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랜서의 경력 단절, 경력 전환 고민
2편에서 아날로그 노마드였던 저의 프리랜서의 삶이 마냥 좋지 않다. 이런 내용의 글을 썼습니다. 출퇴근 시간이 자유로운 것도, 노력하는 만큼 수익이 내는 것도 쉽지 않다는 이야기를 했었죠. 너무 부정적으로 쓴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프리랜서의 삶이 주는 장점도 충분히 많으니까요.
출퇴근 시간이 마냥 자유롭지는 않지만 시간 관리를 얼마나 하느냐에 따라 여유 시간을 누릴 수도 있습니다. 특히 낮 시간에 처리해야 할 은행이나 관공서 업무를 여유롭게 처리할 수 있어요. 유명한 맛집이나 전시회, 공연 등도 평일 낮 시간을 이용하면 느긋하게 다녀올 수 있어서 한동안은 맛집 투어와 전시회 탐방이 취미였던 적도 있었습니다. 고액 연봉자는 아니어도 제 소비 생활에서 부족함 없이 먹고 싶은 것 먹고, 사고 싶은 것 사고, 가고 싶은 곳 갈 수 있는 '안분지족'의 삶은 충분히 가능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제일 큰 장점이었어요. 저는 언어를 좋아하고 가르치는 것을 좋아하는 천 상 외국어 강사 기질을 타고났다고 생각해요. 이 능력 외의 다른 건 다 제로에 가까워서 조물주가 계시다면 저를 창조할 때 몰빵 기술을 발휘하신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요. 어찌 됐든 수업을 하면서 제가 알고 있던 지식을 다지고 또 새롭게 깨닫거나 배우는 시간들로 수익도 만들 수 있으니 너무 신나고 재미있는 일이었어요. '그래! 대기업 취업보다 내가 하는 일이 더 재미있고 보람도 있지!' 하면서 자부심이 어깨 끝까지 올라간 적도 있었어요. 직장인도 겪는다는 3, 6, 9년 차의 위기를 겪기 전까지는 말이죠.
정확하게 3, 6, 9년 차에 매너리즘이 온 건 아니었지만 정말 비슷한 주기로 위기가 왔었어요. 처음에는 프리랜서로 자리를 잡고 한참 일이 잘 될 때였어요. 일이 잘 되니까 여기저기서 일이 들어오고 재미가 있으니까 No 없이 들어오는 대로 일정을 채워 나갔습니다. 일이 늘어나면서 배우는 점도 많고 성장하는 모습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조금 더 다양하고 레벨 업 된 수업을 준비하고 해 내는 시간에 뿌듯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일도 그렇고 체력도 그렇고 분명히 한계점이 있잖아요~ 아무리 체력이 좋고 일이 좋아도 수면 시간이 줄고, 여가 시간이 줄다 보면 한순간 일이 힘들어지더라고요. 눈 뜨면 강의 준비하고 일 끝나고 집에 오면 자기 바쁘고, 친구들 만날 시간도 점점 줄어들고 하면서 체력이 떨어지면서 감정적으로도 기운이 떨어지면서 부정적인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게다가 같은 시기에 졸업했던 친구들은 이제 대부분 직장인으로 취업에 성공해서 칼각 정장과 예쁜 구두 신고 출근하고 스타일도 점점 어른스러워지는데 저는 아직도 대학생처럼 청바지에 면 티나 앳된 스타일이다 보니 저도 모르게 비교하게 되더라고요. 내가 정말 이 선택을 잘 한 것인지? 앞으로 여기서 계속 잘 할 수 있을지? 그때 처음으로 경력 단절에 대한 고민을 시작한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이 시기에 저는 결혼을 하면 일을 그만두고 전업주부가 되고 싶은 마음도 있었기에 비교적 가볍게 위기를 넘길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앞으로 몇 년만 더 하고 결혼을 하게 되면 신랑이 주 수입을 책임지고 저는 일을 줄여서 용돈 정도 벌면 되겠지라고 생각하면서요. 경력이 단절돼도 (누군지 만나지도 못한) 신랑이 있으니 어떻게 되겠지라는 생각도 하면서 말이죠.
그러면서 일에 대한 부담감을 많이 내려놨어요. 일의 양도 좀 줄이고요. 언젠가 끝날지도 모르는 이 일을 조금 더 즐겁게 하는 방법을 찾아보자는 마음이었어요.
그렇게 위기가 지나가니 또 한 3-4년은 할만하더라고요. 적당히 배짱도 부려가며, 넘치는 일들은 주변에 연결해 주면서 느긋하고 여유롭게 아마 이때가 제 프리랜서 생활의 정점이지 않았나 싶어요. 수입도, 시간도, 일도 만족도가 최상이었던 시기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두 번째 위기는 20대 마지막에 온 것 같아요. 왜 나이에 9가 붙으면 괜히 마음이 싱숭생숭해지잖아요. 29살이 되던 해, 빠른 친구들은 이미 결혼을 해서 아이가 있는데 아직 결혼은 멀어 보이고, 이러다 미혼으로 살아야 하는 거 아니냐는 생각이 불쑥 들면서 프리랜서 생활에 대한 불안감이 확 치솟더라고요.
프리랜서는 정년 보장도 없고 언제 일이 끊어질지 모릅니다. 오늘 미칠 듯이 바빠도 내일부터는 일이 하나도 없을 수도 있죠. 제가 생각했던 제 일의 정년은 40대였고, 결혼을 하지 않는다면 그 이후 제가 먹고 살 대책을 마련해야 하는 거죠. 갑자기 마음이 너무 급해지고, 주변을 둘러보니 직장인 친구들은 이제 회사 생활에 어느 정도 적응을 하고 진급과 앞으로의 미래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을 그리고 있는 친구들도 많았는데.. 저는 미래가 그려지지 않더라고요.
결혼을 하지 않는다면? 내가 평생 나의 주 수입원이 되어야 한다면? 그래서 평생 일을 해야 한다면? 이렇게 생각하니 갑자기 제 일의 한계가 너무 명확하게 보이면서 '아차' 싶더라고요. 평생 이 일로 생계를 이어가야 생각 한순간, 프리랜서의 삶은 더 이상 즐겁고 여유 부리며 느긋하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닌 저의 생명줄이 되었습니다. 그것도 아주 불안정한 생명줄이오.
이때를 어떻게 이겨냈느냐는 노하우라고 말할 수 없을 것 같아요. '평생 혼자 나를 책임지며 살 수도 있겠구나!'를 받아들이고 대책을 생각하며 어딘가에 소속이 되어야 하나를 고민하던 중 지금의 신랑을 만나 결혼을 했으니까요. 정신없이 결혼 준비를 하면서 다시 한번 프리랜서의 탄력적인 시간 활용이 큰 도움이 되었고, 결혼 후에도 프리랜서 활동을 유지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니 불안은 다시 수면 아래로 내려갔습니다. 직장인인 신랑이 매일 칼퇴 하는 것도 아니고 주말에도 매주 2박 3일씩 여행 가는 것은 아니니 일과 가정의 양립이 충분히 조율 가능하리라고 생각한 거죠.
결혼을 하고 아이가 없던 1-2년간은 생각처럼 조율이 가능했습니다. 신랑이 칼퇴하고 제가 일이 있는 날은 자유를 주겠다며 생색을 내기도 하고 신랑 퇴근 전 제가 일이 끝나면 다른 직장인 부부들처럼 퇴근 후 데이트도 하면서 말이죠. 세 번째 위기이자 경력 단절과 전환, 그리고 새로운 꿈을 꾸게 된 건 출산 후 육아를 시작하면서였습니다.
저의 마지막 위기와 현재까지 진행 중인 위기 탈출 이야기는 마지막 시간에 풀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저의 프리랜서 이야기 시리즈가 궁금하신 분들은 이전 글들 보시며 기다려 주세요.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