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훈, 유해진의「왕과 사는 남자」

청령포의 기록되지 않은 시간을 ‘관계’로 채운 영화

by 민초매니아

조선의 비극을 떠올릴 때 많은 이들이 가장 먼저 기억하는 이름은 단종이다. 어린 나이에 즉위해 숙부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상왕에서 노산군으로 강등되어 유배지로 쫓겨난 뒤, 결국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한 왕. 이 서사는 너무도 잘 알려져 있다. 당시 조선의 막강한 군주는 세조였고, 그 아래 실권자 한명회가 있었다. 단종은 강과 절벽으로 둘러싸인 천혜의 고립지, 영월 청령포에 유배되었다가, 마지막에는 사약을 받고 그리고 차가운 동강에 내던져 졌다가, 오늘의 장릉에 묻힌다. 문제는, 이 경로를 관객이 너무도 정확히 알고 있다는 사실이다. 단종을 다루는 사극은 늘 같은 숙제를 안고 출발한다. 어디에서 긴장을 만들 것인가. 무엇으로 감정을 움직일 것인가. 결말이 정해진 이야기에서, 관객을 끝까지 붙들어 둘 힘은 무엇인가. 청령포라는 지명만 등장해도 이미 마음이 무거워지는 이 역사 앞에서, 영화는 선택을 해야 한다. 비극을 더 크게 증폭시킬 것인지, 아니면 전혀 다른 방향으로 우회할 것인지.


영화 「왕과 사는 남자」는 이 질문에 정면으로 답하지 않는다. 대신 시선을 살짝 비튼다. 우리가 익히 아는 ‘왕의 최후’가 아니라, 그 최후에 이르기 전 기록되지 않은 시간으로 들어간다. 실록이 거의 말해주지 않는 몇 달의 공백. 영화는 바로 그 틈에서 출발한다. 그래서 이 작품의 출발점은 역사적 사건이 아니라, 그 사건 사이에서 살아 숨 쉬었을지도 모를 사람들의 얼굴이다. 관객은 비극의 종착지를 알고 있지만, 그곳에 도달하기까지의 시간을 처음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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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의 출발점은 ‘충신’이 아니라 ‘쌀밥과 고기’다


「왕과 사는 남자」의 이야기를 끌어가는 첫 동력은 일반적인 사극에서 나오는 ‘충’이나 ‘의’ 따위가 아니다. 그 시작은 매우 현실적이고, 심지어는 속물적으로 보이기까지 한다. 광천골 촌장 엄흥도의 계산은 단순하다. 장래가 유망한 고관대작이 정치에 밀려 유배지로 내려오면 훗날 그사람이 복권할때를 대비해 줄을 대려는 많은 사람들의 지원이 있을 것이고, 그를 통해 마을 사람들이 쌀밥과 고기를 먹을 수 있을 거라는 계산이었다. 이 영화는 단종의 비극을 다루면서도, 그를 맞이하는 사람들의 사정부터 보여준다. 거대한 역사 대신, 당장 배를 채워야 하는 사람들의 삶을 먼저 꺼내 보인다. 이 설정은 사극의 무게를 의도적으로 낮춘다. 관객은 처음부터 ‘비운의 왕’을 마주하지 않는다. 대신, 먹고사는 문제로 머리를 굴리는 한 촌장을 보게 된다. 그래서 이야기는 무겁게 시작되지 않는다. 오히려 생활감이 짙게 배어 있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이, 이후 전개될 감정의 변화를 설득력 있게 만든다. 엄흥도가 위대한 충신이었다면, 그의 선택은 당연해 보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그렇지 않다. 그래서 그의 변화가 더 크게 다가온다.


유배인이 도착하는 순간, 영화의 공기는 미묘하게 달라진다. 이름 모를 죄인이 아니라, 폐위된 왕 노산군 이홍위라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엄흥도의 계산은 흔들리기 시작한다. 그에게 이홍위는 더 이상 ‘돈줄’이 아니라, 예상하지 못한 존재가 된다. 이 어긋남이 영화의 첫 전환점이다. 역사는 이미 알고 있는 방향으로 흐르고 있지만, 사람의 마음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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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중반부는 사건보다 시간이 쌓이는 구간이다. 이야기의 속도는 느려지고, 대신 장면들은 길어진다. 밥을 물리다가 자결을 시도하고, 어쩌다 절벽에서 만난 이홍위와 마을 사람들에게 닥친 호랑이를 물리치면서 가까워지고, 함께 밥을 나눠먹고 삶을 나누는 순간들. 이 반복이 쌓이면서 관계가 만들어진다. 이홍위는 그곳에서 적의없는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평안을 찾고, 마을 사람들은 그를 ‘노산군’이 아니라, 낯선 곳에 홀로 떨어진 돌봄이 절실한 어린 양반으로 바라보기 시작한다. 여기서 영화는 신분을 지우는 방식을 택한다. 이홍위는 왕이 아니라, 그저 그 자리에 있는 사람으로 존재한다. 그리고 엄흥도와 광천골 사람들 역시 백성이 아니라, 그와 밥을 나누는 사람들로 남는다. 그래서 이 시간은 정치가 아니라 생활의 시간이다. 역사가 아니라, 사람이 쌓이는 시간이다. 이 느린 호흡이 중요한 이유는 분명하다. 이후 닥칠 비극이 단순한 연민이 아니라, 상실로 다가오게 만들기 때문이다. 관객은 어느새 단종의 운명을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이 관계가 깨질 것을 두려워하게 된다.


광천골의 시간이 충분히 쌓였을 즈음, 영화는 전혀 다른 공기를 들여온다. 조정의 실세 한명회가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부터다. 그의 등장은 영화의 온도를 급격히 낮추는 장치로 작동한다. 따뜻하고 느리게 흘러가던 일상이, 순식간에 긴장과 공포로 뒤덮인다. 한명회는 소리를 높이지 않는다. 대신 태도와 시선으로 권력을 행사한다. 마을 사람들 앞에서 이홍위를 능멸하고, 그를 둘러싼 관계를 가볍게 무너뜨린다. 이 장면은 단종의 비극을 설명하지 않는다. 대신 관객이 그것을 감정으로 체감하게 만든다. 권력은 날카롭고 강압적이며, 인간적인 유대를 아무렇지 않게 짓밟을 수 있다는 사실이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이때부터 광천골은 더 이상 고립된 유배지가 아니다. 정치의 한복판이 된다. 엄흥도와 마을 사람들은 자신들이 감당하기 어려운 거대한 흐름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한명회의 존재는 단종을 위협하는 인물이기 이전에, 광천골의 ‘식구’가 된 관계를 시험하는 장치다. 그래서 그의 등장은 곧 비극의 예고이자, 영화의 긴장이 최고조로 치닫는 출발점이 된다.


박지훈과 유해진의 절정의 연기가 끌어낸 감동


이홍위를 연기한 박지훈의 성취는, 단종을 ‘슬픈 인물’로 고정하지 않았다는 데 있다. 영화 초반의 홍위는 말수가 적고, 세상을 경계하는 눈빛을 지닌 소년이다. 그러나 광천골의 시간 속에서 그는 조금씩 달라진다. 아이들과 웃고, 사람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밥상을 사이에 두고 시선을 나눈다. 이 변화는 크지 않지만 분명하다. 그래서 후반부, 한명회 앞에 서는 장면에서 그의 눈빛은 전혀 다른 결을 띤다. 두려움 대신 결심이, 체념 대신 단단함이 담긴다. 관객은 그 순간, 그를 더 이상 보호받아야 할 아이로 보지 않는다. 오히려 누군가를 지키기 위해 스스로를 내놓는 군주의 얼굴을 보게 된다. 이 변화가 중요한 이유는, 단종의 마지막 선택을 설득력 있게 만들기 때문이다. “사약으로 죽고 싶지 않다”는 말은 단순한 두려움의 표현이 아니라,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는 사람의 태도로 읽힌다. 박지훈은 이 미묘한 감정선을 과장 없이 붙들고 가며, 단종을 역사 속 인물이 아니라 눈앞에 존재하는 인물로 되살린다. 결국 관객이 기억하게 되는 것은 단종의 비극이 아니라, 그 비극을 마주하던 한 소년의 눈빛이다. 그리고 그 눈빛이 영화의 감정을 끝까지 끌고 간다.


엄흥도를 연기한 유해진의 연기는 이 영화의 정서를 지탱하는 또 하나의 축이다. 엄흥도는 대단한 위인이 아니었다. 그는 계산적이고, 현실적이며, 어쩌면 조금은 비루해 보이기까지 한다. 유배인을 통해 쌀밥과 고기를 얻어보겠다는 발상은 숭고함과는 거리가 멀다. 그러나 바로 이 출발점이, 이후 그의 선택을 더 깊게 만든다. 이홍위와 시간을 보내면서 엄흥도의 태도는 서서히 변한다. 하지만 그 변화는 대사로 드러나지 않는다. 유해진은 말 대신 표정과 호흡으로 그 과정을 보여준다. 경계하던 눈빛이 풀리고, 무심하던 태도가 조심스러워지고, 어느 순간에는 그저 옆에 있어주는 사람이 된다. 특히 이홍위의 부탁과 당부에 따라 화살 줄로 노산군 이홍위의 비운의 삶을 끝내는 순간 그의 연기는 절정에 이른다. 애닯음과 슬픔, 처절함과 울분과 분노, 그 모든 감정을 표현해 내면서 과함도 부족함도 없이 완벽했던 그의 연기에 관객의 감정을 오히려 더 크게 흔든다. 엄흥도는 역사 속에서 한 줄로 기록된 인물이다. 그러나 영화 속에서 그는 단종의 마지막을 함께한 사람, 그리고 그 마지막을 감당한 사람으로 살아난다. 유해진의 연기는 이 인물을 충신이 아니라, 외면할 수 없었던 평범한 사람으로 완성시킨다. 그래서 그의 선택은 더 숭고하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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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에서 가장 오래 남는 장면은 거대한 사건이 아니다. 오히려 두 사람 사이의 아주 조용한 대화다. 죽음을 앞둔 이홍위가 엄흥도에게 건네는 부탁. “역적의 손에서 내려지는 사약으로 죽고 싶지 않다”는 말. 그리고 자신의 삶을 끝내 달라는 요청. 이 설정은 관객을 단번에 무너뜨린다. 단종의 죽음은 역사적 사실로 알고 있지만, 그 마지막을 이렇게 상상하게 되는 순간, 비극은 기록이 아니라 감정이 된다. 관객은 이 순간, 단종의 죽음을 ‘목격’하는 것이 아니라, 그 죽음의 무게를 함께 떠안게 된다. 그리고 이 장면이 영화 전체를 관통한다. 앞서 쌓였던 모든 시간이, 바로 이 선택을 설득하기 위해 존재했던 것처럼 느껴진다. 이 설정은 자극적이지 않다. 오히려 매우 조용하다. 그러나 그 조용함이 더 크게 마음을 파고든다. 역사 속에서 한 줄로 지나가는 죽음이, 영화 속에서는 가장 아프고 그래서 인간적인 순간으로 되살아난다.


실록의 ‘여백’을 사건이 아닌 ‘관계’로 채운 사극의 힘


단종의 유배 생활에 대해 실록이 남긴 기록은 의외로 짧다. 청령포에서 무엇을 먹었는지, 누구와 어떤 말을 나누었는지, 하루를 어떻게 보냈는지에 대한 서술은 거의 없다. 〈왕과 사는 남자〉는 바로 이 공백을 파고든다. 그리고 그 빈칸을 극적인 사건이 아니라, 아주 사소한 관계와 일상으로 채운다. 그래서 이 영화는 ‘역사를 재현’하기보다, ‘역사를 해석’한다는 인상을 준다. 단종이 어떤 시간을 보냈는지를 상상하되, 무리한 반전이나 과장된 사건을 덧붙이지 않는다. 대신 함께 밥을 먹고, 같은 공간에 머물고, 말없이 곁에 앉아 있는 시간을 길게 보여준다. 이 느린 축적이 쌓여, 관객에게 “그랬을지도 모른다”는 설득력을 만든다. 기록의 공백을 자극적인 사건으로 채우는 대신, 실제로 있었을 법한 순간들로 서사를 이어간다. 그래서 이 영화의 상상력은 과장이 아니라 절제에 가깝다. 단종이 무엇을 했는지보다, 그가 누구와 함께 있었는지에 집중하고, 어떤 말을 남겼는지보다 어떤 시간을 나누었는지를 보여준다. 이 선택 덕분에 관객은 이야기를 ‘만들어진 드라마’로 받아들이기보다, 역사 속에서 미처 보지 못했던 한 장면을 엿보는 느낌을 받게 된다. 실록이 비워 둔 자리에 억지 사건을 끼워 넣는 대신, 사람과 사람 사이의 공기를 채워 넣었기 때문이다. 그 공기가 쌓이면서, 이 영화의 서사는 비극을 설명하지 않고도 비극을 이해하게 만드는 힘을 갖는다. 그래서 영화가 끝난 뒤 관객의 머릿속에 남는 것은 사건의 연쇄가 아니다. 청령포의 공기, 광천골의 저녁, 밥상을 사이에 둔 침묵 같은 장면들이다. 실록이 말해주지 않은 시간들이, 오히려 가장 또렷하게 기억된다.


보통 사극은 흔히 비극을 확대한다. 더 비장하게, 더 처절하게, 더 무겁게. 그러나 〈왕과 사는 남자〉는 정반대의 선택을 한다. 비극을 크게 키우지 않는다. 대신 그 비극이 닥치기 전의 시간을 오래 붙들어 둔다. 관객이 비극을 ‘알고’ 보는 것이 아니라, 그 비극을 견딜 수밖에 없게 만든다. 영화가 끝난 뒤에도 오래 남는 것은 사약의 순간이 아니다. 청령포의 차가운 강물도 아니다. 함께 밥을 먹던 장면, 눈을 맞추던 순간, 말없이 곁에 앉아 있던 시간이 먼저 떠오른다. 그래서 단종의 죽음은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 한 관계의 상실로 기억된다.


이 작품이 특별한 이유는 여기에 있다. 왕의 죽음을 보여주기보다, 왕과 함께 살았던 사람의 얼굴을 남긴다. 엄흥도의 침묵과 떨리는 손, 그리고 이홍위의 눈빛이 관객의 기억에 자리 잡는다. 비극은 크지만, 감정은 조용하다. 그 조용함이 오히려 오래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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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진 결말이라는 높은 벽을, 배우들의 연기와 관계의 서사로 넘어선 영화. 그래서 〈왕과 사는 남자〉는 단종을 다시 보게 만드는 작품이 아니라, 단종의 시간을 처음 겪게 만드는 작품인듯 하다. 그렇게 관객은 이미 알고 있던 역사를 다시 떠올리는 대신, 몰랐던 시간을 새로 경험한다. 그래서 영화가 끝난 뒤, 우리는 단종의 비극보다, 왕을 모신 적은 없지만, 왕과 함께 살았던 사람이 있었다는 사실을 떠올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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