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광복 80주년 조용필 리사이틀이 증명한 시간의 지속성 -
2017년 영화 '택시운전사'는 1980년 5월의 아침, 금화터널을 빠져나온 택시 안에서 흘러나오는 '단발머리'로 시작된다. 뿅뿅대는 아날로그 신시사이저 반주를 따라 송강호가 흥얼거리던 그 순간, 화면 밖 관객들은 이미 알고 있었다. 이 노래가 1980년대를 관통하는 사운드트랙이 되었다는 것을. 2025년 박찬욱의 '어쩔 수가 없다'는 살인 장면에 '고추잠자리'의 몽환적 프로그레시브 록을 얹었고, 박찬욱은 "옛 한국 음악을 알리고 싶었다"라고 말했지만 사실 그가 선택한 것은 낡지 않는 음악이었다. 시대를 건너뛰며 여전히 숨 쉬는 소리. 그 소리의 기원은 1963년 여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화성의 한 소년이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벤처스의 Pipeline을 듣고 이런 말을 남긴다. "하나님에게 손가락이 있다면 이런 모습이었을 것." 손가락이 기타 줄을 타고 흐를 때 생성되는 진동, 그 미세한 떨림이 한 인간, 조용필의 삶을 완전히 다른 좌표로 이동시킨 순간이었다. 소리는 언제나 예언이었고, 육체는 그 예언을 실현하는 도구였다.
2025년 10월 6일, 광복 80주년을 기념해 방송된 KBS '이 순간을 영원히'는 1997년 '빅쇼' 이후 28년 만의 단독 무대였다. 전석 3분 만에 매진되고 1만 8천 관객이 운집한 고척돔에서, 75세의 조용필은 3시간 가까이 30곡을 불렀다. 15.7%의 시청률, 최고 18.2%까지 치솟은 순간의 열기는 세대를 초월한 공명이었다. 무대에 선 그가 말했다. "제 소리가 앞으로 안 좋아질 거 아니냐. 빨리 해야겠다." 일흔다섯의 성대가 여전히 쩌렁쩌렁한 이유는, 1968년 파주 미 8군 Blue Room 클럽에서 시작된 훈련이 단 한 번도 멈추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국전쟁 이후 264개 클럽에서 연간 120만 달러의 외화를 벌어들이던 미 8군 무대는, 장교클럽과 사병클럽, 백인과 흑인의 레퍼토리를 오가며 3개월마다 재심사를 받아야 하는 생존의 현장이었다. 득음을 위해 각혈했다는 전설은 부정되었지만, 그보다 더 지독한 진실이 있다. 매일의 반복, 끝없는 자기 갱신, 무대를 향한 헌신. "무대에서 죽는 것, 그게 로망"이라는 고백은 낭만이 아니라 1968년부터 지금까지 이어진 직업적 엄숙함의 다른 이름이다.
1972년 김해일이 '돌아와요 충무항에'를 녹음했으나 크리스마스 대연각 화재로 세상을 떠났고, 작곡가 황선우는 조용필에게 곡을 주며 제목을 '돌아와요 부산항에'로 바꾸었다. 1975년 재일교포 모국 방문과 맞물려 1976년 빠른 템포로 재편곡된 이 곡은, "그리운 내 님이여"를 "그리운 내 형제여"로 바꾸며 시대의 요청에 응답했다. 방송 한 번 타지 않고 음악다방 입소문만으로 밀리언셀러가 되었고, 일본 기네스북에 '가장 많이 리메이크된 외국 곡'으로 등재되었다. 그러나 영광은 오래가지 않았다. 1977년 유신정권의 대마초 단속으로 조용필은 남산 중앙정보부로 끌려가 고문을 당했다. 미 8군 클럽에서 흔했던 대마초가 한국 토양에서는 범죄로 전환되는 지점이었다. 60년대 말부터 만들어지던 한국적 록의 싹이 잘렸다. 1979년 10월 26일 이후에야 해금되어 '창밖의 여자'로 진정한 부활을 이루었다. 손가락은 신의 형상일 수도, 범죄자의 지문일 수도 있다. 한 시대의 소리는 다음 시대에 금지의 대상이 되고, 금지된 것은 다시 시간이 지나 신화로 복원된다.
조용필이라는 현상은 완성이 아니라 지속에 관한 이야기다. 고척돔을 가득 채운 떼창, "돌아와요 부산항에"와 "허공"을 함께 부르며 눈물 흘린 중년의 얼굴들, 응원봉을 힘차게 흔들며 응원하는 후배들이 목격한 것은 단순한 명창의 건재함이 아니라, 시간 속에서도 빛을 잃지 않는 명품 목소리의 진정성이었다. 1963년 라디오에서 들었던 Pipeline의 기타 선율은, 수십 년을 거쳐 미 8군 무대의 손가락 훈련으로, 1976년 '돌아와요 부산항에'의 혁신적 편곡으로, 1980년 '단발머리'의 신시사이저 실험으로 진화했다. 소리는 국경과 체제를 넘나들며 흐르지만, 육체는 그 흐름의 대가를 온전히 지불해야 한다. 광복 80주년이라는 역사적 순간에 조용필이 부른 것은 과거가 아니라 현재진행형의 열정이었고, 관객들이 들은 것은 추억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울려 퍼지는 생생한 울림이었다. 하나님의 손가락이 있다면, 그것은 아마도 고문의 상처와 무대의 영광을 동시에 아는 손가락일 것이다. 금지되었다가 부활하고, 사라졌다가 귀환하는, 한국 대중음악 70년 사 전체를 관통하는 떨림의 형상. 조용필은 여전히 그 무대 위에 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