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인가, 인간인가 – 류승완의 「휴민트」가 선택한 방향
류승완 감독의 신작 「휴민트」는 외형적으로는 그의 필모그래피를 자연스럽게 잇는 작품처럼 보인다. 남북 정보기관의 충돌, 해외 로케이션, 총격과 추격, 그리고 배우 조인성과 박정민이라는 조합까지. 여러 지점에서 <베를린>(2013)의 연장선 위에 놓인 영화처럼 읽힌다. 그러나 막상 영화를 따라가다 보면, 이번 작품은 확장이라기보다 방향의 전환에 가깝다는 인상을 남긴다. 스펙터클을 밀어붙이는 대신, 멈추는 지점에 더 오래 머문다.
「휴민트」의 첫 인상은 차갑다. 블라디보스토크의 도시 풍경은 콘크리트의 질감과 흐린 공기를 강조하며 인물들을 둘러싼 세계의 냉혹함을 드러낸다. 이 공간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감정을 쉽게 드러내지 않는 인물들의 태도를 반영하는 환경처럼 기능한다. 류승완 특유의 속도감 있는 리듬은 유지되지만, 그 에너지는 이전보다 통제돼 있다. 과장된 감정의 폭발 대신, 인물들이 감정을 억누르는 순간이 더 자주 포착된다. 이 차이는 단순한 연출 방식의 변화가 아니다. 「휴민트」는 ‘첩보 액션’이라는 장르적 틀 안에서 무엇을 보여줄 것인가에 대한 감독의 선택을 드러낸다. 이전 작품들이 체제와 체제의 충돌, 조직과 조직의 대립에 무게를 두었다면, 이번 영화는 그 충돌 속에서 소모되는 개인에게 시선을 옮긴다. 장르는 그대로지만, 초점은 이동했다. 그리고 그 이동이 이 영화의 성격을 규정한다.
영화의 제목이자 중심 개념인 ‘휴민트(HUMINT)’는 기술 장비가 아닌 사람을 통해 얻는 정보를 뜻한다. 그러나 「휴민트」가 흥미로운 지점은 이 용어를 기능적으로 설명하는 데 있지 않다. 영화는 오히려 그 단어가 가진 냉정함에 주목한다. ‘인적 정보’라는 표현 속에서 ‘인적’은 수식어에 가깝고, 실제로 강조되는 것은 ‘정보’다. 사람은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 된다. 국정원 블랙 요원 조 과장은 이미 한 차례 정보원을 잃은 인물이다. 그의 과거는 장황하게 설명되지 않지만, 현재의 태도에서 충분히 드러난다. 그는 새로운 정보원을 포섭하면서도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려 한다. 직업적 훈련의 결과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반복을 피하고 싶은 개인의 방어이기도 하다. 그러나 작전이 진행될수록 그는 정보원 ‘채선화’를 자산으로만 바라보는 위치에 머물지 못한다. 이 지점에서 영화는 흥미로운 균열을 만든다. 시스템은 끝까지 계산을 유지하지만, 개인은 계산을 끝까지 유지하지 못한다.
북한 보위성 조장 박건 역시 같은 구조 안에 놓여 있다. 그에게 채선화는 과거의 연인이자, 동시에 조직이 통제해야 할 대상이다. 그는 명령 체계 안에서 움직이는 인물이지만, 감정이 개입되는 순간 판단의 기준이 달라진다. 체제의 논리는 일관되지만, 개인의 선택은 흔들린다. 영화는 이 흔들림을 과장하지 않는다. 다만 인물들이 결정을 미루거나 망설이는 시간을 통해, ‘정보’라는 단어가 인간의 전부가 될 수 없음을 드러낸다.
「휴민트」의 긴장은 대규모 음모나 반전에서 발생하지 않는다. 오히려 정보의 가치와 인간의 가치가 충돌하는 지점에서 형성된다. 작전의 성공 여부보다, 그 과정에서 누구를 포기할 것인가가 더 중요한 질문으로 제시된다. 그리고 이 질문은 장르적 장치가 아니라 윤리적 문제로 이동한다. 영화는 시스템을 부정하거나 무너뜨리지 않는다. 대신 그 안에서 개인이 어디까지 책임질 수 있는지를 묻는다. 그 질문이 반복될수록 ‘휴민트’라는 단어는 점점 아이러니해진다. 정보는 축적되지만, 사람은 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휴민트」의 주요 무대는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다. 남과 북이 직접적으로 충돌하는 공간이 아니라, 제3의 장소다. 이 설정은 단순한 해외 로케이션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국경의 바깥에서 남북 인물들은 일시적으로 ‘국가의 중심’에서 떨어져 나온다. 본국의 명령 체계는 여전히 작동하지만, 물리적 거리는 판단의 속도를 늦춘다. 영화는 바로 그 틈을 활용한다. 이 도시는 인물들에게 중간지대와도 같다. 같은 언어를 쓰는 두 인물이 서로를 적으로 인식해야 하는 상황은 분단의 현실을 압축한다. 그러나 외국이라는 환경 속에서 그 적대는 조금 다른 결을 띤다. 총을 겨누는 관계임에도, 말이 통하고 기억이 겹친다. 채선화가 부르는 노래는 과거의 정서를 환기하는 장치로 기능한다. 그 장면은 설명을 덧붙이지 않는다. 다만 서로를 바라보는 시선의 길이를 늘린다. 감정은 노출되지 않지만, 지워지지도 않는다.
블라디보스토크라는 공간은 그래서 이 영화에서 정치적이면서도 정서적인 장소다. 국가는 멀리 있지만, 국가의 그림자는 여전히 인물들을 따라다닌다. 동시에 이곳은 잠시나마 선택의 여지가 발생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체제의 논리가 절대적인 힘을 발휘하는 본국이 아니라, 감정이 끼어들 틈이 생기는 장소. 영화는 이 틈을 통해 분단의 문제를 직접적으로 설파하지 않는다. 대신, 적대 관계에 놓인 개인들이 서로의 처지를 이해할 수 있는 가능성을 조용히 제시한다.
「휴민트」의 긴장은 이야기 구조보다 인물의 태도에서 형성된다. 그 중심에는 조 과장과 박건이 있다. 두 인물은 각각 남과 북의 요원이지만, 단순한 대립 구도로 소비되지 않는다. 영화는 이들을 ‘어떤 선택을 하는가’의 관점에서 병치한다. 그리고 그 선택의 방식은 배우의 연기 톤을 통해 분명히 구분된다. 조인성이 연기한 조 과장은 끝까지 통제를 유지하려는 인물이다. 그는 상황을 읽고 계산하며,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다. 액션 장면에서도 과잉된 제스처가 없다. 움직임은 직선적이고, 판단은 빠르다. 그러나 그 통제는 완전한 냉정과는 다르다. 정보원을 대하는 태도에서 미묘한 간극이 드러난다. 시선이 머무는 시간, 결정을 내리기 전의 짧은 정지, 그리고 말보다 늦게 따라오는 표정의 변화가 인물의 내면을 암시한다. 조 과장은 체제를 부정하지 않지만, 체제의 논리를 그대로 반복하지도 않는다. 그가 지키려는 것은 작전의 성공만이 아니라, 한 번 더 사람을 잃지 않겠다는 최소한의 책임이다. 반면 박정민이 연기한 박건은 처음부터 균열을 안고 등장한다. 그는 체제의 명령에 충실한 요원이지만, 감정이 개입되는 순간 판단의 균형이 흔들린다. 그의 액션은 조 과장보다 거칠고 즉흥적이다. 감정이 배제된 효율적 움직임이라기보다, 보호와 분노가 동시에 작동하는 반응에 가깝다. 특히 채선화를 마주하는 장면에서 그는 냉정한 요원과 과거의 연인 사이를 오간다. 박정민은 이 오가는 순간을 과장 없이 표현한다. 눈빛의 방향과 호흡의 리듬만으로 인물의 갈등을 드러낸다.
두 인물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윤리’를 감당한다. 조 과장이 통제 속에서 책임을 유지하려는 인물이라면, 박건은 균열을 감수하며 선택을 밀어붙이는 인물에 가깝다. 이 대비는 단순한 연기 대결을 넘어 영화의 주제를 강화한다. 정보기관의 시스템 안에서, 각자는 다른 방식으로 인간의 가치를 붙든다. 그 차이가 긴장을 만들고, 동시에 연대의 가능성을 준비한다.
류승완의 이전 첩보 영화들이 체제 간 충돌과 사건의 속도에 집중했다면, 「휴민트」는 감정의 개입을 비교적 전면에 둔다. 특히 박건과 채선화의 관계는 단순한 설정을 넘어 서사의 방향을 바꾸는 요소로 작동한다. 이 관계가 없었다면 영화는 보다 전통적인 첩보 추적극으로 흘렀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멜로가 개입하면서 이야기의 무게는 ‘정보 확보’에서 ‘사람의 생존’으로 이동한다. 이 선택은 장르적 긴장을 일부 완화시키는 동시에, 다른 종류의 긴장을 만든다. 작전의 성공 여부보다, 누가 어떤 대가를 치를 것인가가 더 중요해진다. 박건의 판단은 전략적 계산이 아니라 감정적 결단에 가깝다. 조 과장 역시 작전의 범위를 넘는 선택을 고민한다. 멜로는 여기서 장르를 약화시키는 장치라기보다, 윤리적 질문을 구체화하는 수단으로 기능한다.
물론 이 변화는 논쟁의 여지를 남긴다. 첩보 장르 특유의 밀도와 복잡한 정보전의 재미를 기대한 관객에게는 다소 느슨하게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감독의 관심이 어디에 놓여 있는지를 고려하면, 이 선택은 일관성을 가진다. 「휴민트」는 거대한 음모를 폭로하기보다, 체제 속에서 개인이 감당해야 할 책임을 들여다본다. 멜로는 그 책임을 추상적 개념이 아니라 구체적 관계로 환원하는 역할을 한다. 「휴민트」는 분명 이전 류승완 영화보다 감정의 밀도를 높였다. 그러나 이 선택이 항상 매끄럽게 작동하는 것은 아니다. 정보전의 복잡성과 첩보 장르 특유의 촘촘한 설계는 상대적으로 후경으로 밀린다. 사건의 전개는 비교적 직선적이며, 음모의 규모도 과장되지 않는다. 장르적 쾌감을 기대한 관객에게는 긴장감이 충분히 축적되지 않는다는 인상을 줄 수 있다.
또 하나의 논쟁 지점은 채선화라는 인물의 위치다. 영화는 그녀를 중심축에 두지만, 동시에 그녀는 남북 두 남자의 선택을 촉발하는 계기로 기능한다. 그녀가 감당하는 위험과 결단이 충분히 능동적으로 확장되는지에 대해서는 관점에 따라 다른 평가가 가능하다. 정보기관의 구조 속에서 가장 취약한 위치에 놓인 인물이라는 설정은 설득력을 갖지만, 서사의 주도권이 얼마나 그녀에게 돌아가는지는 질문으로 남는다. 그럼에도 영화가 선택한 방향은 분명하다. 「휴민트」는 시스템을 전복하거나 체제를 비판하는 급진적 결말로 나아가지 않는다. 대신 개인의 선택이 체제의 논리를 완전히 바꾸지 못하더라도, 그 선택 자체는 의미를 가진다고 말한다. 이 지점에서 영화는 거대한 정치적 선언을 피하는 대신, 제한된 공간 안에서의 윤리를 탐색한다. 그것이 장점이자 동시에 아쉬움으로 남는 부분이다.
「휴민트」는 겉으로는 익숙한 첩보 영화의 형식을 따른다. 남과 북의 정보 요원이 제3국에서 충돌하고, 권력과 범죄 조직이 얽힌 구조 속에서 사건이 전개된다. 그러나 영화의 초점은 체제의 승패에 있지 않다. 이번 작품에서 류승완은 시스템을 붕괴시키거나 거대한 음모를 폭로하는 데 관심을 두지 않는다. 대신 그 시스템 안에서 개인이 어디까지 책임질 수 있는지를 묻는다. <베를린>이 체제 간 충돌의 에너지를 전면에 내세웠다면, 「휴민트」는 그 충돌 속에서 소모되는 개인을 응시한다. 액션의 규모는 줄어들지 않았지만, 감정의 방향은 달라졌다. 스펙터클은 유지되되, 그 중심에는 선택의 문제를 놓는다. 정보를 관리하는 기관의 논리와, 사람을 포기하지 않으려는 개인의 판단이 교차하는 지점이 이 영화의 핵심이다.
이 작품이 류승완 필모그래피에서 완전한 전환점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적어도 그의 첩보 미학이 확장보다 심화의 방향으로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장르적 완성도와 윤리적 질문을 동시에 붙들려는 시도는 분명 이전과 다른 결을 만든다. 「휴민트」는 시스템을 무너뜨리지 않는다. 대신 그 안에서 끝까지 남는 사람의 태도를 기록한다. 그 점에서 이 영화는 첩보극이면서도, 결국 책임에 대한 이야기로 남는다.
#휴민트, #류승완, #조인성, #박정민, #신세경, #한국영화, #첩보영화, #HUMINT, #분단영화, #블라디보스토크, #정보기관, #인적자산, #영화리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