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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채 May 23. 2016

달 뜬 밤에 꺼낸 글

추억과 소설 그 어느 중간에서



여자는 남자와 전화하던 어느 밤이 떠올랐다.

술에 젖은 목소리로 대뜸 사랑한다고 말하는 남자가 그리워 여자는 울음 소리가 들리지 않게 베개에 얼굴을 묻었다.



그렇게 큰 남자가 가끔 작아보이던 어떤 날에는 그의 외로움을 떼어 먹어버리고 싶었다. 식도를 타고 내려간 외로움이 그녀의 외로움과 만나 더 큰 외로움이 된다 해도 괜찮았다.


반 쯤 썰어진 달은 몇 시간동안 저만큼이나 자리를 옮겼다. 남자는 여자와의 매순간이 믿겨지지 않는다고 했다. 뜨거운 태양 그 아래의 두 사람, 그 아래의 끝없이 펼쳐진 길. 여자는 해에게서 남자를 찾고 달에게서 남자를 찾았다.






흰 목에 점이 있었다. 얼굴에도 있었다. 그것들을 모두 이으면 어떤 그림이 될까 궁금했다. 어느 밤 여자로부터 받은 사진들을 보고 남자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수많은 사진 속에 묻힌 채 남자는 한번도 받아본 적이 없는 선물이라며 감동이라고 했다. 그는 부드럽다. 부드러운 사랑에서부터 갈기갈기 찢기는 이별의 과정에서도 마지막 포옹에서도 마지막 뒷모습에서도 남자는 부드러웠다. 차라리 모질게 대했으면 그를 미워 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매정한 얼굴의 남자는 여자와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지겹다는 표정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남자는 10분도 앉아있지를 못했다. 여자는 말했다. 외로운게 싫어. 문장이 단어로 흩어지고 단어가 자음과 모음으로 흩어졌다. 그가 탄 택시가 빠르게 밤 안으로 사라지며 공중으로 흩어진 말들은 그 속도에 빨려 바닥으로 내팽개쳐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자는 그것도 사랑이라고 밤이 가도록 택시가 떠난 자리를 뜨지 못 했다. 다시금 되돌아올 것만 같다. 약속 장소에 여자가 나타나면 다른 말들 대신 보고싶었다는 포옹을 해주던 날들처럼, 눈을 한번, 두 번, 깜박이면 남자가 자신을 안고 있을 것만 같다고, 여자는 기우는 달에게 똑같은 레퍼토리의 하소연을 했다.




달은 너무도 마음이 여려서, 그저 들어주는 것 밖에 할 수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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