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파반느」

도파민 시대에 남겨진 가장 느린 질문

by 민초매니아

기억에 남는 것은 이야기보다 문장이다


2월 20일 공개된 넷플릭스 영화 「파반느」는 서사가 아니라 문장을 남기는 작품이다. 관람을 마치고 나면 사건의 배열은 선명하게 정리되지 않지만, 몇몇 대사는 유난히 오래 잔류한다. “모든 사랑은 오해다. 영원할 거라는 오해.” 그리고 “인디언들은 말을 타고 달리다 잠시 내린다. 걸음이 느린 영혼을 기다리기 위해서.” 이 영화는 줄거리의 기승전결을 따라가는 대신, 이런 문장들이 만들어내는 사유의 여백에 관객을 머물게 한다 파반느자막. 그래서 이 작품은 이해하기보다 통과해야 하는 영화에 가깝다. 빠른 전개에 익숙한 관객에게는 모호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감정의 잔향을 받아들이는 이들에게는 길게 남는다. 이 영화는 박민규의 소설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를 원작으로 한다. 원작은 외모 지상주의와 자본의 논리를 냉소적으로 해부했던 텍스트였고, 출간 이후 오랫동안 영상화가 논의되었으나 쉽지 않은 작품으로 분류되어 왔다. 이종필 감독은 이 소설의 사회 비판적 결을 유지하되, 영화에서는 이를 보다 서정적인 톤으로 재배치했다 . 냉소의 칼날 대신 온도의 변화를 택한 것이다. 이 선택은 단순한 연출 방향의 차이를 넘어, 플랫폼 환경과도 맞닿는다.「파반느」는 극장 개봉작이 아니라 넷플릭스 오리지널로 전 세계 동시 공개되었다. OTT라는 소비 환경 안에서, 이 영화는 자극 대신 잔존을 선택한다.


영화의 주요 배경은 백화점이다. 그러나 카메라는 화려한 명품관보다 지하 공간을 오래 응시한다. 백화점 1층은 자본의 찬란함이 응축된 공간이고, 지하 창고는 그 체계의 그림자가 모이는 장소다. 미정은 이 지하에서 일하는 인물이다. 성적 1위로 입사했지만 외모라는 기준에 의해 밀려난 존재라는 설정은, 영화가 여전히 원작의 사회적 문제의식을 품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영화는 미정을 ‘불쌍한 인물’로 단정하지 않는다. 대신 그녀가 스스로를 숨기고, 고개를 숙이고, 빛을 피하는 몸짓을 통해 내면의 위축을 드러낸다. 못생김은 외형이 아니라 자기 부정의 상태로 재정의된다. 이종필 감독이 강조한 ‘빛과 어둠’의 대비는 이 영화의 시각적 구조를 이룬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며 들어오는 빛, 옥상에서의 저녁 햇살, 후반부의 오로라 장면은 단순한 미장센이 아니다. 이는 감정의 이동을 시각화한 장치다. 사랑은 이 영화에서 갑작스러운 고백이나 격렬한 갈등으로 표현되지 않는다. 대신 어둠에 머물던 인물이 조금씩 빛을 받아들이는 과정으로 제시된다. 그래서 멜로의 정서는 폭발이 아니라 확산의 형식을 따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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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반느’의 중심에는 미정, 경록, 요한 세 인물이 있다. 이들은 삼각관계를 형성하지만, 전통적인 경쟁 구도는 아니다. 세 사람은 사랑을 각기 다른 방식으로 해석한다. 요한은 “모든 사랑은 오해다”라고 말하는 인물이다. 그는 사랑의 영원성을 믿지 않는다고 선언하지만, 동시에 그 오해를 끝내 놓지 못한다. 그의 냉소는 체념이라기보다 방어에 가깝다. 사랑이 끝날 수 있다는 사실을 미리 인정함으로써 상처를 줄이려는 태도다. 경록은 정반대의 위치에 선다. 그는 스스로를 의심하는 청년이다. “남들이 진짜고 내가 가짜가 아닐까”라고 말하던 인물은 미정을 만나며 “우리는 진짜구나”라는 감각에 도달한다. 사랑은 그에게 정체성의 회복이다. 미정과 함께 있을 때 자신이 더 나은 사람이 된다고 느끼는 장면은, 이 영화가 사랑을 ‘구원’이 아니라 ‘승인’의 과정으로 이해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미정은 이 세 인물 중 가장 조용하지만 가장 큰 변화를 겪는다. 그녀는 “당신은 캄캄한 어둠 속에 있던 나를 불러 세웠다”고 고백한다. 이 고백은 사랑을 존재의 확인으로 규정한다. 누군가에게 불려 세워진다는 것은, 더 이상 ‘없는 사람’으로 살지 않아도 된다는 의미다. 이 영화에서 사랑은 감정의 과잉이 아니라 존재의 인식이다.


“인디언들은 말을 타고 달리다 잠시 내린다”는 대사는 영화의 리듬을 설명한다. 이 작품은 달리지 않는다. 인물들은 종종 멈춰 서 있고, 장면은 길게 이어지며, 음악은 느리게 흐른다. 제목이 가리키는「파반느」는 원래 느린 궁정 무용곡이다. 이 영화는 그 음악적 리듬을 서사 구조에 반영한다. 그래서 사건은 크지 않고, 감정은 천천히 번진다. 이 지점에서 OTT 산업과의 긴장이 발생한다. 스트리밍 플랫폼은 이용자의 이탈을 최소화하기 위해 빠른 전개와 강한 자극을 선호한다. 그러나「파반느」는 이런 흐름과 반대 방향에 선다. 이는 무모한 선택이라기보다 포트폴리오 전략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넷플릭스는 이미 장르적 쾌감이 강한 콘텐츠로 충분한 점유율을 확보하고 있으며, 그 위에 정서적 밀도를 더하는 작품을 배치함으로써 브랜드의 스펙트럼을 확장한다.「파반느」는 흥행을 선도하기 위한 카드라기보다, 플랫폼의 문화적 깊이를 보완하는 축에 가깝다.

영화 후반부는 사고와 기억 손상이라는 사건을 제시한다. 기다림은 어긋나고, 재회는 불완전해진다. 그러나 이야기는 거기서 멈추지 않는다. 요한은 두 친구의 이야기를 소설로 쓴다. 그리고 그 소설은 해피엔딩을 택한다. 현실은 비극에 가까웠지만, 서사는 다른 결말을 선택한다. 여기서 영화는 묻는다. 사랑은 사실인가, 아니면 상상인가. “결국 사랑은 상상하는 일이다”라는 문장은 이 영화의 핵심 명제로 기능한다. 사랑은 영원을 보장하지 않지만, 영원할 것이라고 믿는 상상 속에서 지속된다. 현실이 어긋나더라도 기억은 재구성된다. 이 영화가 해피엔딩을 소설 속에 배치한 이유는 분명하다. 사랑은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다시 써지는 것이다.


‘「파반느」는 분명 대중적 흥행을 노린 구조는 아니다. 명확한 갈등과 통쾌한 해결이 부족하고, 감정의 폭발 대신 침묵을 선택한다. 그러나 이는 단점이라기보다 의도에 가깝다. 이 작품은 소비되기보다 남기를 원한다. 정서의 밀도와 미학적 설계, 원작의 변주 방식은 일정 수준 이상의 완성도를 보여준다. 다만 그 완성도가 대중적 쾌감과 직결되지는 않는다. 산업적으로 보자면, 이 영화는 한국 콘텐츠의 또 다른 가능성을 시험한다. K-콘텐츠가 액션, 스릴러, 장르적 강도에서 두각을 나타내온 흐름 속에서, 정통 멜로의 느린 결을 글로벌 공개작으로 배치했다는 점은 의미를 갖는다. 이는 흥행 공식의 확장이 아니라, 정서적 다양성의 확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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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반느」는 사랑을 영원의 약속으로 말하지 않는다. 대신 영원하다고 믿고 싶은 순간을 붙드는 태도로 정의한다. 이 영화는 흥행의 속도로 측정하기 어렵다. 그러나 기억의 속도로는 충분히 유효하다. 빛이 스며들던 장면, 고개를 들라고 말하던 대사, 오해와 상상 사이에서 망설이던 인물의 표정은 오래 남는다. 느림을 선택한 영화, 그리고 그 느림을 허용한 플랫폼. ‘파반느’는 그렇게 도파민 시대의 반대편에서 조용히 자리를 차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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