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가 너무 많아질 때 생기는 피로

- 다 필요 없고 도망가고 싶어 4화 -

by 마르코 루시

목요일 저녁, 지하철에서 내려 집으로 향하는 길이었다.

핸드폰이 연속으로 진동했다. 한 번, 두 번, 세 번. 화면을 켜자 세 개의 단체 채팅방에서 동시에 메시지가 쏟아져 나왔다.


첫 번째 방: "다음 주에 시간 되면 보자."

두 번째 방: "좋아, 오랜만이야."

세 번째 방: "근데 누구누구도 불러야 하지 않을까?"


걸음이 느려졌다.

같은 패턴이었다. 누군가 만나자고 하면, 반드시

"다른 사람들도 부르자"는 말이 따라왔다.

두 명만 만나면 어색하니까, 세 명은 되어야 하니까,

저 사람도 빠뜨리면 안 되니까…

그 순간 마음이 무거워졌다. 만나자는 말보다

누구를 챙겨야 한다는 말이 먼저 나오는 자리…

그건 더 이상 편안한 만남이 아니었다.

화면 속 알림은 계속 반짝였지만

손끝은 쉽게 움직이지 않았다.

답장을 미루고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었다.

집까지 남은 십 분이 길게만 느껴졌다.


오랫동안 관계를 잘 유지해 오는 사람이었다.

생일을 빠뜨리지 않고, 연말연시엔 안부를 묻고,

답장은 늦어도 하루 안에 보내는 사람…

시간을 쪼개어 만나고, 누군가 힘들어하면

먼저 연락하는 사람, 그렇게 오래 이어진 관계들이 많았다. 중학교 동창, 대학 동기, 직장 선후배, 동네 모임, 취미 모임. 각각의 채팅방에서 조금씩 다른 말투로 반응했다.


그러나 이상한 피로가 어느 날 갑자기 밀려왔다.

단체 채팅방이 울릴수록 머릿속은 조용해졌고,

메시지를 읽고도 답장을 미루는 일이 많아졌다.

읽음 표시가 떠 있는 상태로 몇 시간씩 방치하곤 했다.


"요즘 왜 이렇게 말이 없어?"


누군가 직접 물어왔을 때, 대답할 말이 없었다.

그제야 알았다. 지쳐 있다는 사실을…

너무 많은 관계를 품고 있으면 자기 자신이 아닌 상태로 살아가는 순간이 온다. 각자의 말투에 맞춰 반응하고, 누구도 서운하지 않게 분위기를 맞추며, 어떤 날은 "내가 여기 왜 있지"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특히 여러 사람이 모인 자리에서 그랬다.

A는 유머러스한 이야기를 좋아했고,

B는 진지한 대화를 원했다.

C는 최근 근황을 자세히 묻고 싶어 했고,

D는 과거 추억만 이야기하려 했다.

모든 사람의 기대에 맞춰 반응하다 보면,

정작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은 사라졌다.

환한 웃음 뒤에서 감정은 점점 뒤로 밀렸다.

상대는 전혀 나쁘지 않았는데, 그 안의 존재는 점점

작아졌다. 허공에 떠 있는 사람처럼 흐려졌다.


어떤 자리에서는 두 시간을 함께 있어도 한 마디도 제대로 하지 못한 적이 있었다. 다른 사람들의 대화를 듣고 웃고 고개를 끄덕이기만 했다.

그날은 여섯 명이 모인 자리였다. 대학 동기들과의 만남이었는데, 모두 다른 회사에서 다른 일을 하고 있었다. 각자 자신의 근황을 이야기할 때는 집중해서 들었지만, 막상 자신의 차례가 오면 별다른 이야기가 없었다.


"너는 어떻게 지내?"

"그냥... 비슷하게. 일하고, 집 가고."

"요즘 재밌는 일 없어?"

"음... 딱히."


그런 대화가 이어졌다. 정말로 할 말이 없는 건 아니었다. 요즘 읽고 있는 책, 새로 다니기 시작한 요가 수업, 주말마다 가는 카페, 혼자 본 영화들. 그런 이야기들은 많았다.

하지만 그 자리에서는 그런 것들이 대화거리가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너무 소소하고 별것 아닌 것 같아서.


집에 돌아와서야 깨달았다. 오늘 나는 거기에 없었다고.

하루는 용기를 내어 한 채팅방에서 나왔다.


"요즘 조금 혼자 있고 싶어."


짧은 말을 남기고 방을 나왔는데, 아무도 반응하지 않았다. 하트 이모지 하나, "알겠어"라는

답장 하나 없이 그대로 조용해졌다.

그 침묵이 서운하지 않았다. 오히려 시원했다.

없어도 잘 돌아가는 공간에서 억지로 웃고 있던 얼굴이

떠올랐다. 아마 필요했던 존재가 아니라,

그저 불편하지 않은 사람이었는지도 모른다.


며칠 후 다른 채팅방에서도 나왔다. 이번엔 말없이.

한 달쯤 지나서 우연히 마주친 그 모임의 한 사람이 물었다.

"요즘 어떻게 지내? 채팅방에서 안 보이더라."


"아, 요즘 좀 바빠서."

"그래? 다음에 만날 때 연락할게."


그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다음에 만날 일이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굳이 말하지 않았다.

관계가 많을수록 외로움은 깊어졌다.

항상 누군가와 연결되어 있었지만 정작 마음을

나눌 이는 없었다. 표면적인 대화만 오갔고,

진짜 속마음은 점점 깊숙이 숨겨졌다.

혼자 있는 시간이 부족한 게 아니라,

진짜 함께 있는 시간이 사라져 있었다.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는 사람, 감정의 결을

함께 느껴주는 사람. 그런 이는 많지 않았다.


대부분의 만남은 근황 공유로 시작해서

"다음에 또 보자"는 인사로 끝났다.

그 사이에 진짜 이야기가 오가는 경우는 드물었다.


"요즘 어떻게 지내?"

"그냥 비슷하게. 너는?"

"나도 그냥."


이런 대화가 반복되는 자리에서는 침묵이 더 편했다.

어떤 날은 만나기 전부터 피곤했다.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하고, 어떤 이야기를 해야 할지

미리 계산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지하철에서 만날 장소로 가면서도 머릿속으로

대화를 연습했다. "요즘 어떻게 지내?"라고

물어보면 뭐라고 대답할지, 상대방이

힘든 이야기를 하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어색한 침묵이 흐르면 어떤 화제로 분위기를 바꿀지.


자연스러운 만남이 아니라 연기에 가까웠다.

그러면서도 왜 이런 만남을 계속하는지 스스로에게 묻지 않았다.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는 생각, 사람들과 어울려 지내야 한다는 막연한 의무감이 있었다. 혼자 있으면 외로울 거라는, 사람들과 멀어지면 뒤처질 거라는 두려움도 있었다.


이제는 연락이 뜸한 친구가 많다.

예전 같으면 먼저 연락했겠지만 지금은 그러지 않는다.

상대방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서로 부담을 주지 않으려는

마음이 자연스럽게 거리를 만들었다.

그렇다고 섭섭한 마음은 없다. 오히려 편안했다.

억지로 만나지 않는 관계가 때로는

더 진실에 가깝다는 걸 알았다.


모든 관계를 유지하지 않는다고 해서 무심한 사람이

되는 건 아니다. 모든 자리에 있지 않는다고 해서

소외된 인생을 사는 것도 아니다.

어떤 관계는 놓아야만 자기 자신에게 돌아올 수 있었다.

진짜 그리운 사람은 따로 있었다. 시간이 흘러도 만나면

어색하지 않은 사람, 말하지 않아도 알아주는 사람.

그런 이들과는 자주 만나지 않아도 관계가 흔들리지 않았다.


저녁 공기를 마시며 걸었다.

도시의 불빛은 여전히 환했고, 골목 어귀마다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카페 창가에 앉은 사람들, 함께 걷는 연인들, 아이의 손을 잡고 천천히 움직이는 가족들.


사람들 속에 있으면서도 혼자라는 감각은 지워지지

않았다. 그러나 그 고독이 두렵지 않았다.

한 걸음 물러선 자리에서야 자신이 또렷하게

보였기 때문이다.

누구와 함께 있을 때 편안한지,

어떤 대화에서 살아있다고 느끼는지,

어떤 순간에 웃음이 저절로 나오는지.

그런 것들이 조금씩 선명해졌다.

이제는 사람을 줄이려 하지 않는다.

대신 자신을 줄이지 않으려 애쓴다.

사람이 많든 적든, 그 안에서 온전히 존재할 수 있는가.

그게 지금의 기준이 되었다.

답장을 늦게 보내도, 모든 모임에 참석하지 않아도,

먼저 연락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죄책감이 있었다.


"나 때문에 분위기가 어색해지는 건 아닐까",

"내가 없어서 서운해하는 사람이 있을까" 하는 걱정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알게 되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생각보다 남에게

관심이 없다는 것을. 누가 없어도,

누가 답장을 늦게 해도, 그들의 일상은

별다른 변화 없이 흘러간다는 것을….

그것이 서운한 깨달음이 아니라 해방감을 주었다.

모든 사람을 만족시켜야 한다는 부담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관계에도 계절이 있다는 걸 받아들였다.

가까워지기도 하고 멀어지기도 하며, 때로는

잠시 멈춰 있기도 한다.

봄에 가까워진 사람과 여름에는 거리감이

생기기도 하고, 가을에 만난 인연이 겨울에

더 깊어지기도 했다. 그 모든 것이 자연스러운 흐름이었다.

억지로 붙잡거나 억지로 밀어내려 하지 않아도 되었다.

관계가 많아 피로했던 날들 속에서 더 이상

누구의 리스트 속 번호가 아니었다.

다만 삶의 중심으로 조금씩 돌아오고 있었다.

고요한 방 안에서 느리게 흘러나온 한마디.


지금은, 다른 누구도 아닌

자신이 자기 곁에 있어야 할 시간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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