왔지만 혹시 보험 처리가 되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도 들었다. 하지만 설사와 구토가 반복되는 상황에서 시간을 지체하는 것이 더 위험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결국 현지 병원을 선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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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은 생각보다 깔끔했고, QR코드로 간단히 등록한 뒤 대기 없이 바로 진료가 시작됐다. 외국 병원이라 가장 걱정됐던 것은 의사소통이었지만, 의사 선생님이 번역기를 사용해 한글로 설명해주면서 그 걱정은 금세 사라졌다. 몇 번 토했는지, 설사는 몇 번 했는지, 전날 먹은 음식은 무엇인지 등 생각보다 꼼꼼한 문진이 이어졌고, 이후 체온 측정과 복부 촉진, 청진, 혈압 측정까지 기본 검사가 진행됐다. 다행히 탈수 증상은 없었고 수액은 필요 없다는 판단이 내려졌다.


의사 선생님은 얼음이 든 음료를 마셨는지 물었고, 나는 솔직하게 마셨다고 답했다. 하지만 열흘 동안 아무 문제 없이 지냈던 점을 고려하면, 단순히 음식 때문만은 아닐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의사 소견으로는 수영장 이용과 피로 누적이 겹친 영향일 수 있다고 했다. 실제로 아이는 전날과 그 전날 수영장에서 하루 종일 놀다시피 했고, 여행 일정으로 피로도 쌓여 있던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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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는 구토 억제 물약, 설사 억제 약, 유산균, 전해질 파우더까지 총 네 가지 약을 처방받았다. 그리고 놀랍게도 약을 먹은 후 그날 오후, 설사가 바로 멈췄다. 푹 자고 일어난 아이는 눈에 띄게 컨디션이 좋아졌고, 그제야 긴장이 풀렸다. 진료비와 약값을 포함한 비용은 약 7만 원 정도였고, 보험 제출용 서류도 병원에서 왓츠앱으로 바로 보내줬다. 해외 병원 이용이 막연히 어렵게 느껴졌는데, 막상 경험해 보니 생각보다 훨씬 간단하고 체계적이었다.


이번 경험을 통해 발리밸리는 무조건 겁먹을 필요도 없지만, 괜히 버틸 필요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설사와 구토가 반복되고 아이가 괴로워한다면 한국에서 가져온 약으로 버티기보다 현지 병원에서 정확히 진단받는 것이 훨씬 낫다. 이번 여행에서 가장 잘한 선택은 빠르게 병원을 찾았던 것이었다. 새벽 6시에 증상이 시작됐고, 오전 11시에 병원을 방문했으며, 첫 약을 먹은 뒤 하루 만에 증상이 호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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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리에서의 한 달이
결코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아이가 아파 병원을 찾기도 했지만, 그런 경험까지 더해져 오히려 발리를 더 깊이 살아본 여행처럼 느껴졌다. 물론 아프지 않고 지나갔다면 더 좋았겠지만, 그 하루마저 발리에서의 시간을 더욱 또렷하게 만들어주었다.


발리밸리를 피하는 방법은 완벽하게 예방하는 것이 아니라, 너무 두려워하지 않되 빠르게 대응하는데 있는지도 모른다. 여행이 늘 예상대로만 흘러가지는 않지만, 그날의 불안과 걱정까지 여행의 한 장면으로 남게 되었다.


*업데이트 : 화, 금

겨울방학 동안 발리 한 달 살기를 마치고 돌아왔더니 주변 엄마들이 물었다. "발리 어땠어", "영어 캠프 괜찮았어?", "총 얼마 들었어?" 등등… 그래서 친구들의 질문에 답을 하듯, 직접 경험한 발리 한 달 살기를 하나씩 정리해본다.

발리 장기 여행을 계획하는 분들에게는 참고가 되고, 여행을 좋아하는 분들에게는 낯선 섬에서 보낸 한 달의 에세이 같은 기록으로 읽히길 바란다.








화, 금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