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에 스며든 생성형 AI, 창작자의 스토리텔링은?

AI 영상, 판도라 상자가 열렸다

by 마르코 루시

부에노스아이레스의 한 건물이 무너져 내린다. 독성 눈이 내린 지구에서 살아남은 마지막 인류의 절망적 몸부림이 스크린을 채운다. 그런데 이 장면을 만든 건 수십 명의 VFX 아티스트가 아니다. 몇 줄의 텍스트 명령어였다. 넷플릭스 아르헨티나 SF 시리즈 '엘 에테르나우타'의 이 장면은 기존 방식보다 10배 빠르게 완성되었고, 넷플릭스 오리지널에서 AI가 최종 화면에 등장한 첫 사례가 되었다. 할리우드 스튜디오에서 몇 달이 걸렸을 작업을 며칠 만에 끝낸 것이다. 이 작은 변화가 던지는 파급효과를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 구텐베르크 인쇄술이 필사본 시대를 끝낸 것처럼, 생성형 AI는 이미 창작의 DNA를 바꾸기 시작했다.


숫자가 말하는 진실은 더욱 충격적이다. 전통적인 VFX 시퀀스는 분당 수천 달러의 비용이 드는 반면, 생성형 AI는 미디어 업계 전반에 걸쳐 10%, TV와 영화 분야에서는 최대 30%까지 비용 절감을 가능하게 할 것으로 전망된다. 아마존의 알렉사 펀드가 '쇼러너'라는 AI 드라마 생성 플랫폼을 운영하는 페이블 스튜디오에 투자한 것도 우연이 아니다. 사용자가 몇 개의 단어만 입력하면 22분짜리 완전한 에피소드를 만들어내는 이 플랫폼은 '넷플릭스 오브 AI'를 자처한다. 텍스트-투-비디오 AI 시장은 2029년까지 13억 3천만 파운드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예측된다. 더욱 놀라운 건 VFX 아티스트의 96%가 AI 교육을 받지 못했고, 31%가 이를 AI 도입의 장벽으로 꼽는다는 현실이다. 기술 혁신의 속도가 인간의 적응 속도를 압도하고 있다.


하지만 여기서 기존 통념을 뒤집어보자. AI가 인간 창작자를 대체한다는 공포 프레임은 잘못된 것일 수 있다. 넷플릭스 공동 CEO 테드 사란도스는 "AI는 창작자들이 영화와 시리즈를 더 저렴하게 가 아니라 더 좋게 만들 수 있도록 돕는 놀라운 기회"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AI가 가져오는 건 대체가 아니라 '창작의 민주화'일 수도 있다. 예전에는 거대 예산이 있어야만 가능했던 고급 시각 효과가 이제 소규모 제작사도 접근할 수 있게 되었다. 영화감독 아스카니오 말가리니가 1년간 AI 도구만으로 단편영화 '크라켄'을 제작한 실험에서 보듯, AI는 감독을 다큐멘터리 편집자처럼 만든다. 수천 개의 소스에서 나온 영상을 조합하는 새로운 종류의 창작자가 탄생하는 것이다. 역설적이게도 관객들이 출처를 모르는 상태에서는 AI 생성 예술 작품을 인간이 만든 것보다 더 선호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그렇다면 조직과 개인은 어떻게 대비해야 할까? 먼저 'AI 리터러시'가 새로운 필수 역량이 되었다는 걸 인정해야 한다. 단순히 도구를 사용하는 것을 넘어, AI와의 '창작적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능력이 핵심이다. 디즈니와 유니버설이 미드저니를 상대로 제기한 저작권 소송은 업계의 법적 지형도가 바뀌고 있음을 보여준다. 기업들은 AI 사용 가이드라인과 윤리 기준을 미리 세워야 한다. 특히 콘텐츠 산업에서는 'AI 투명성' 원칙을 도입하는 것이 중요하다. 관객에게 어떤 부분이 AI로 제작되었는지 공개하는 것이 신뢰를 구축하는 길이다. 아마존이 쇼러너와 같은 플랫폼에 투자하는 것처럼, 기존 미디어 기업들도 AI 네이티브 콘텐츠 생태계 구축에 나서야 한다. 업계 전문가들은 향후 5년 내 콘텐츠 제작 과정에서 AI 활용이 급속히 확산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결국 우리는 근본적인 질문에 직면한다. 창작의 본질이 무엇인가? 만약 기계가 천 개의 완벽한 이야기를 순식간에 만들어낼 수 있다면,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스토리텔링은 무엇인가? 아마도 그것은 경험의 진정성, 감정의 깊이, 그리고 인간만이 가진 불완전함의 아름다움일 것이다. AI가 효율성과 완성도를 담당한다면, 인간은 의미와 영혼을 불어넣는 역할을 맡게 될 수 있다. 넷플릭스의 AI 실험은 시작에 불과하다. 진짜 혁명은 AI가 인간의 창의성을 어떻게 증폭시키느냐에 달려 있다. 그렇다면 당신의 조직은 이 변화의 파도에 올라탈 준비가 되어 있는가? 아니면 여전히 과거의 창작 방식에 안주하며 새로운 가능성을 외면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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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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