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침실로 들어와 솜차이의 목에 손을 댔다. 몇 초 후, 그가 고개를 저었다.
"죽었어." 그 말이 떨어지자 남편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분노가 아니었다. 공포였다. "씨발." 그가 중얼거렸다. 낮고 떨리는 목소리였다. "씨발, 씨발, 씨발." 남편이 방 안을 서성였다. 두 손으로 얼굴을 문질렀다. 머리카락을 쥐어뜯었다. 미숙은 그가 자신을 때릴 줄 알았다. 경멸할 줄 알았다. 하지만 남편은 그러지 않았다.
미숙은 자신이 한 일을 믿을 수 없었다. 손이 떨렸다. 숨이 막혔다. 방금 전까지 그녀와 온기를 나누던 사람이 차가운 시체가 되어 있었다. 미숙은 온몸이 바들바들 떨렸다.
한참을 서성이던 그가 창밖을 바라보았다. 어둠 속에 아파트 불빛들이 점점이 박혀 있었다. 그리고 돌아섰을 때, 그의 눈에는 다른 것이 있었다.
"옮겨야 해."
미숙은 그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경찰 부르면 끝이야. 둘 다."
남편의 목소리는 이상하리만큼 차분했다. 십칠 년을 함께 산 남자가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미숙은 처음 느껴본 공포였다. 아무것도 들리지고 아무 소리도 내지 못했다. 시간이 정지된 것 같았다.
미숙의 의식이 흐릿해지기 시작했다. 현실이 너무 참혹했다.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녀의 정신이 스스로를 보호하려 했다.
그 순간, 시간이 되돌려지는 것 같았다.
아니다. 이건 꿈이어야 한다. 이런 일이 정말 일어날 리가 없다.
미숙은 눈을 감았다가 다시 떴다.
솜차이가 거기 서 있었다. 살아있었다. 그의 형체가 점점 선명해졌다. 마치 안개가 걷히듯이.
"괜찮아요, 미숙 씨."
그의 목소리가 들렸다. 태국어 억양이 섞인 그 부드러운 말이 그녀의 귀에 닿았다.
"이건... 꿈이었나요?"
미숙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괜찮을 거예요. 모든 게."
솜차이가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그의 형체가 다시 흐려지기 시작했다. 마치 아침 안개처럼, 따뜻한 숨결처럼 사라져 가고 있었다.
"고마웠어요. 정말... 고마웠어요."
솜차이의 마지막 말이 공기 중에 흩어졌다. 그리고 그는 완전히 사라졌다.
미숙은 깜박이는 의식 속에서 남편의 목소리를 들었다. 현실의 목소리였다.
"미숙아. 정신 차려 미숙아."
미숙의 몸을 흔들던 남편이 무섭고 지친 듯 침대 가장자리에 힘없이 주저앉아있다. 침대가 그의 무게로 기울어졌다. 아주 오래전 기억이 희미한 어느 순간엔가 안정감을 주던 그 무게가 어색함과 공포로 다가왔다.
솜차이의 눈이 크게 떠져있었다. 바닥으로 쓰러지는 그의 몸에서 피가 모두 빠져나와 더 말라 보였다. 미숙은 자신의 손을 바라보았다. 방금 전까지 그의 체온이 느껴지던 손바닥이 차갑게 식어갔다.
남편이 천천히 다가왔다. 그의 발자국 소리가 바닥을 유난히 크게 울렸다. 미숙은 고개를 들었다. 남편의 눈에는 처음 본 공포가 가득했다.
"어떡하지..." 미숙의 목소리가 깨졌다. 남편은 말없이 다시 한번 솜차이의 맥박을 짚었다. "확실히 죽었어." 그가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이상할 정도로 침착했다.
하지만 침착한 것은 목소리뿐이었다. 남편의 손은 떨리고 있었고, 이마에는 식은땀이 맺혀 있었다. 그는 그저 주말에 골프나 치러 다니는 배 나온 중년 남자일 뿐이었다.
"옮겨야 해." 남편이 헐떡이며 말했다.
"도와줘. 혼자선... 못 들어." 미숙은 멍하니 있다가 남편의 다급한 손짓에 솜차이의 발목을 잡았다. 차가웠다. 그리고 묵직했다. 죽은 사람의 몸이 이렇게 무거운 줄 몰랐다. 축 늘어진 육체는 자꾸만 손에서 미끄러져 나갔다.
"꽉 잡아! 놓치지 말고." 남편이 끙, 소리를 내며 솜차이의 겨드랑이를 꼈다. 현관까지 가는 몇 걸음이 천 리 길 같았다. 거실 바닥에 솜차이의 발뒤꿈치가 질질 끌리며 스르륵, 스르륵 소리를 냈다.
엘리베이터가 없는 빌라 2층. 계단을 내려가는 게 고역이었다. 남편이 비틀거릴 때마다 솜차이의 머리가 계단 난간에 쿵, 쿵 부딪혔다. 그때마다 남편은 인상을 찌푸리며 작게 욕설을 내뱉었다. "아, 씨... 진짜..." 죄책감 때문이 아니었다. 단지 너무 무거워서, 허리가 끊어질 것 같아서 나오는 짜증이었다.
트렁크에 시신을 구겨 넣을 때, 솜차이의 다리가 잘 굽혀지지 않았다. 남편이 힘주어 무릎을 꺾자 우두둑하는 소리가 났다. 미숙은 고개를 돌렸다. 트렁크 문을 닫고 운전석에 앉은 남편이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차 안에서 퀴퀴한 땀 냄새와 비릿한 쇠 냄새가 섞여 났다.
"기름이..." 남편이 계기판을 보며 중얼거렸다. "간당간당하네. 주유소 들를 수도 없고." 시체를 싣고 산으로 가는 길에 주유 경고등을 걱정하는 것. 그것이 그들의 비루한 현실이었다.
미숙은 조수석에 앉아 자신의 무릎을 내려다보았다. 바지에 거무죽죽한 얼룩이 묻어 있었다. '이 바지, 드라이클리닝 맡겨야 하는데. 세탁소 주인이 물어보면 뭐라고 하지? 김치 국물이라고 하면 믿을까?' 살인을 저지른 밤에 세탁소 핑계를 고민하는 자신이 끔찍하게 느껴졌지만, 생각은 멈추지 않았다.
한 시간쯤 달려 도착한 야산은 칠흑같이 어두웠다. 남편은 차 트렁크 구석에 처박혀 있던 낚시용 야전삽을 꺼냈다. 땅은 겨울바람에 얼어붙어 돌처럼 단단했다. 캉. 캉. 삽날이 튕겨 나갈 때마다 남편의 어깨가 들썩였다.
"하아, 하아..." 적막한 산속에는 두 사람의 거친 숨소리와 삽질 소리만 가득했다. 대화는 없었다. 침묵만이 그들의 공범이었다. 남편이 허리를 펴며 젖은 셔츠를 펄럭였다. "내일... 아침 회의 있는데..." 그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삽자루를 쥔 그의 손바닥 물집이 터져 피가 배어 나오고 있었다.
미숙도 맨손으로 흙을 퍼 날랐다. 손톱 밑으로 날카로운 돌조각과 흙이 파고들었다. 살점이 찢어지는 따가움이 느껴졌다. 하지만 그 통증이 오히려 다행스러웠다. 육체의 고통이 정신의 마비를 잠시나마 잊게 해 주었다. 그들은 땀과 흙범벅이 되어, 마치 야근을 하는 노동자처럼 묵묵히 구덩이를 팠다. 낭만도, 비장함도 없었다. 그저 빨리 끝내고 싶은 지독한 노동일 뿐이었다.
"잡아."
남편이 말했다. 흙이 시신을 덮어갔다. 한 삽, 두 삽. 솜차이의 얼굴이 사라졌다. 그의 마지막 표정이 미숙의 눈앞에 맺혔다. 이제 그들의 비밀은 이 땅 속에 영원히 묻혔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미숙은 남편의 옆모습을 바라보았다. 그의 이마에 맺힌 땀이 달빛에 반짝였다. 누구를 위한 땀일까. 아내를 위해서일까, 아니면 자기 자신을 위해서일까.
고속도로는 텅 비어 있었다. 미숙은 조수석 창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가로등을 바라보았다. 노란 불빛들이 그녀의 얼굴에 드리웠다 사라졌다. 남편은 평소보다 조금 더 빠른 속도로 운전을 했다. 스티어링 휠을 쥔 그의 손마디가 하얗게 돋아났다.
휴게소에 들어섰을 때 동이 트기 시작했다. 아직 새벽이라 매장은 문을 다 열지 않았다. 남편이 자판기 커피를 미숙의 앞에 놓았다. 미숙은 말없이 커피를 받아 들었다. 남편은 전망대로 향했다. 미숙도 자석처럼 남편의 뒤를 따라 전망대로 올라갔다.
"여기서 잠깐 쉬었다 가자."
남편의 말에는 두려움과 피로가 묻어났다. 그들은 난간에 기대어 섰다. 멀리 수평선이 분홍빛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미숙은 자판기 믹스 커피를 한 모금 삼켰다. 쓰고 단 맛이 혀끝에 남았다. 솜차이도 이런 맛의 커피를 좋아했던 것 같다. 키스할 때 느꼈던 그 쓰고 단맛.
갑자기 남편이 입을 열었다. "이제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살면 돼."
그의 목소리는 담담했다. 마치 일기예보를 읽는 것처럼.
커피가 완전히 식었다. 미숙은 자판기 커피 특유의 캐러멜 향을 맡았다. 문득 라벤더 향이 그리워졌다. 그녀는 옷깃에 코를 묻었다. 아직도 희미하게 남아있을지 모를 그 향을 찾아서.
"가자."
남편이 말했다. 돌아서는 순간, 미숙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새벽녘의 하늘이 점점 파래지고 있었다. 너무나 맑아서, 너무나 투명해서 숨이 막힐 것 같은 파란색이었다.
차로 돌아가는 길, 미숙은 문득 솜차이의 마지막 순간을 떠올렸다. 그의 눈에 비친 놀라움, 그리고 그 아래 숨겨진 고향에 대한 그리움. 어쩌면 그도 이런 파란 하늘을 보며 자랐을까. 지갑 속 어린 딸의 사진이 떠올랐다. 땅 속에 묻힌 그 사진 속에서, 소녀는 영원히 웃고 있을 것이다.
고속도로로 다시 진입하며 미숙은 자신의 손을 바라보았다. 마트 계산대에서 물건을 스캔하던 손. 솜차이의 체온을 느끼던 손. 그를 밀쳤던 손. 이제 이 손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토요일엔 항상 유통기한 체크를 한다. 신선식품을 정리하고, 가격표를 바꾸고.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차가 톨게이트를 빠져나갈 때, 태양이 완전히 떠올랐다. 미숙은 선글라스를 꺼내 썼다. 까만 렌즈 너머로 세상이 어두워졌다. 하지만 하늘은 여전히 파랗게 빛났다. 너무나 파랗게.
"괜찮아질 거야."
남편이 말했다. 그의 목소리에는 처음으로 불안이 묻어났다. 누구를 안심시키는 걸까. 자신일까, 아내일까.
주차장에 들어섰을 때, 미숙은 문득 깨달았다. 이제 그들은 죽을 때까지 헤어질 수 없으리라는 것을. 사랑 때문이 아니었다. 침묵의 맹세가 보이지 않는 쇠사슬이 되어 그들을 묶어버렸다. 엘리베이터 거울 속에 비친 부부의 얼굴은 지독하게 닮아 있었다. 무표정한, 그리고 창백한.
현관문을 열자 익숙한 어둠이 그들을 맞이했다. 미숙은 신발을 벗다가 솜차이의 구두 자국을 발견했다. 마지막으로 남은 흔적. 남편도 그것을 보았을까.
마사지 베드는 사라졌다. 피도 깨끗이 닦였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하지만 미숙은 알고 있었다. 이제 그들의 일상은 영원히 달라졌다는 것을. 미숙은 보았다. 안방 화장대 모서리를. 날카롭게 각진 그 모서리가 새벽빛을 받아 번뜩이고 있었다. 그녀는 걸레를 가져와 바닥을 닦고 또 닦았다. 보이지 않는 핏자국이, 지워지지 않는 냄새가 바닥 타일 틈새에 박혀 있는 것 같았다. 남편은 말없이 샤워실로 들어갔다. 물소리가 들렸다. 죄를 씻어내는 소리 같았다.
미숙은 거실에 멍하니 앉아 있었다. 샤워를 마친 남편이 나와 그녀 옆에 앉았다. 두 사람 사이에 침묵이 흘렀다. 문득 오래전 기억이 스쳤다. 대학가 카페. 은행잎이 떨어지던 창가. 스물여덟 해 전, 같은 손이 그녀의 손을 잡으며 말했었다. "손이 참 따뜻하네요." 그때는 정말 따뜻했다. 그렇다. 그들은 서로를 잃어버렸다. 스물다섯의 미숙과 스물여덟의 그는 어디로 갔을까. 언제부터 서로를 손을 잡지 않게 되었을까. 언제부터 서로의 이름을 부르지 않게 되었을까. 세 번의 유산을 겪기 전까지는.
남편이 손을 내밀었다. 조심스럽게, 마치 처음 손을 잡는 것처럼. 미숙은 그 손을 바라봤다. 예전에는 그렇게 따뜻했던 손. 세월이 만든 주름들이 선명했다. 하지만 여전히 익숙한 손이었다. 지금 그 손에서는 흙냄새가 났다. 미숙이 그 손을 잡았다. 오랜만에 다시 잡은 손. 다른 온기였다. 더 깊고, 더 복잡한 온기였다. 상처의 기억도 담겨 있고, 사랑의 기억도 남아 있는.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
남편이 물었다.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미숙의 손톱 밑이 검게 물들어 있었다.
미숙은 창밖을 바라봤다. 새벽이 깊어지고 있었다. 하얀빛이 점점 다른 색깔들을 불러오고 있었다. 연한 노란색이 하늘 끝에서 스며들고 있었다. 부드러운 분홍색이 구름 사이로 번져가고 있었다. 옅은 파란색이 어둠을 밀어내고 있었다.
"모르겠어."
미숙이 솔직하게 말했다.
"하지만... 해볼 수는 있겠지."
미숙은 자신의 손을 내려다봤다. 바코드 스캐너를 잡고 있던 손. 솜차이가 만졌던 손. 모두 같은 손이었다. 그리고 이제는 느낄 수 있었다. 솜차이는 사라졌지만 그가 남긴 것들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의 따뜻한 손길이 일깨운 감각들이, 그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전해준 위로가, 그의 존재 자체가 증명해 준 가능성이. 그 모든 것들이 이제 그녀의 일부가 되었다. 미숙은 자신의 몸을 느꼈다. 심장이 뛰고 있었다. 폐가 숨을 쉬고 있었다. 피가 혈관을 따라 흐르고 있었다. 살아있었다. 여전히 살아있었다. 그리고 느낄 수 있었다. 아픔도, 기쁨도, 사랑도, 슬픔도.
미숙은 알고 있었다. 아무것도 괜찮아지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남편 손의 온기 아래에는 차가운 것이 있었다. 비밀. 공범. 영원히 풀리지 않을 매듭. 솜차이가 그녀에게 준 것은 용기가 아니었다. 깨어남이었다. 하지만 깨어난 자는 다시 잠들 수 없다. 무감각했던 시절로 돌아갈 수 없다. 이제 그녀는 느낄 수 있었다. 모든 것을. 죄책감도, 공포도, 그리움도. 그것이 축복인지 저주인지 알 수 없었다.
창밖의 하늘이 파랗게 물들어가고 있었다. 너무 맑아서 잔인한 파란색이었다. 미숙은 창밖을 바라보았다. 사람들이 걸어가고 있었다. 아이들이 학교에 가고 있었다. 평범한 일상이 계속되고 있었다. 그녀도 그 일상 속으로 돌아갈 것이다. 마트에 가서 바코드를 찍고, 집에 돌아와 저녁을 먹고, 잠들고, 다시 일어나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남편이 그녀 옆에 섰다. 두 사람은 말없이 창밖을 바라보았다. 파란 하늘이 눈부시게 빛나고 있었다. 지독하게 맑은, 지독하게 무심한 하늘이었다.
"이제 자자."
남편이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피곤했다. 미숙은 고개를 끄덕였다. 화장실 거울 속에 낯선 여자가 서 있었다. 목덜미의 자국은 이미 희미해지고 있었다.
그는 소파에 앉자마자 죽은 사람처럼 늘어졌다. 미숙은 화장실로 향했다. 거울 속의 여자가 그녀를 바라보았다. 목덜미의 자국은 완전히 사라졌다.
샤워기에서 쏟아지는 물을 맞으며 미숙은 눈을 감았다. 검은 공간에 불꽃이 번졌다가 사그라졌다. 솜차이의 숨결이 느껴지는 것 같다가도, 이내 차가운 물소리만이 귓가를 울렸다.
욕실을 나왔을 때 남편은 이미 잠들어 있었다. 미숙은 창가로 걸어갔다. 커튼 사이로 쏟아지는 햇살이 그녀의 발끝에 닿았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았다.
파란 하늘이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끝도 시작도 없는 파란색. 마치 모든 것을 삼켜버릴 것처럼 깊고 투명한 하늘. 미숙은 그제야 알았다. 북극의 숨결처럼 차가워진 솜차이의 숨결처럼, 그들의 침묵도 영원할 것이라는 걸. 라벤더 향이 마지막으로 스쳐갔다.
미숙은 다시 마트 계산대에 서 있었다. 형광등 불빛은 여전히 하얗고, 소음은 여전히 웅웅거렸다.
"계산해 주세요."
손님이 물건들을 내밀었다. 미숙은 손을 뻗었다. 어젯밤 남자의 몸을 탐했고, 새벽에는 그 남자의 시신을 묻었던 손이었다. 냉동 만두 봉지를 집어 들었다. 섬뜩할 정도로 차가웠다. 순간, 손끝에서 솜차이의 식어버린 발목의 감촉이 되살아났다. 미숙의 손이 흠칫 떨렸다.
삐.
바코드 스캐너가 울렸다. 붉은 레이저 불빛이 포장지를 훑고 지나갔다.
삐.
그 날카로운 기계음 사이로 둔탁한 소리가 겹쳐 들렸다. 쿵. 화장대 모서리에 머리가 부딪히던 소리였다.
삐.
이번에는 다른 소리가 틈입했다. 캉! 얼어붙은 땅에 삽날이 박히던 소리. 쓱쓱! 거실 바닥에 시체가 끌리던 소리.
미숙의 호흡이 빨라지려 했다. 하지만 그녀는 멈추지 않았다. 멈추면 안 된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았다. 손은 솜차이의 온기 대신 차가운 플라스틱 용기를 쥐고 레일 위로 넘겼다. 손톱 밑에 거무스름한 흙 때가 끼어 있는 것 같아 손가락을 말아 쥐었다. 분명 아까 칫솔로 문대어 씻어냈는데도, 흙냄새가 손끝에서 피어오르는 것 같았다.
"영수증 버려 드릴까요?"
미숙의 목소리는 높지도 낮지도 않았다. 완벽한 기계의 음성이었다.
손님은 대답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미숙의 손가락이 영수증을 구겨 쓰레기통에 던졌다.
어젯밤, 산속 구덩이에 솜차이의 지갑을 던져 넣던 손짓과 똑같았다.
유리창 너머로 하늘이 보였다. 지독하게 파란 하늘이었다.
눈이 시리도록 투명해서, 오히려 끔찍하게 고요한 하늘이었다.
세상은 완벽하게 평화로웠고, 살인과 유기를 저지른 그녀도 그 평화로운 풍경의 일부였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어서 오세요. 봉투 필요하세요?"
미숙은 입꼬리를 당겨 올렸다. 거울을 보며 수천 번 연습했던, 친절하고 공허한 미소였다.
삐.
다시 바코드 스캐너가 울렸다.
그녀의 심장 박동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오직 기계음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