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arvis Feb 11. 2019

2019년, 아슬아슬한 진실 위를 달리는 자들

SF명작 <블레이드 러너>를 보고

2019년은 SF영화사에서 의미있는 해이다. 왜냐하면 고전 SF중 시대를 앞서간 명작이라는 평가를 받는 <블레이드 러너>의 배경이 1982년에 제작될 당시로부터 약 30년 후인 2019년이기 때문이다. <블레이드 러너>가 극장에서 상영될 당시 관객 및 평단의 반응은 굉장히 부정적이었다고 한다. 도대체 영화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모르겠다는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기술이 발전하면서 컴퓨터 그래픽 등의 현대적인 기술을 적용한 SF영화가 제작되기 시작했다. 그로 인해 <블레이드 러너>라는 고전 SF가 재평가를 받았다. 지금까지도 현대 SF영화의 시초라고 평가받을 정도로 명예로운 자리에 있는 영화이다.

30년 전 묘사한 2019년은 꽤 흥미롭다. 지구는 핵전쟁으로 인해 점점 인류가 살기 어려운 환경이 되어가고, 거대 기업인 타이렐 사는 인간을 매우 닮은 리플리컨트(복제인간)를 제작하여 그들을 이용하여 오프월드라는 우주 식민지를 건설 중이다. 하지만 일부 리플리컨트의 반역으로 인해 그들의 지구 출입이 공식적으로 금지되었다. 그리고 밀입한 리플리컨트를 추적하고 퇴역시키는 일을 하는 사람이 영화의 제목이기도 한 '블레이드 러너'이다.

SF영화의 장르 특성상 전개가 어렵게 느껴지는 경향이 있고, 사람들도 SF영화는 어려운 영화라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는 듯 하다. <블레이드 러너> 역시 그렇기는 하지만 잘 들여다보면 줄거리는 간단하다. 과거에 능력있었으나 현재는 은퇴한 블레이드 러너 '데커드'가 지구에 밀입한 4명의 리플리컨트 반란군(로이, 프리스, 조라, 레온)들을 퇴역시키기 위해 복귀하여 그들을 차례차례 잡으러 다니는 이야기이다. 한 문장으로 정리될 정도로 줄거리는 간단하지만 그 속에서 감독이 표현하는 메세지는 간단하지 않다. 감독은 일부러 인간들과 리플리컨트들의 행동을 대조되도록 묘사한다.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리플리컨트들, 그리고 리플리컨트들보다 인간적이지 못한 인간들을 보면서 관객들은 그동안 당연하게 생각했던 인간에 대한 진실에 대해 고찰하게 된다.

"진정한 인간다움이란 무엇인가? 인간이 아니지만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기계라면 그것은 정말 인간이 아닌 것인가? '인간'과 '인간적'인 것의 경계는 무엇인가? 인간과 기계의 경계는 무엇인가?"

작중에서 추례한 인간과 인간적인 리플리컨트의 대조가 가장 잘 이루어지는 스토리는 세바스찬과 프리스+로이의 모습이다. 세바스찬은 타이렐 사에서 리플리컨트를 만드는 디자이너이자 인간이다. 프리스와 로이는 그에 의해 디자인된 리플리컨트이다. 세바스찬은 인간이지만 그의 삶은 삭막하기 그지없다. 그는 여러 가구가 살 수 있는 낡은 건물에 혼자 살고 있고 그의 집 안 역시 그 이외의 사람은 없다. 대신 그의 집안에는 다양한 모양의 인형 로봇들이 잔뜩 있다. 세바스찬은 그 기계들이랑만 일방적인 소통을 하면서 살고 있다. 즉, 가장 기본적인 인간성 중 하나인 정서적 유대와 커뮤니케이션이 완전히 끊어져 있는 셈이다. 게다가 세바스찬은 이런 삶에 나름대로 만족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여담으로 나이에 비해 심하게 노안인 외모 또한 이런 상황에 있는 그의 처지를 심화시키는 듯 하다. 어쨌든 감독은 이런 장치들을 통해 인간성이 완전히 상실된 인간을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프리스와 로이는 다르다. 일단 둘은 서로 사랑하고 있다. 타이렐에게 직접 찾아가기 위해 그와 친분이 있는 세바스찬에게 접근한 프리스는 나중에 도착한 로이에게 조라와 레온이 살해당한 사실을 듣는다. 이렇게 극한 상황으로 치닫으면서 둘의 사랑과 유대는 더욱 긴밀해지고 소중해진다. 즉, 가장 기본적인 인간성을 가진 리플리컨트인 것이다. 소통이라는 관점에서 프리스&로이를 비롯한 리플리컨트들과 세바스찬&타이렐도 살펴볼 가치가 있다. 프리스와 로이, 그리고 프리스와 만나기 전 로이와 레온은 언제나 둘이 함께 움직였다. 즉, 직접적이었다. 하지만 세바스찬과 타이렐은 끝까지 서로 만나지 않는다. 둘은 며칠에 걸쳐 체스 경기를 하고 있었던 듯하다. 직접 대면하면서 즐기는 심리게임인 체스마저도 둘은 서로 전화를 통해 말을 놓는다. 즉, 둘의 관계는 인간도 아닌 기계들의 의사소통보다 훨씬 음울하고 피상적이었다. 개인적으로 몰입하여 영화를 보던 도중 한심하다는 생각이 드는 장면이었다.

어쨌든 세바스찬은 프리스와 로이의 꾐에 넘어가 함께 타이렐을 만나러 향한다. 인류는 우리의 창조주를 '신'이라고 칭하고 종교라는 이름으로 긴 역사동안 그를 우러러보았다. 하지만 인류는 아무리 노력해도 신을 만날 수 없다. 존재 유무조차 확실하지 않기 때문에. 그런데 인간도 아닌 리플리컨트가 인류가 평생을 노력해도 하지 못한 '창조주와의 직접 대면'을 이루어냈다. 필자는 무교이기에 그러려니 해도 종교를 믿는 사람은 많은 생각이 들법하다고 생각되는 장면이었다.

로이가 타이렐을 찾아온 이유는 별 게 아니다. 하지만 그 또한 인간뿐만 아니라 모든 살아있는 생명체에게 가장 중요한 본능이다. 죽음에 대한 공포. 더 오래 살고 싶다는 욕망. 로이는 절박했다. 자신의 동료들이 끔찍하게 죽어가는 상황에서 자신의 수명 또한 머지않았다는 게 두려웠다. 로이와 타이렐이 로이의 수명연장을 주제로 설전을 벌이는 과정에서 로이의 절박함이 느껴졌다. 타이렐을 아버지라고 부르면서 더 살게 해달라고 빌기까지 하는 모습. 추하긴 하지만 우리들도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자신이 곧 죽을 예정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그렇게 하지 않을까? 그 장면에서 로이가 보여준 건 추하지만 가장 인간적인 모습이었다.

반란군 집단인 4명 외에 영화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고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또다른 리플리컨트가 있다. 바로 레이첼이다. 레이첼은 다른 4명의 리플리컨트보다 특별하다. 왜냐하면 데커드를 만나기 전까지 자신이 리플리컨트라는 사실을 몰랐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른 4명에 비해 더 기억이 정교하게 조작되고 인간다워진 최신형 리플리컨트이다. 그녀는 데커드에게 리플리컨트 감별 테스트를 받은 후 자신이 리플리컨트라는 걸 알게 된다.     우리가 레이첼이라면 이 사실을 쉽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지구 상에 사는 사람 중 그럴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레이첼 역시 이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데커드의 집으로 찾아간다. 데커드를 만나자마자 그녀는 자신이 기억하는 어렸을 적 이야기를 생생하게 털어놓으며 자신은 리플리컨트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그녀의 행위는 오히려 자신이 리플리컨트라는 걸 반증하는 근거일 뿐이였다. 데커드는 레이첼이 하는 이야기를 중간에 끊고 그녀가 말하려고 했던 내용을 즉, 그녀만 알아야 정상인 그녀의 어릴 적 이야기를 그대로 해 준다.     


만약 레이첼이 그 이야기를 들은 후 자신이 리플리컨트라는 사실을 순순히 받아들였다면 어떤 행동을 취할까? 일단 데커드를 멀리해야 한다. 지구에 사는 리플리컨트들을 처형하는 일을 하는 블레이드 러너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신의 생존 확률을 높이기 위해 서둘러 리플리컨트 집단에 합류해야 한다. 타이렐 회장도 더 이상 그녀를 만나주지 않는 지금 같은 리플리컨트들과 행동을 함께 해야겠다고 생각하는 것이 이성적이다.     

하지만 우리가 레이첼이라고 생각해보자. 그런 상황에서 우리는 자기 자신이 리플리컨트라는 것을 순순히 인정할까? 절대 아닐 것이다. 정황상 매우 혼란스러울 수는 있으나 자신이 기억하는 지금까지의 모든 삶과 희로애락들이 만들어진 가짜라는 걸 순순히 인정할 사람은 없다. 이게 인간적인 감정이다. 자신의 삶의 주체가 나라고 생각하려는 의지와 자의식. 그리고 레이첼은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하는 그 인간적인 행동을 계속 보여준다.     

레이첼의 인간적임은 레온을 죽이는 장면에서부터 절정에 이른다. 영화 중반부에 데커드는 다음 사냥감인 레온에게 기습을 당하여 죽을 위기에 처한다. 하지만 그 순간 어느새 뒤에 온 레이첼이 레온을 총으로 사살했고, 덕분에 데커드는 목숨을 구한다. 이 상황은 레이첼이 자신이 리플리컨트라는 사실을 순순히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리고 자신이 리플리컨트라는 걸 아는데도 자신을 죽이지 않은 데커드에게 고마움을 느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그랬기 때문에 동족인 레온을 죽일 수 있었던 것이다. 결국 함께 집으로 돌아온 데커드와 레이첼은 서로 사랑에 빠지고 후반부에 함께 도망치는 결말로 끝이 난다. 레이첼은 자신의 삶을 순순히 타인에게 빼앗기지 않고 자신의 마음이 가는 대로 행동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주었다.

<블레이드 러너>의 하이라이트는 단연 데커드와 로이의 후반부 대결 장면이다. 로이는 자신의 죽음이 임박했음을 직감하고 데커드와 격렬하게 최후의 결전을 벌인다. 중간에 자신의 손이 마비되어가는 것을 느끼고 철심을 손등에 꽂아가면서까지 말이다. 사실 리플리컨트들은, 특히 신형 모델 넥서스6인 로이는 기본적으로 인간보다 신체능력이 월등하다. 데커드와 로이가 처음 대면했을 때, 로이가 데커드의 손가락을 가볍게 부러뜨리고 시작하는 것을 보면 짐작할 수 있다. 로이는 마음만 먹으면 한낱 인간인 데커드를(결과적으로 아니긴 하지만 이 당시 관객들은 데커드를 당연히 인간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손가락을 부러뜨리는 그 자리에서 죽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그 이후 추격전에서도 로이는 계속해서 데커드를 아슬아슬하게 살려준다. 그리고 마지막에 데커드가 건물 사이를 점프하다가 실수해서 추락할 위기에 처했을 때도 결국 살려준다.

로이는 애초에 데커드를 죽이려 했던 것이 아니다. 그는 데커드에게 끊임없이 누군가에게 추격당하고 있다는 두려움, 공포, 죽음 앞에서 아둥바둥 살려고 하는 인간의 본능을 직접 추격자가 되어 알려준다. 그동안은 데커드가 추격자였다. 데커드는 능력있는 블레이드 러너였고, 은퇴한 이후에도 지구에 잠입한 리플리컨트 집단인 로이, 프리스, 조라, 레온 4명 중 3명을 성공적으로 퇴역시켰다. 하지만 데커드는 사냥당하는 그들이 어떤 기분이었을지는 생각하지 않았다. 리플리컨트인 4명 역시 언제 어디서 죽을지 모르는 두려움과 공포라는 인간의 기본적인 생존본능 앞에서 떨었을 것이고 타이렐을 직접 찾아간 로이와 프리스는 절박하게 좀 더 살게 해달라고 외친다. 리플리컨트들이 그런 감정을 느끼도록 했던 데커드가 이제는 리플리컨트에게 당하고 있다. 그리고 데커드 역시 그들과 똑같은 감정을 느낀다. '당면한 죽음을 거부하고 어떻게든 살려고 하는 인간적인 본능 앞에서 당신과 나의 차이는 뭐지? 아무 차이도 없지 않은가? 인간인 당신이 두렵듯이 우리도 두려웠어. 그럼 우리도 인간과 마찬가지인 거 아닌가?' 아마 로이는 데커드를 몰아붙이면서 이런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영화는 위에서 소개한 여러 가지 장치들을 통해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했던 인간과 기계에 대한 진실과 경계를 흐리게 하고 다시 한 번 고찰하게 해주었다. 그리고 영화는 가프와 데커드를 통해 영화를 다 보고 나온 관객에게 또 한번 혼란을 안겨준다.

레이첼, 로이 등등 작중 등장인물들이 누구이고, 그들의 행동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다 알 것 같다. 그렇다면 정작 주인공이자 블레이드 러너인 데커드는 인간인가, 리플리컨트인가? 세월이 많이 흐른 지금은 감독의 오피셜을 통해 데커드가 리플리컨트임이 밝혀졌다. 하지만 당시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는 관객이 리플리컨트를 사냥하는 일을 하는 데커드 자신이 리플리컨트라는 생각을 하기는 쉽지가 않다. 인간이라고 생각하는 게 당연하다. 실제로 영화가 끝난 이후에 데커드의 정체에 대해 의견이 분분했다. 데커드의 정체가 논란이 된 이유는 영화 속 등장한 유니콘이라는 상징물 때문이었다.

유니콘은 영화 중에 3번 등장했다. 첫 번째는 맨 처음 데커드가 경찰서에서 복귀 명령을 받는 자리에서 옆에 있던 가프가 종이로 접고 있었다. 두 번째는 데커드의 상념 속에 나타났다. 그리고 마지막은 레이첼과 도망가기 위해 엘리베이터를 타기 직전 데커드의 집 앞에 종이 유니콘의 형태로 떨어져 있었다.

데커드가 유니콘을 떠올릴 당시 그는 집에서 피아노에 놓인 여러 사진들을 보고 있었다. 그 사진들이 무엇인지는 영화에서 전혀 언급되지 않았기 때문에 정확히 알 수 없다. 하지만 정황상 데커드의 어린 시절 혹은 무언가 소중한 추억이 담긴 사진으로 추측하는 게 타당해 보인다. 즉, 그 사진을 보면서 떠올린 유니콘은 데커드의 기억들 중 하나와 연관이 있다고 추론할 수 있다.

위에서 레이첼의 기억을 통해 그녀가 리플리컨트임이 증명되는 과정과 유사하다. 데커드의 기억(혹은 무의식)속에 있는 유니콘이라는 특수한 동물을 제3자인 가프가 이미 알고 있었다. 마지막에 종이 유니콘이 가프의 것인지는 확실치 않지만 적어도 제3자의 손으로 탄생했다는 사실은 확실하다. 즉, 데커드의 기억은 그의 것이 아니라 그를 만들 당시 이식된 것이라고 볼 수 있고, 이는 데커드가 리플리컨트일 수 있다는 주장의 근거가 된다.

실제로 데커드는 마지막에 바닥에 떨어져있던 종이 유니콘을 보면서 무언가 깨달은 듯한 표정을 지으며 끄덕인다. 동시에 영화에서 왼쪽 그림의 가프의 대사 "그 여자가 죽게 돼서 안됐어. 하긴 누군 영원히 사나?"가 오버랩 된다. 이 대사는 데커드와 로이의 대결이 전달하는 메시지를 한 줄로 압축한 명대사이다. '인간이든 리플리컨트이든 기간의 차이는 있어도 결국 죽는 건 똑같다. 당신이 사랑하고 지키려 했던 그 여자도 결국 죽을 것이다. 당신이나 그 여자나 그동안 당신이 기를 쓰고 사냥해 온 리플리컨트들이나 별 다를 바가 없다.' 이런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이처럼 가프의 대사와 데커드의 유니콘은 이 영화의 메시지 즉, 진실과 경계의 붕괴와 그에 대한 고찰을 한층 심화시킨다. 인간이든 기계이든 중요한 것은 얼마나 주어진 시간을 충실히 사는지, 얼마나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지, 얼마나 타인에게 공감할 수 있는지와 같은 인간적인 감정이다. 그리고 인간적인 감정을 가지고 있는 기계를 우리는 인간이 아니라고 매도할 수 있을까? 이러한 질문들과 메시지들은 1982년보다 오히려 인공지능이 발달하고 유전자 기술, 복제 기술이 발달하여 실현되려고 하는 현대에 더 생각해볼만 한 주제이다. 이 글을 읽고 인간인 것과 인간적인 것에 대해 한 번 더 깊이 생각해보길 바란다.

 I've seen things you people wouldn't believe. Attack ships on fire off the shoulder of Orion. I watched C-beams glitter in the dark near the Tannhauser Gate. All those moments will be lost in time, like tears in rain... Time to die.            - 로이 배티의 마지막 대사 中-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