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이 지났다. 미숙은 솜차이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다. 이번에는 망설임이 없었다. 손가락이 번호를 누르는 동안 심장이 뛰는 소리를 들었다. 가슴 안에서 뭔가 깨어나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아, 미숙 씨."
솜차이의 목소리에 미묘한 변화가 있었다. 처음보다 부드러웠고, 어딘지 친근했다. 태국어 억양이 여전히 섞여 있었지만 더 자연스러웠다. 마치 그들 사이에 보이지 않는 실이 연결된 것처럼.
"목요일... 어때요?"
"네, 갈게요."
짧은 대화였지만 그 안에 많은 것이 담겨 있었다. 기대, 설렘, 그리고 이름 붙일 수 없는 갈망. 전화를 끊고 미숙은 핸드폰을 가슴에 안고 거울 앞에 섰다. 설렘이 있었다. 하지만 그 아래 다른 감정도 있었다. 이름 붙이기 어려운 것. 마흔다섯 살 유부녀가 태국에서 온 젊은 남자를 기다린다. 그 문장을 마음속으로 읽었을 때 얼굴이 뜨거워졌다. 부끄러움인지, 흥분인지, 아니면 혐오인지 구분되지 않았다. 거울 속 여자가 낯설었다. 저 여자는 누구인가. 저렇게까지 해야 하나. 미숙은 고개를 저었다. 생각하지 말자. 느끼기만 하자. 십칠 년 전 남편과 처음 만났을 때보다 더 강렬한 떨림이었다.
첫 번째 목요일이 돌아왔다.
마사지는 지난번과 같았다. 솜차이의 손이 어깨를 풀고, 목을 누르고, 등을 쓸어내렸다. 하지만 미숙의 몸은 달랐다. 그의 손길이 닿을 때마다 더 선명하게 느껴졌다. 피부 아래까지 스며드는 것 같았다.
마사지가 끝나고 솜차이가 마사지 침대를 접고 있었다. 미숙은 부엌으로 갔다. 평소에는 하지 않던 일이었다.
"차 한 잔... 드실래요?"
솜차이가 손을 멈추고 미숙을 바라보았다. 잠시 망설이는 것 같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네. 좋아요."
두 사람은 식탁에 마주 앉았다. 미숙이 따뜻한 보이차를 건넸다. 솜차이가 두 손으로 찻잔을 감쌌다. 그 모습이 왠지 어린아이 같았다.
"태국에서는... 뭐 하셨어요?"
"공장이요. 자동차 부품 만드는."
"힘들었겠네요."
"네. 많이요."
대화는 거기서 끊겼다. 하지만 침묵이 어색하지 않았다. 솜차이가 차를 다 마시고 일어섰다.
"다음 주에 또 올게요."
"네."
문이 닫힌 후에도 식탁 위 찻잔에서 김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미숙은 그 찻잔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그다음 목요일.
세 번째 만남이었다.
마사지를 받는 동안 미숙은 이상한 것을 느꼈다. 솜차이의 손이 목을 지나갈 때, 손끝이 평소보다 느리게 움직였다. 조심스럽게. 마치 무언가를 확인하려는 것처럼.
"오늘... 긴장하셨어요?"
엎드린 자세에서 솜차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니에요. 왜요?"
"맥박이 빨라요. 여기."
그의 손가락이 목 옆을 가볍게 눌렀다. 미숙은 숨을 멈췄다. 정말 심장이 빠르게 뛰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솜차이가 느끼고 있었다.
마사지가 끝나고 미숙은 다시 차를 내왔다. 이번에는 솜차이가 먼저 식탁에 앉아 기다리고 있었다.
"고마워요. 항상."
"뭐가요?"
"차. 그리고..." 솜차이가 말끝을 흐렸다. "그냥. 다요."
미숙은 대답하지 못했다. 그의 눈을 보고 있었다. 검고 깊은 눈이었다. 거기에 무언가가 담겨 있었다. 미숙도 같은 것을 느끼고 있다는 걸, 그가 알고 있을까.
솜차이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현관으로 향하다가 문 앞에서 멈췄다. 돌아보았다.
두 사람의 눈이 마주쳤다.
미숙이 먼저 시선을 피했다.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다음 주에..."
"네."
문이 닫혔다. 미숙은 한참 동안 현관문을 바라보고 서 있었다. 네 번째 목요일이 오기까지 미숙은 달라져 있었다. 마트에서 일할 때도 입가에 미소가 머물렀다. 바코드를 찍는 손가락에도 리듬이 있었다. 삐, 삐, 삐. 기계음이 음악처럼 들렸다.
"미숙 씨, 또 웃고 있네요."
은희가 옆에서 놀렸다.
"그래요?"
"네. 정말 많이 달라졌어요. 좋은 일 있나 봐요."
미숙은 당황해서 바코드 스캔에 집중했다. 자신의 변화가 이렇게 눈에 띄다니. 하지만 숨길 수도 없었다. 그녀의 몸 전체가 변하고 있었다. 걸음걸이, 목소리, 눈빛까지.
점심시간에 화장실 거울 앞에 섰을 때 미숙은 놀랐다. 거기 서 있는 여자가 누구인지 모르겠었다. 같은 얼굴이었지만 다른 사람 같았다. 눈에 빛이 돌았고, 볼에는 약간의 홍조가 있었다. 입술도 전보다 붉어 보였다.
그녀는 자신의 목을 만져보았다. 솜차이의 손길이 닿았던 곳을. 아직도 그 감촉이 남아 있는 것 같았다. 피부 깊숙이 스며든 온기가.
오후에 단골 할머니가 왔다. 매주 같은 시간에 오셔서 같은 것들을 사가시는 분이었다. 우유, 식빵, 바나나.
"아가씨, 오늘 참 예뻐 보이네."
할머니가 말씀하셨다.
"무슨 좋은 일 있어?"
미숙이 웃었다. 자연스럽게 나오는 웃음이었다.
"그냥... 날씨가 좋아서요."
"그래, 그래. 봄이니까. 봄이 되면 모든 게 달라지지."
할머니가 가신 후 미숙은 창밖을 바라보았다. 정말 봄이었다. 마트 앞 가로수에 연둣빛 새순이 돋아나고 있었다. 언제부터 이렇게 파릇해졌을까. 그동안 보지 못했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미숙이 모르는 사실이 하나 있었다. 남편도 그 변화를 느끼고 있다는 것이었다. 십칠 년을 함께 산 부부의 직감이었다. 더 밝아진 표정, 자주 보는 거울, 은근히 신경 쓰는 외모
그리고 결정적으로, 침실에서 가끔 풍기는 낯선 냄새.
남편은 말하지 않았다. 확신이 서지 않았고, 믿고 싶지도 않았다. 하지만 의심의 씨앗은 이미 심어져 있었다. 매일 조금씩 자라고 있었다.
어느 날 저녁, 남편이 말했다.
"요즘 기분이 좋아 보이네."
"그래요?"
미숙이 설거지를 하며 대답했다. 목소리가 평소보다 밝았다.
"무슨 일 있어?"
"별일 없어요. 그냥... 봄이라서 그런가 봐요."
남편은 더 이상 묻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눈에는 의심이 자리 잡고 있었다.
네 번째 목요일 저녁, 솜차이가 도착했다. 문을 열자 늘 보던 마사지 매트와 다른 매트를 들고 있었다. 하얀색이었다.
"이게 뭐예요?"
"그냥... 미숙씨한테 주고 싶어서요."
솜차이의 한국어는 여전히 어색했지만 진심이 느껴졌다. 미숙은 솜차이가 건네준 매트를 받아 들고 어색해했다. 받아도 될까. 안될까. 망설임이 마음속을 이리저리 굴러다녔다. 그러다 솜차이의 멀뚱한 눈을 보고서야 말문을 열었다,
"고마워요."
미숙이 흰색 매트를 팬트리에 넣어 놓고 음료를 따르는 동안 솜차이는 마사지 매트를 펼쳤다. 이제 익숙한 과정이었다.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공기 중에 미묘한 긴장감이 흘렀다.
"오늘은... 마사지 말고 그냥 이야기할까요?"
미숙의 제안에 잠깐 생각하던 솜차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은 소파에 나란히 앉았다. 테이블을 사이에 두지 않은 가까운 거리였다. 솜차이의 무릎이 미숙의 무릎과 거의 닿을 듯 말 듯했다.
"요즘 몸은 어떠세요?"
솜차이의 한국어는 여전히 어색했지만 따뜻했다.
"좋아요. 정말 좋아요."
미숙의 대답이 진심이었다.
"저도... 정말 좋아요."
솜차이의 손이 천천히 미숙의 손을 향해 움직였다. 미숙은 그 손을 바라보았다. 자신의 것보다 조금 더 어둡고, 조금 더 넓은 손. 그 손이 자신의 손등을 덮었을 때 전류가 흐르는 것 같았다. 솜차이가 갑자기
"미숙씨."라고 불렀다. 너무 갑작스럽게 이름을 부르자 미숙은 당황했지만 나쁘지는 않았다.
"네."
"저... 미숙씨… 전… 미숙이란 이름이 좋아요."
한국어가 어색해서인지 더 순수하게 들렸다. 미숙의 심장이 빨리 뛰었다. 오랫동안 잊었던 감정이 가슴 깊은 곳에서 일어났다.
"저도... 솜차이 씨가 좋아요."
그 말을 하는 순간 미숙은 자신이 선을 넘었다는 것을 알았다. 돌이킬 수 없는 선을. 하지만 후회되지 않았다. 오히려 해방감이 느껴졌다.
솜차이가 미숙에게 가까이 다가왔다. 미숙도 그를 향해 몸을 기울였다. 두 사람의 얼굴이 가까워졌다. 미숙은 그의 숨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특유의 향. 인센스와 비누, 그리고 남자의 자연스러운 체취가 섞인 냄새.
자연스럽게 입술이 맞닿았다. 미숙은 자신의 몸이 반응하는 것을 느꼈다. 가슴이 뜨거워지고, 숨이 가빠졌다. 얼마만인가 이렇게 가슴 떨리던 순간이. 기억이 나진 않지만 달랐다. 그의 키스는 더 깊고, 더 간절하고 달콤했다. 솜차이가 미숙의 손을 잡고 침대로 향했다. 미숙의 몸이 휘청거리며 방문틀을 지지하며 기대어 있다가 스르륵 침대 위로 널렸다. 솜차이는 조심스럽게 그런 그녀의 몸을 탐닉했다. 미숙의 몸이 꽈배기처럼 꼬이더니 고개가 뒤로 뒤집어졌다. “아.” 외마디 비명 소리가 누가 들을까 겁난다는 듯이 들릴 듯 말 듯 흘러나왔다.
침실에서 두 사람은 서로를 천천히 사랑했다. 이번에는 마사지가 아니었다. 진짜 사랑이었다. 미숙은 자신의 몸이 이렇게 반응할 수 있다는 것에 놀랐다. 갱년기로 무감각해진 줄 알았던 몸이 솜차이의 손길에 깨어나고 있었다.
그의 손이 그녀의 목을, 어깨를, 가슴을 따라 내려갔다. 미숙은 눈을 감고 그 감각에 몰입했다. 십칠 년 동안 잃어버렸던 감각들이 하나씩 되살아났다. 서로의 몸은 서로를 이해했다.
절정의 순간, 미숙은 울었다. 기쁨의 눈물이었다. 자신이 아직 살아있다는 것에 대한, 느낄 수 있다는 것에 대한.
사랑을 나눈 후 두 사람은 나란히 누워 천장을 바라봤다. 미숙은 솜차이의 가슴에 머리를 기대고 그의 심장소리를 들었다. 규칙적이고 힘찬 소리였다. 살아있는 소리였다.
"솜차이 씨는... 언제까지 한국에 있을 거예요?"
미숙이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사실..." 솜차이가 망설였다. "비자가 곧 끝나요."
"그럼?"
"태국에 있는 가족들이... 돈이 필요해서... 비자도 연장해야 되고."
솜차이가 지갑에서 사진을 꺼내 보여줬다. 앞니 빠진 여자아이가 웃고 있었다.
"딸이에요. 일곱 살."
미숙은 사진 속 아이를 바라보았다. 솜차이의 눈을 닮은 아이였다. 미숙은 처음으로 그의 절박한 현실을 이해했다. 자신은 일탈을 즐기고 있었지만, 그에게는 생존의 문제였다.
"어떻게든... 방법이 있을 거예요."
"그렇게 생각하고 싶지만..."
솜차이가 미숙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의 손가락이 그녀의 머리카락 사이를 부드럽게 지나갔다.
"이 일을 그만두고 싶어도 그만둘 수가 없어요. 위험한 줄 알지만."
"위험하다니?"
"가끔... 나쁜 사람들도 있어요. 돈을 주지 않거나, 다른 것을 요구하거나."
미숙은 가슴이 아팠다. 솜차이가 그런 위험 속에서 살고 있다는 것이.
"만약에... 제가 결혼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요?"
"글쎄요...저도 결혼 안했다면..."
솜차이의 한국어는 여전히 어색했지만 따뜻했다.
"그랬다면 좋았을 텐데."
"지금도 좋아요."
"하지만 이런 관계는... 언젠가 끝날 수밖에 없잖아요."
솜차이가 미숙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에는 슬픔이 있었다.
"그때 되면... 생각해 봐요."
"도망칠까요? 둘이서."
미숙이 농담처럼 말했지만, 마음 한구석에서는 진심이었다.
"저는... 미숙 씨와 함께라면 어디든 갈 수 있어요."
그 말에 미숙의 가슴이 뜨거워졌다. 정말 그럴 수 있을까. 모든 것을 버리고 그와 함께 새로운 곳에서 시작할 수 있을까.
두 사람은 그렇게 서로를 껴안고 잠들었다.
새벽에 솜차이가 떠나간 후, 미숙은 혼자 남았다. 침실에는 아직 그의 체취가 남아 있었다. 은은한 인센스 향과 자연스러운 남자 냄새가 섞인 이국적인 향기였다. 미숙은 베개에 얼굴을 묻고 그 냄새를 깊이 들이마셨다.
몸이 달랐다. 어제까지의 몸과는 완전히 다른 몸이 되어 있었다. 살아있는 몸. 느끼는 몸. 사랑하는 몸.
그 후 며칠 동안 미숙은 구름 위를 걷는 것 같았다. 마트에서 일할 때도, 집에서 혼자 있을 때도, 모든 순간이 꿈같았다. 솜차이와의 약속이 없는 날에도 그의 존재가 느껴졌다. 그가 만진 곳들이 아직도 따뜻했다.
그런데 미숙은 몰랐다. 남편이 그 모든 변화를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문득 남편이 미숙을 유심히 바라봤다. 당신 "화장했어?" "
“... 아니요."
"근데 뭔가 달라 보이네." 미숙은 대답대신 찬물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일요일 오전, 남편이 골프를 나가려 했다.
"내일 올 거야.골프 끝나고 바로 출장 갈거야."
미숙은 안도했다. 오늘 저녁에 솜차이를 만나기로 했었다.
하지만 남편은 골프채를 차에 싣다가 멈춰 섰다. 어젯밤 미숙이 잠들며 무의식 중에 뒤척이던 모습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때 풍긴 낯선 냄새. 십칠 년을 함께 산 부부로서의 본능적 불안감.
그는 차에서 내려 다시 집으로 들어갔다. 거실 텔레비전을 켰지만 집중할 수 없었다. 계속 미숙의 얼굴이 떠올랐다. 요즘 달라진 그녀의 모습들.
"정말 죄송합니다. 와이프가 갑자기…네, 제 그린피는 보내겠습니다. 아닙니다. 당연히 제가 내야지요 네.. 네 정말 감사합니다."
그는 동반자들에게 연락을 돌렸다. ‘와이프 건강에 응급 상황이 생겼다’고 거짓말을 했다. 사실은 확인하고 싶었다. 자신의 의심이 맞는지.
오후가 되자 남편은 집 근처를 돌아다녔다. 그는 자동차에 앉아 집이 보이는 곳에서 기다렸다. 무엇을 기다리는지도 확실하지 않았다. 그냥 뭔가 일어날 것 같은 불안감이 있었다.
여섯 시에 솜차이가 도착했다. 남편은 자동차 창문으로 그 모습을 보았다. 젊은 동남아시아계 남자가 큰 가방을 들고 자신의 집으로 들어가는 것을. 심장이 떨렸다. 의심이 확신이 되는 순간이었다.
미숙은 평소보다 간절하게 솜차이를 맞았다.
문이 열리자 익숙한 향기가 스며들었다. 아로마 오일과 그의 체취가 섞인 냄새. 그런데 오늘은 왜인지 그 향이 조금 다르게 느껴졌다. 따뜻하다고 해야 할까, 낯설다고 해야 할까. 미숙은 그 생각을 밀어냈다.
"보고 싶었어요."
"저도요."
두 사람은 거실에서 저녁을 함께 먹었다. 미숙이 직접 만든 김치찌개였다. 솜차이가 좋아한다고 했던 음식이었다.
"정말 맛있어요."
솜차이의 한국어가 어색했지만 진심이 느껴졌다.
"다행이에요."
평범한 대화였지만 두 사람에게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마치 부부인 것처럼 자연스러웠다. 언어의 제약이 약간 있어도 서로를 이해하는 것 같았다.
식사를 마치고 두 사람은 침실로 갔다. 오늘은 더욱 깊이 사랑했다. 서로에 대한 그리움과 애정을 온몸으로 표현했다.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감정들을 몸짓으로 전했다.
미숙은 솜차이의 품에서 모든 것을 잊었다. 현실도, 남편도, 불안도. 오직 이 순간만이 존재했다.
사랑을 나눈 후 두 사람은 나란히 누워 천장을 바라봤다. 미숙은 솜차이의 가슴에 머리를 기대고 그의 심장소리를 들었다. 규칙적이고 힘찬 소리였다. 살아있는 소리였다.
문득 불안이 스쳤다. 이 순간이 영원할 수 없다는 것을 미숙은 알고 있었다. 솜차이의 심장소리를 들으면서도 마음 한구석에서는 차가운 목소리가 속삭였다. 이게 들키면 어떻게 되지? 남편이 알게 되면? 그 순간 자신은 어떤 얼굴을 하게 될까? 솜차이를 바라볼 수 있을까, 아니면 외면하게 될까? 미숙은 그 생각을 떨쳐내려 했다. 솜차이를 더 세게 안았다. 마치 그렇게 하면 불안도 함께 눌러버릴 수 있다는 듯이.
그 순간이었다.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두 사람은 얼어붙었다. 미숙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솜차이는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다녀왔어."
남편의 목소리였다.
미숙과 솜차이는 서로를 바라봤다. 솜차이의 얼굴에 당황함이 스쳤다. 미숙은 머릿속이 하얘졌다.
남편의 발걸음이 복도를 따라 다가오고 있었다. 침실 문이 열려 있었다.
"어..."
남편이 침실 문 앞에 나타났다. 그리고 침대 위의 두 사람을 봤다.
시간이 멈춘 것 같았다.
그런데 이상했다. 남편은 소리를 지르지도, 화를 내지도 않았다. 그저 조용히, 교통사고 현장을 확인하는 보험사 직원처럼 건조하게, 침대 위 널브러진 살덩이들을 내려다볼 뿐이었다. 그 건조한 눈빛이 미숙을 난도질했다. 차라리 욕을 하거나 때렸으면 나았을 것이다. 하지만 남편의 눈에 비친 미숙은 화를 낼 가치조차 없는, 고장 난 가전제품이나 처리해야 할 오물 덩어리 같았다.
발가벗겨진 수치심이 살갗을 파고들었다. 십칠 년을 지켜온 '정상적인 부부'라는 껍데기가 산산조각 났다. 그 깨진 조각들이 미숙의 온몸을 찔렀다. 이 상황을 견딜 수 없었다. 당장이라도 증발해 버리고 싶었다.
그때, 솜차이가 움직였다. "미숙 씨... 진정해요." 그가 침대에서 일어나 미숙에게 다가왔다. 그의 눈에는 걱정이 가득했다. 하지만 미숙의 눈에는 아무것도 들어오지 않았다. 시야가 좁아지고 있었다. 숨이 막혔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남편의 시선이, 그 차갑고 건조한 시선이 피부를 파고드는 것만 느껴졌다. 솜차이의 손이 미숙의 어깨에 닿으려 했다. 그 순간, 미숙의 몸이 먼저 반응했다. 생각보다 빠르게. 의지보다 먼저. "만지지 마!" 비명인지 신음인지 모를 소리가 새어 나왔다. 미숙의 팔이 허공을 휘저었다. 솜차이를 밀어내려는 것인지, 남편의 시선을 가리려는 것인지, 자기 자신을 보호하려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그저 본능이었다. 공포에 질린 짐승의 발버둥이었다. 미숙은 양팔을 휘저었다. 손바닥이 솜차이의 가슴에 부딪히자 거칠게 밀어붙였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무방비 상태로 다가오던 솜차이의 몸이 허공에서 중심을 잃었다. 좁은 침실, 피할 곳 없는 공간이었다.
그의 몸이 뒤로 꺾이며 화장대 쪽으로 쏠렸다. 미숙의 손끝에서 그의 따뜻했던 체온이 떨어져 나갔다.
그리고, 쿵. 둔탁하고 끔찍한 소리가 났다. 뼈가 단단한 모서리에 부딪히는, 들어서는 안 될 소리였다.
그리고 조용해졌다.
솜차이가 바닥에 쓰러진 채 움직이지 않았다. 머리 아래로 붉은 것이 천천히 번져나갔다.
"저기요 솜차이…?"
미숙이 떨리는 목소리로 불렀다.
솜차이는 대답이 없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