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사람'이라는 감옥에서

- 다 필요 없고 도망가고 싶어 8화 -

by 마르코 루시

지하철에서 할머니에게 자리를 양보했다.


그런데 일어서는 순간 무릎이 아팠다.

어제 계단에서 삐끗했던 곳이었다.

다리를 조금 절뚝거리게 되었는데,

하지만 다시 앉을 수는 없었다.

사람들이 보고 있었으니까.


할머니는 고맙다며 연신 고개를 숙이셨다.

미안해하는 표정까지 지으셨다.

그 모습을 보니 괜히 더 미안해졌다.

진짜 도움이 되고 싶어서 양보한 게 맞나 싶었다.


그 순간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정말 친절해서 일어선 걸까,

아니면 좋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어서였을까.

몇 정거장을 아픈 다리로 서서 가면서 생각했다.

언제부터 이렇게 가면을 쓰고 살았을까.

주변 사람들은 스마트폰을 보고 있었다.

아무도 다리가 아프다는 걸 눈치채지 못했다.

할머니도 창밖을 바라보고 계셨다.

그제야 깨달았다.

사실 아무도 그렇게 자세히 보고 있지 않았다는 것을.


그런데 왜 늘 누군가가 지켜보고 있다고 생각했을까.

왜 늘 평가받고 있다고 느꼈을까.

어릴 때부터 들어온 말이 있었다.

"착하다", "배려심이 좋다", "예의 바르다".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기분이 좋았다.

인정받는다는 느낌이었다.

존재 가치를 확인받는 기분이었다.


그래서 더 착해지려고 노력했다.

더 배려하려고 애썼다.

더 예의 바르게 행동하려고 했다.

더 많은 칭찬을 받고 싶었다.

언제부턴가 그것이 의무가 되어버렸다.

착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다.

배려하지 않으면 나쁜 사람 같았다.

무례하게 보이면 안 될 것 같았다.


초등학교 때가 떠올랐다.

반 아이들이 놀리는 친구가 있었는데,

그 아이를 도와주고 싶었다.

하지만 따돌림당할까 봐 무서웠다.

결국 모른 척했다.

그날 밤 엄마에게 말했다.

"나는 착한 아이 맞죠?"

엄마는 웃으며 대답했다.

"물론이야, 네가 세상에서 제일 착하지."

하지만 마음은 편하지 않았다.

진짜 착한 아이라면 그 친구를 도와줬어야 했는데.

착한 아이라는 말을 들으려고

진짜 착한 행동은 하지 못했다.


회사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늘 웃는 얼굴로 다녔다.

기분이 나빠도 표정에 드러내지 않았다.

화가 나도 목소리를 높이지 않았다.

스트레스받아도 내색하지 않았다.


어느 날, 회의 시간이었다.

아이디어를 다른 동료가 가로챘다.

명백히 먼저 제안한 것이었는데,

그는 마치 자기 생각인 양 발표했다.

순간 화가 치밀어 올랐다.

입이 때려고, 말하려고 망설이다

그만 바보 멍청이 같이 참아버렸다.

분위기를 나쁘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갈등을 일으키는 사람으로 보이기 싫었다.


회의가 끝난 후 화장실에서 혼자 있을 때,

거울 속 얼굴이 창백해 보였다.

멋쩍게 웃고 있었지만 눈은 웃지 않고 있었다.

동료들은 '성격 좋은 사람'이라고 불렀다.

"너는 정말 착해", "화내는 걸 본 적이 없어",

"항상 긍정적이야", "문제없는 행복한 사람"이라는 말을 자주 들었다.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뿌듯했다.

좋은 사람으로 인정받는다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부담스럽기도 했다.

그 이미지를 계속 유지해야 한다는 압박감.

한 번이라도 화를 내면 실망시킬 것 같은 두려움.

항상 완벽한 사람이어야 한다는 강박.

감정을 드러내면 안 된다는 금기.


점심시간에 동료가 물었다.

"너는 진짜 화날 일이 없어? 아니면 성인군자야?"

농담 반 진담 반이었지만,

그 말이 묘하게 마음에 걸렸다.

화날 일이 없는 게 아니었다.

화를 내면 안 될 것 같고 화내면 망칠 줄 알았던 것이다.

그리고 좋은 사람은 화를 내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친구들과의 관계에서도 그랬다.

항상 듣는 역할만 했다.

다른 사람의 고민은 진지하게 들어줬지만,

자신의 이야기는 잘하지 않았다.

한 친구가 "너는 항상 든든해 보여"라고 자주 말했다.

그와 다른 친구들은 문제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왜 그런진 몰라도 직감적으로 그런 이미지를 유지하고 싶었다.


누군가 힘들어하면 달려갔다. 새벽에 전화가 와도 받았다.

주말에 갑자기 만나자고 해도 나갔다. 개인적인 일정은 늘 뒤로 미뤘다.


좀처럼 힘들어도 먼저 말하지 않았다.

도움을 요청하는 것도 미안해했다.

괜찮은 척하는 게 습관이 되어 있었다.

한 번은 정말 힘든 일이 있었다.

가족 문제로 며칠째 잠을 못 잤다.

회사에서도 실수가 계속 났다.

친구에게라도 털어놓고 싶었다.

하지만 전화를 걸다가 수화기 너머 들리는 친구의 목소리.

그 친구도 요즘 바쁘다고 했다. 그래서 그냥 끊었다.

괜히 부담 주기 싫었다.

개인적인 문제로 다른 사람을 힘들게 하기 싫었다.


그렇게 살다 보니 어느새 지신은 사라져 있었다.

좋은 사람의 가면만 남아 있었다. 진짜 모습은 어디에도 없었다.

가장 힘들었던 건 진짜 감정을 늘 숨기는 일이었다.


화가 날 때도 웃어야 했다. 슬플 때도 괜찮은 척해야 했다.

지칠 때도 괜찮다고 말해야 했다. 짜증 날 때도 이해한다고 해야 했다.

그 모든 감정들은 어디로 갔을까. 속으로 삼키고 또 삼켰다.

가슴 깊은 곳에 차곡차곡 쌓여갔다. 언젠가는 터질 것 같았다.


때로는 정말 폭발할 것 같았다.

하지만 폭발하면 좋은 사람이 아니게 될 것 같아서

꾹꾹 감정을 눌러 담았다. 이를 악물고 참고 견뎠다.


그러던 어느 날 밤, 혼자 있을 때 갑자기 울음이 터져 나왔다.

이유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왜 우는지 스스로도 알 수 없었다.

그저 뭔가 억울하고 답답했다.


그러다 보니 진짜 감정이 뭔지도 모르겠게 됐다.

화가 나는 게 정상인지, 슬픈 게 당연한지,

지친 게 이상한 건지. 감정을 믿을 수 없게 됐다.


감정에도 좋고 나쁨이 있다고 생각했다.

화, 짜증, 시기, 질투는 나쁜 감정이고,

기쁨, 사랑, 배려, 이해는 좋은 감정이라고.

착한 사람은 나쁜 감정을 갖지 않는다고 믿고 싶었다.

그래서 나쁜 감정은 갖지 않으려고 애썼다..

시기심이 들면 자책했다. 화가 나면 이상한 줄 알았다.


친구가 승진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축하한다고 말하면서도 속으로는 부러웠다.

그런 마음이 너무 이상하게 느껴졌다.

좋은 사람이라면 순수하게 기뻐해야 하는 건데.

그날 밤에도 혼자 자책했다.

"나는 왜 이렇게 마음이 좁을까?"

"착한 사람은 이런 생각 안 할 텐데."

"나는 가식적인 사람인가?"

감정을 억누르는 것도 지쳤지만,

감정을 가진 자신을 미워하는 것도 지쳤다.


문득 생각이 들었다.

진짜 좋은 사람과 좋아 보이는 사람이 다른 건 아닐까.

좋아 보이는 사람은 언제나 완벽한 것 같았다.

절대 화내지 않고, 절대 실수하지 않고,

절대 이기적이지 않고, 절대 질투하지 않는 사람.

마치 감정이 없는 사람처럼.

인간다운 면이 없어 보였다. 살아있는 사람 같지 않았다.

그런 사람이 진짜일까. 로봇아 아닐까라고 생각했다.


화낼 때는 화를 내고, 슬플 때는 슬퍼하고,

힘들 때는 힘들다고 말하는. 부러울 때는 부럽다고 인정하는.

진짜 사람 그런 사람이 되는 것이 어려울까.

그렇게 되면 뭔가 다를 사람처럼 살 것 같았다.


하지만 그 감정들을 건전하게 표현하는.

상대방을 해치지 않는 방식으로 말하는.

감정에 솔직하면서도 타인을 배려하는.

감정을 숨기지 않으면서도 절제하는.

지금까지 좋은 사람이 되려고 했는데,

좋아 보이는 사람이 되려고 했던 건데

왠지 망쳐버릴 것만 같았다.


진짜 모습을 숨기고, 완벽한 가면을 쓰고,

남들이 원하는 모습을 연기하면서.

그게 좋은 사람이라고 착각하면서.

계속 그렇게, 하던 대로 하는 게 좋지 않을까.

텔레비전에서 본 연예인이 떠올랐다.

항상 밝고 긍정적인 모습만 보여주던 사람이었는데,

어느 날 우울증으로 힘들어하다 자살했다는 기사가 났다.

사람들은 충격받았다며 댓글을 달았다.

"그렇게 밝던 사람이 왜?"


그때 문득 생각했다.

밝은 모습만 보여주는 것과 정말 밝은 것은 다르구나.

완벽한 모습만 보여주는 것과 완벽한 것은 다르구나.

그런 사람이었나 보다.

착한 모습만 보여주려고 했지,

진짜 착한 사람이 되려고 하지는 않았던.


지하철에서 내리면서 생각했다.

오늘 할머니에게 자리를 양보한 것도

진짜 친절이었을까.

다리가 아파서 앉고 싶었지만,

할머니가 더 필요해 보여서 양보했다면

그건 진짜 친절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보고 있어서,

좋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어서 양보했다면

그건 진짜가 아닐 것이다,


솔직히 구분이 안 됐다. 두 마음이 섞여 있었을 것이다.

완전히 순수한 마음도, 완전히 가식적인 마음도 아니었을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완벽하지 않아도 되는 것 같았다.

인간이니까 여러 마음이 섞여 있을 수 있었다.

중요한 건 진짜 어떤 마음인지

스스로에게 솔직해지는 것 같았다.

좋은 사람으로 보이려는 마음도 있고,

진짜로 도움 주고 싶은 마음도 있다는 것을

둘 다 인정하는 것. 그 복잡함을 받아들이는 것.


그래야 진짜 괜찮은 사람에 가까워질 수 있을 것 같았다.

가면을 벗는다고 해서 나쁜 사람이 되는 건 아니었다.

오히려 진짜가 되는 것이었다. 완벽하지 않지만 자신다운 사람.


집까지 걸어가는 길에 조용히 생각했다.

언젠가는 조금씩 달라질 수 있을까.

화날 때는 화난다고 말할 수 있을까.

힘들 때는 힘들다고 털어놓을 수 있을까.

물론 무작정 감정을 드러내는 건 아니었다.

상대방을 배려하는 방식으로,

건전한 방법으로 표현하는 것이었다.

조용히, 자그마하게 마음속으로 속삭였다.

이제 조금씩, 진짜 자신을 보여줘도 괜찮을 것 같다고.


늘 좋은 사람,

착한 사람 콤플렉스에 갇혀서 살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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