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한라산의 눈
한라산은...,
한라산은 가끔 눈이 내리지 않으면, 등산을 하는 사람들이 싫어할까봐? 거센 북풍을 몰고 와서는 이미 내린 눈을 다시 하늘로 날리며 마치 눈이 오는 현상이 일어나게 만든다. 그래서 맑은 날이 아닌 경우는 항상 시야가 뿌옇다.
그날도 그랬다.
하늘엔 구름도 아름답다 이야기 들을 정도로 떠 있는데, 그놈의 한라산의 몽니로 인하여 전방이 흐렸다. 그래도 조심조심 발걸음을 옮기며 1600고지를 걸어 내려가는 두 여인! 그 여인들의 발자국 소리를 들으며, 나의 발자국 소리는 최대한 줄이려고 노력했다. 내 발자국 소리에 앞서 걷던 두 여인이 돌아보는 순간, 늙은 할아버지의 모습이 희미하게 보일 터이고, 순간 실망한 나머지 내뿜는 한숨으로 인하여 입에서 새어나오는 공기가 하얗게 빠져나오며 나의 시야를 더욱 흐리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다행히 1400고지 사제비 숲 입구까지 나의 염려가 “헛된 것이었다.”는 것을 보여주듯이, 아무 일도 없이 그녀들은 내 앞에, 나는 그녀들 뒤에 내려왔다.
힘겨운 나날들, 무엇 때문에 너는
쓸데없는 불안으로 두려워하는가.
너는 존재한다-그러므로 사라질 것이다.
너는 사라진다-그러므로 아름답다. ... 쉼보르카의 시 “두 번은 없다.” 중에서
쓸데없는 염려가 헛된 것을 느껴야, 나는 내가 쓸데없는 염려로 두려움을 가졌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괜한 염려로..., 그녀들의 뒤를 따라 걷기 시작할 때에 “쓸데없는 불안으로 두려워하는가?”라고 나에게 스스로 질문을 했었다면, 난 이 산길을 걸어 내려오면서 그런 염려나 불안이 없었을 텐데, 늦게 후회해보지만 이미 늦었다.
뭔가를 시작하기 전에 스스로 나에게 앞으로 어떤 불안 요소가 생길 것인가? 아니 생길 수도 있는가? 이런 것들을 생각해보고 “허~ 그거 쓸데없는 것이로구나!”라고 판단을 할 수 있었다면 좋았을 터인데, 시야를 가리려는 한라산의 몽니로 인하여 그런 생각할 틈을 가지지 못한 것은 아닌지? 한라산에게 탓을 돌려보지만, 이미 벌어진 일이다.
사제비 숲으로 들어가자, 나는 아주 천천히 눈이 수북이 쌓인 계단을 내려간다. 숲이라 조금만 앞서가도 그녀들을 볼 수가 없다. 그렇다. “너는 존재한다, 그러므로 사라질 것이다.”, 그랬다. 그녀들은 숲으로 가려 보이지 않고 사라졌지만, 분명 비명소리도 들리지 않는 것을 보니 그녀들은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녀들은 사라졌다. “그러므로 아름답다.”, 아하! 내가 보고자 하는 사물들 앞에 어른거리던 그녀들..., 그녀들이 사라짐으로 인하여 나는 내가 보고자 하는 사물들을 더 자세하게 볼 수가 있다. 그래서 아름답다고 하는 것인지? 고개를 갸우뚱거리지만 해답은 찾을 수가 없다.
시인 쉼보르카에게 물어볼까?
1996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폴란드가 낳은 여류시인이란다. 대답하기를 ‘깊은 통찰을 통하여 답을 얻어라.“라고 말하는 같다. 으잉? 깊은 통찰! 나는 힘이 없어 ”통“을 ”찰“ 수가 없는데, 어쩐담? 에이 모르고 넘어가자. 내가 살아오는 동안 모든 것에 답을 구하며 그리고 얻으며 살진 않았잖은가?
그래도 다시 읽어보자.
그녀들은 존재한다 – 그러므로 사라질 것이다.
그녀들은 사라진다 – 그러므로 아름답다.
음..., 과정들을 없애보자. 과정 “사라질 것이다. 사라진다.”를 없애고 남은 것만 다시 읽는다.
“그녀들은 존재한다 – 그러므로 아름답다.”
와~ 그거다.
그녀들이 존재했기에 이 세상은 아름다운 것이다. “사라진다.”를 사라지게 만듦으로써 얻은 나의 결론! 동의하는가? “A이면 B이다. B이면 C이다.”에서 B과정을 없애서, ”A이면 C이다.“라고 결론을 내려 생각하는 거!
갑자기 하늘에서 필통 날아오는 소리가 들린다. 엉터리로 해석해서 읽는 나를 보고 쉼보르카가 나를 향한 화난 몸부림이다. 피하며 말한다. 노벨문학상을 받은 사람이 그러시면 아니 되지요?
행복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