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계획표, 일정표,다어어리중독자
나는 계획표를 사랑한다.
계획대로 사는 걸 좋아하는 건 아니다.
만들어 놓은 계획표를 보면 못 지키는 것들이 더 많다.
그래도 나는 무슨 일을 하기 전, 항상 계획표를 세운다.
매일 아침, 매주 일요일 혹은 월요일, 매달 월말이나 월초, 매해 연말이나 연초
아니 솔직히 수시로 다양한 것들에 대한 계획표를 세운다.
다이어리에만 계획을 쓰는 게 아니라 노트에도 쓰고 종이에도 쓰고 심지어 카페에선 냅킨에 계획을 쓰기도 한다. 유명한 작가나 예술가 중에 냅킨에 글도 쓰고 그림도 그리고 했다던데 내 냅킨엔 계획표가 있다.
그렇다고 내 계획표에 무슨 대단한 것들이 있는 것은 아니다.
주로 내가 해야 할 일들을 적는데
- 새벽 기상, 새벽 기상 루틴, 아침, 점심, 저녁 식사 시간, 수업 준비하기, 수업 일정, sns 업로드 하기, 청소하기, 세탁기&건조기 돌리기, 보육료 결제하기, 마트 다녀오기, 공부하기 등등
눈을 떠서 눈 감을 때까지 해야 할 모든 일들을 적어 놓고 언제 하면 좋을지 어떤 순서로 하면 좋을지 테트리스 맞추듯 끼워넣기를 하고 있다.
가끔 이런 쓸데없는 짓을 왜 하고 있나 싶다. 일어나고, 먹고, 씻고, 자고, 그리고 처리해야 할 일들을 꼭 시간과 순서에 따라 계획을 해서 적어야 하나? 그냥 하면 되잖아? 계획 짜는 시간에 뭐라도 하나 하겠다!!
실제로 계획표 짜는데 30분, 1시간이 걸리기도 하고 그 계획대로 착착착 실천하지도 않는다. 실천하는 날보다 못하는 날이 더 많다. 그런데도 나는 왜 이렇게 계획표에 집착을 할까?
그건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많아서다.
사실 우리의 하루는 하고 싶은 일보다 해야 할 일이 더 많다.
생존을 위해서는 일단 먹고, 자고 이런 시간이 필수다. 거기다 생계를 유지하려면 돈을 버는 시간도 필수로 써야 하고, 출산과 육아를 거치면서 아이와 관련된 시간 또한 강제적으로 쓰게 된다. 이런 필수 시간을 보내고 나면 에너지 보충할 시간도 필요한데 나는 '나를 위한 시간'이 그 에너지를 보충하는 시간이고 이 시간에 하고 싶은 것이 너무 많다는 게 문제 아닌 문제다.
이 '나를 위한 시간'에는 항상 갈등이 있다. 놀고먹고 쉬는 시간과 무언가를 배우고 그것을 풀어내는 시간 이 두 시간을 놓고 저울질을 하게 된다. 전자는 몸이 편한 대신 마음이 어딘가 모르게 찝찝하고 불편하다. 후자는 뭔가 나라는 사람이 풍부해지는 느낌은 들지만 에너지 소비가 되는 건 사실이다.
필수 시간 + 두 가지의 '나를 위한 시간'을 잘 챙겨 보기 위해 나는 항상 계획표를 만든다.
어느 날은 필수 시간만으로 하루가 다 가는 날도 있고 어느 날은 '나를 위한 시간'을 놀고먹고 쉬는 소비의 시간으로 쓰기도 한다. 그러다 '나를 풍부하게 만드는 시간'을 오래 놓고 살았다는 생각이 들 때, 그때 나는 다시 계획표를 만들기 시작한다. 팍팍해 보이는 내 삶에서 어떻게든 숨 쉴 틈을 찾는 시간, 그 시간이 계획표를 만드는 시간일지도 모르고 내가 계획표에 집착하는 이유일지도 모르겠다.
아! 나에게 계획표를 만드는 시간은 힐링의 시간이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