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S 로그아웃이 주는 해방

- 다 필요 없고 도망가고 싶어 3화 -

by 마르코 루시

아침에 눈을 뜰 때,

가장 먼저 손끝이 찾는 것은 휴대폰의 차가운 표면이었다.

화면이 켜지자 작은 붉은 점들이 깜빡였다.

메시지, 대화방, 메일, SNS.

각각의 숫자가 조급한 심장박동처럼 뛰고 있었다.


손가락이 습관의 궤도를 따라 움직였다.

아래로, 아래로, 끝없이 아래로.

누군가의 여행 풍경이 지나갔다.

누군가의 브런치 접시가 스쳤다.

누군가의 환한 웃음이 화면을 채웠다.


도쿄의 호텔 창가...

기울어진 오전 햇살이 흰 침구를 적시고,

정갈하게 차려진 테이블 위로 빛이 내려앉았다.

그 빛 속에서 누군가가 웃고 있었다.

부럽다고 생각하지 않았는데도

가슴 어딘가가 쿡, 하고 움푹 들어갔다.


책상 위에는 식어버린 커피가 있었다.

어젯밤 정리하다 만 서류들이 흩어져 있었고,

읽지 못한 메일들이 빨간 경고등처럼 깜빡이고 있었다.


그런데도 손가락은 멈추지 않았다.

화면을 넘기고, 또 넘겼다.

#소확행 #감사일기 #데일리 #여행 #맛집

해시태그들이 질서 정연하게 늘어서 있었다.

모든 순간이 완벽한 액자처럼 보였다.


언제부터였을까.

아침마다 타인의 삶을 들여다보는 것이

하루를 여는 의식이 되어버린 것은...

손가락 끝이 화면을 스치다가 멈췄다.

작은 글자가 눈에 들어왔다.

"로그아웃."


떠난다고 해서 세상이 멈추는 것도 아닌데,

왜 매일 이곳에 시선을 맡기고

타인의 시간에 맞춰 숨을 쉬고 있었을까.

SNS는 삶의 거울이라고들 했다.

하지만 그것은 지나치게 매끄러운 거울이었다.

흠집 하나 없이 반짝이고,

가장자리마저 완벽하게 다듬어진.


그 거울 앞에서 자주 낯선 얼굴을 마주했다.

자신이 아닌 누군가가 되려고 애쓰는 얼굴을.

좋아요 숫자가 올라갈 때마다 심장이 뛰었다.

댓글 하나에 하루 종일 기분이 좋아졌다가,

읽히지 않는 메시지 하나에 온종일 시무룩해졌다.


가장 힘겨웠던 것은 '스토리' 기능이었다.

24시간 후 사라진다는 일회 소멸성에

더 솔직해질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그런데 오히려 더 자주, 더 많이 올려야 한다는

이상한 의무감이 찾아왔다.


아침 '굿모닝' 인증숏부터

저녁 '오늘도 고생했어' 메시지까지.

하루 전체가 증명해야 할 무언가가 되었다.

지하철에서도, 엘리베이터에서도,

심지어 화장실에서도 화면을 들여다봤다.

신호등 앞의 짧은 대기 시간조차

허전함을 견디지 못하고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그 시간들이 모이면 하루의 절반도 넘을 것 같았다.


아름다운 하늘을 봐도 사진부터 찍었다.

맛있는 음식 앞에서는 조명과 각도부터 살폈다.

친구를 만나서도 대화보다 인증숏이 먼저였다.

감정보다 기록이, 경험보다 공유가 앞서는 삶.

살기 위해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기록하기 위해 사는 것 같았다.


모두가 연결되어 있는 듯했지만,

사실 아무도 진짜 말을 걸지 않았다.

말을 건 것 같았지만, 그것은 착각이었다.

표면을 스치는 소음만 있을 뿐

진짜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처음 로그아웃 버튼을 누를 때, 심장이 쿵, 하고 떨어졌다.

언제든 다시 들어올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그 작은 행위가 거대한 결단처럼 느껴졌다.

화면이 텅 비는 순간,

가슴속 무언가가 스르르 빠져나가는 것 같았다.

무겁게 짓누르던 것들이

한순간에 사라지는 기분.


휴대폰을 뒤집어 책상 위에 내려놓았다.

불안이 물결처럼 밀려왔다가

이내 고요한 공기로 바뀌었다.

아무도 소식을 묻지 않는 상태.

아무도 소식을 전하지 않는 상태.

낯설었지만, 이상하게 편안했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감정을 빌려 살았던 것일까.

사람들의 기쁨에 덩달아 웃어야 했고,

사람들의 슬픔에 함께 무거워져야 했다.

좋아요 하나로 하루의 기분을

결정하는 일이 당연해져 있었다.

그러나 그 당연함이 서서히 자신을 갉아먹고

있었다는 걸 이제야 깨달았다.


좋아요를 누르면서도 마음은 비어갔다.

누르지 않은 손가락은 괜한 죄책감을 남겼다.

그것은 작은 의례였다.

하지 않으면 소외될까 두려운, 하찮은 의례...

그 의례들 사이에서

자신의 감정보다 타인의 기분을 먼저 헤아리게 되었다.

자신의 목소리보다 타인의 목소리에 먼저 귀 기울이게 되었다.


첫날은 불안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혹시 놓치고 있는 소식이 있는 건 아닐까.

혹시 누군가 찾고 있는 건 아닐까.

무의식적으로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가

로그인 화면을 보고서야 멈췄다.

아, 나갔구나.

중독이라는 단어가 머릿속을 스쳤을 때

작은 경악이 찾아왔다.

걸어가면서도, 계단을 오르면서도,

아무 생각 없이 화면을 들여다보던 시간들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둘째 날에는 금단 증상 같은 것이 왔다.

손가락이 자꾸만 특정한 모양을 그렸다.

화면을 쓸어내리는 모양을.

하지만 사흘, 나흘이 지나면서 깨달았다.

그 누구도 찾지 않았다는 것을.

그 누구도 부재를 궁금해하지 않았다는 것을.


사라진 줄도 모르고,

돌아온 줄도 모를 것이다.

그 사실이 서글프면서도 해방감을 주었다.

존재를 증명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

그것은 진짜 해방이었다.


며칠 뒤, 친구가 물었다.

"요즘 잘 안 보이더라?"

"인스타도 없고, 연락도 느리고."

"무슨 일 있어?"

그 질문에 미소만 지었다.

SNS에 얼굴을 내걸지 않으면

세상에서 사라지는 것처럼 느껴졌던 시간들이

이제는 우스워 보였다.


실제로는 그 어느 때보다 선명하게 존재하고 있었다.

보이지 않아도 괜찮다는 것을

온몸으로 배우고 있었다.


친구는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다.

"요즘 표정이 한결 나아 보여."

"뭔가 여유로워졌다고 해야 하나."

그 말이 의외였다.

연결을 끊으면 더 외로워 보일 거라 생각했는데,

오히려 그 반대였다.

비교에서 벗어나니 얼굴에도 평온이 찾아온 것 같았다.


로그아웃 이후, 시간의 질감이 달라졌다.

아침에 눈을 뜨면 가장 먼저 창을 열었다.

하늘의 색깔을 보고, 공기의 온도를 느꼈다.

창밖 나무의 잎사귀가 어제보다 얼마나 자랐는지 살폈다.


예전에는 눈을 뜨자마자 손이 휴대폰으로 향했다.

알림, 좋아요, 메시지, 스토리.

감정이 생기기도 전에

이미 타인의 감정들로 하루가 시작되었다.

이제는 하루의 첫 감정을 스스로에게 묻는다.

오늘 몸은 어떤가.

마음은 어떤 색깔인가.

무엇을 하고 싶은가.


길을 걸을 때도 변했다.

화면 대신 앞을 보고 걸었다.

계절이 바뀌고 있다는 걸 피부로 느꼈다.

길가 카페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이 들렸다.

지나가는 사람들의 걸음걸이와 표정이 보였다.


카페에서 커피를 마실 때도 달라졌다.

사진을 찍지 않고 그냥 마셨다.

컵의 따스함이 손바닥에 전해졌고,

향이 코끝을 스쳤다.

그 순간을 온전히 느꼈다.


혼자 있는 시간이 더 이상 공허하지 않았다.

오히려 풍성해졌다.

SNS로 메우려던 빈틈들이

실은 스스로에게 꼭 필요한 시간이었다는 걸 알았다.

생각하고, 느끼고, 정리하는 시간...

공기처럼 당연하다고 여겼던 것들이

사실은 우리를 질식시키고 있었던 건 아닐까.


SNS는 현대인의 공기라고들 한다.

그렇다면 때로는 숨을 멈추는 것도

살아가는 방식 중 하나일 수 있다.

더 깊이, 더 깨끗하게 숨 쉬기 위해서...


연결을 끊는다고 외로워지는 것은 아니었다.

연결을 끊어야만 들리는 소리가 있었다.

진짜 고요의 소리가...

가장 큰 해방은 속도로부터의 해방이었다.

타인의 속도에 맞춰 뛰던 삶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리듬을 되찾는 일.


누군가는 매시간 업데이트를 올리고,

누군가는 하루에 수십 개의 스토리를 남겼다.

그 속도에 뒤처지지 않으려고

숨 가쁘게 달려왔던 자신이 안쓰러웠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것을 배웠다.

보여주지 않아도 괜찮다는 것을 배웠다.

증명하지 않아도 여전히 여기 있다는 것을 배웠다.

가끔 로그인 버튼이 눈에 밟힌다.

그럴 때마다 다시 손을 거둔다.

지금 여기, 이 순간이

화면 속 어떤 장면보다도 생생하고 진짜라는 것을 안다.


그리고 속으로 흘러나온다.

지금은, 자신에게 로그인할 시간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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