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단을 천천히 오르는 시간

- 다 필요 없고 도망가고 싶어 13화 -

by 마르코 루시

5년 동안 매일 눌렀던 버튼.

오늘은, 손이 그 앞에서 멈췄다.


엘리베이터 대신 계단을 선택한다는 건,

이제 다르게 살기로 결심했다는 뜻이었다.

오른쪽에 비상구 표시가 보였다.

계단.

여섯 층까지 걸어 올라가는 건 어떨까.


예전 같으면 상상도 못 했을 일이었다.

시간이 아까워서, 힘들어서, 땀이 날까 봐.

하지만 지금은 서두를 이유가 없었다.

무거운 서류 가방도, 회의 시작 시간도 없었다.


계단 쪽으로 걸어갔다.

비상구 문의 손잡이가 차가웠다.

금속 재질이 손바닥에 닿는 순간,

5년 동안 한 번도 열어본 적 없는 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매일 이 건물에 출근했으면서도.


문을 밀고 들어서는 순간, 공기가 달랐다.

복도의 따뜻하고 답답한 공기가 아니라

차갑고 고요한 공기가 얼굴을 스쳤다.


계단참의 형광등이 차가운 백색광을 내뿜고 있었다.

복도의 부드러운 조명과는 완전히 다른 빛이었다.

날것 그대로의 공간이었다.

꾸며지지 않은,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첫 계단에 발을 올렸다.

콘크리트 바닥에 발소리가 울렸다.

딱, 딱.

엘리베이터 안에서는 절대 들을 수 없는 소리였다.

스스로 움직이고 있다는 증거 같았다.


난간을 잡았다.

차가운 금속 파이프가 손에 감겼다.

천천히 올라갔다.

서두르지 않았다.


한 계단, 또 한 계단.

각 계단의 높이가 발바닥으로 느껴졌다.

약 20센티미터.

똑같은 높이가 규칙적으로 반복됐다.

그 반복이 묘하게 안정적이었다.


2층 표지판을 지나쳤다.

숨이 조금씩 빨라지기 시작했다.

심장이 뛰는 게 느껴졌다.

살아있다는 감각.


엘리베이터를 탈 때는 느끼지 못했던 것들이었다.

버튼을 누르면 그저 올라갔다.

몸은 가만히 있고, 숫자만 바뀌었다.

1층, 2층, 3층, 4층.

스스로 오르는 게 아니라 기계가 끌어올렸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자신의 발로 오르고 있었다.

자신의 힘으로 한 층씩 높아지고 있었다.

땀이 이마에 맺혔다.

그것조차 나쁘지 않았다.


3층을 지나며 문득 떠올랐다.


예전 엘리베이터,

그건 단순한 이동수단이 아니었다.

매일 아침 출근길, 그 좁은 공간은

하루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였다.


특히 월요일 아침의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면 이미 다섯 명쯤 되는 사람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었다.

모두 같은 표정이었다.

피곤하고, 무표정하고, 어딘가 체념한 듯한.


좁은 공간에 사람들이 더 들어찼다.

어깨가 맞닿고, 가방이 부딪쳤다.

누군가의 향수 냄새가 코를 찔렀다.

인공적이고 강렬한 냄새.


모두 핸드폰을 보거나 천장을 응시했다.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숨소리조차 작게 내려고 애썼다.


스마트폰 화면의 청백색 빛이

사람들의 얼굴을 차갑게 물들였다.

뉴스, 메신저, 이메일.

이미 업무 모드로 전환하고 있었다.


중요한 프레젠테이션이 있던 날 아침이 떠올랐다.

엘리베이터에 올라타는 순간부터 심장이 빨리 뛰었다.

층수 표시등이 올라갈 때마다 긴장이 높아졌다.

3층, 4층, 5층, 6층.

마치 카운트다운 같았다.

곧 시작될 하루에 대한.


그 안에서는 투명인간이 되어야 했다.

존재를 지우고, 공간을 최소화하고,

빨리 목적지에 도착하기만을 바랐다.


같은 층에 내리는 사람들과의 무언의 경쟁도 있었다.

문이 열리면 누가 먼저 나갈까.

누가 더 빨리 사무실에 도착할까.

그런 쓸데없는 경쟁.


엘리베이터 안 침묵은 무거웠다.

모두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빨리 끝났으면.'

'오늘도 버텨야지.'

'이번 주도 길겠네.'


그 침묵 속에서 자신도 점점 작아졌다.

말할 권리도, 숨 쉴 권리도,

존재할 권리도 없는 것처럼.


30초.

1층에서 6층까지 걸리는 시간.

하지만 그 30초는 하루 중 가장 답답한 시간이었다.


4층을 지났다.

숨이 가빠졌다.

다리에 힘이 들어갔다.

허벅지 근육이 조금씩 떨렸다.

하지만 멈추고 싶지 않았다.


계단을 오르는 것은 느렸다.

엘리베이터보다 훨씬 느렸다.

하지만 그 느림이 좋았다.


속도는 빼앗는 것이 많았다.

빠르게 움직일수록 보이지 않는 것들이 많아졌다.

빠르게 살수록 느끼지 못하는 것들이 많아졌다.


회사에서 요구했던 것도 속도였다.

빠르게 처리하고, 빠르게 결정하고,

빠르게 다음으로 넘어가야 했다.


점심시간도 그랬다.

식당까지 빠르게 걸어가고,

빠르게 주문하고, 15분 안에 먹고,

빠르게 돌아와야 했다.

그렇게 아낀 시간으로 뭘 했을까.

더 많은 일을 했을 뿐이었다.


5층 표지판 앞에서 잠시 멈춰 섰다.

창문이 하나 있었다.

손등으로 이마의 땀을 닦았다.

등에도 땀이 흘러내렸다.

가쁜 숨을 고르며 창밖을 내다봤다.


도시의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건물들, 거리, 지나가는 차들.

멀리 산의 능선이 희미하게 보였다.

건물 옥상의 물탱크가 햇빛에 반짝였다.

지상의 사람들이 개미처럼 작게 움직이고 있었다.


엘리베이터 안에서는 절대 볼 수 없는 풍경이었다.

엘리베이터는 밀폐된 상자였다.

바깥세상과 단절된 채로 위아래로만 움직였다.


하지만 계단에는 창문이 있었다.

한 층 올라갈 때마다 세상이 조금씩 다르게 보였다.

1층에서는 보이지 않던 옥상이 보이고,

3층에서는 보이지 않던 산이 보였다.


시야가 넓어졌고, 각도가 바뀌었다.

높이가 주는 새로운 관점이었다.


심장박동을 세어봤다.

빠르게 뛰고 있었다.

하지만 불안해서가 아니라

몸이 움직이고 있어서였다.


몸이 살아있다는 느낌.

이 느낌을 얼마나 오래 잊고 살았을까.


마지막 계단을 올랐다.

6층.

도착했다.

문을 밀고 나갔다.

복도의 공기가 계단과는 달랐다.

따뜻하고 조용했다.


복도를 걸어가는데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안에서 네 명의 사람들이 나왔다.

모두 무표정한 얼굴이었다.

깔끔한 옷차림, 정돈된 머리, 화장한 얼굴.


그들이 잠깐 쳐다 보았다.

붉어진 얼굴, 이마의 땀, 가쁜 숨.

이상한 사람을 보는 듯한 시선이었다.

왜 계단을 올라왔을까, 하는.


그들은 빠르게 지나갔다.

각자의 목적지를 향해.

효율적으로, 신속하게.


그 자리에 잠시 서 있었다.


예전엔 저랬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목적지까지 최단거리로 걸어갔다.

시간을 아끼기 위해.

효율을 위해.


하지만 그렇게 아낀 시간으로 무엇을 했나.

더 많은 일을 했을 뿐이었다.

더 바쁘게 살았을 뿐이었다.


그리고 결국 무너졌다.

30초 안에 6층에 도착하는 것.

5분 동안 천천히 올라가는 것.


시간만 놓고 보면 30초가 효율적이다.

하지만 경험으로 보면 5분이 가치 있다.


30초 동안 나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다.

답답함과 불안함만 있었다.

5분 동안 나는 살아있음을 느꼈다.

심장이 뛰고, 땀이 나고, 숨이 차는 것을.


도착이 중요한가, 과정이 중요한가.


회사는 항상 도착만 중요하게 여겼다.

결과, 성과, 목표 달성.

과정은 중요하지 않았다.

어떻게 하든 결과만 내면 됐다.


그래서 모두 엘리베이터를 탔다.

빠르게 도착하기 위해.

과정 따윈 중요하지 않으니까.


하지만 인생은 도착이 아니라 과정이었다.

어디에 도착하느냐보다

어떻게 가느냐가 더 중요했다.


어디로 가고 있었나.

그 질문조차 하지 못한 채

그저 빠르게 움직이기만 했다.


뒤돌아보니 방금 올라온 계단이 보였다.

여섯 층.

엘리베이터로는 30초면 올라오는 높이.

계단으로는 5분 정도 걸렸다.


하지만 그 5분이 더 가치 있었다.

30초 동안 숨을 죽이는 것보다

5분 동안 숨을 쉬는 것이 나았다.


작은 선택이었지만 의미가 컸다.

엘리베이터 대신 계단.

빠름 대신 느림.

효율 대신 경험.

도착 대신 과정.


이제는 내 속도로 살고 싶었다.

남들의 속도가 아니라.

사회가 요구하는 속도가 아니라.


계단을 오르는 것처럼.

천천히, 한 걸음씩.

때로는 멈춰 서서 창밖을 바라보기도 하고.

숨을 고르기도 하면서.


내일도 계단을 오를 것이다.

매일 같은 속도일 필요는 없다.

어떤 날은 빠르게, 어떤 날은 느리게.

어떤 날은 3층에서 멈춰 쉬어도 괜찮다.

그게 자신만의 속도였다.


엘리베이터를 타는 사람들을 부러워하지 않기로 했다.

그들은 그들의 방식으로 살고 있었고,

각자 자신만의 방식으로 살 것이었다.


창밖을 다시 봤다.

햇살이 건물 사이로 비스듬히 들어왔다.

먼지 입자들이 빛 속에서 천천히 떠다녔다.


모든 것이 자기만의 속도로 움직이고 있었다.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그저 자연스러운 속도로.


복도를 천천히 걸었다.

서두르지 않았다.

발걸음 하나하나가 선명했다.


계단을 내려갈 때도 천천히 내려가야겠다고 생각했다.

한 계단, 한 계단.

내 속도로.


내일은 몇 층에서 멈춰 설까.

어떤 창문을 통해 세상을 볼까.

한 계단, 한 계단.

천천히, 내 속도로.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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