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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민규 Jun 05. 2021

각도

피곤한 하루였다. 퇴근하고 아무 생각 없이 가던 헬스장, 오늘은 쉬고 싶었다. 그저 방에 가서  먹고 씻고 누워있다가 바로 잠들고 싶었다. 헬스장은   있지만, 오늘  해야 하는  있었다. 요즘 듣고 있는 작사 수업 과제다. 이번  과제는 가사가 좋았던 노래를 필사하고 분석해보는 것이다.

너무 피곤해서 그냥 쉬고 싶었는데 과제 때문에 그러지 못하니 짜증이 났다. 평일에는 과제를 하느라 퇴근 후에도 책상 앞에 앉아야 하고, 일요일 오후엔 어디 나가지 못하고 온라인으로 수업을 들어야 한다니. 수업을 듣기로 결정했던 내가 원망스러웠다.

모바일 뱅킹으로 수업료를 입금하던 순간이 떠올랐다. 사회 초년생인 내 월급에 비해 적지 않은 액수였다. 최종적으로 ‘이체’ 버튼을 누르기 전에 몇 번 망설였다. 이 수업을 들으면 포기해야 하는 다른 것들이 떠올랐다. 그래도 듣고 싶었다. 작사는 내가 도전해보고 싶었던 영역이고 지금 아니면 못 할 것 같았다. 이제 막 수습을 뗀 신입이라 직장에서 느끼는 일의 부담이 크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가장 큰 이유는 따로 있었다. 내가 살아오며 깨달은 것 중 하나는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나중에도 할 수 있다고 믿지 말 것’이기 때문이었다. 할 수 있었던 일을 미루고 나면 생각지 못한 변수가 찾아와 기회를 싹 주워 담아갔던 적이 여러 번 있었다. 후회스러웠던 순간을 떠올리며 ‘이체’ 버튼을 누르던 내 모습이 선명해졌다.

‘오늘 할 수 있는 일’을 ‘내일은 못 할 수도 있는 일’로 바꿔 생각하자 묘한 조급함이 카페인처럼 나를 각성시켰다. 작사 과제는 물론 운동도 계획대로 하기로 했다. 내일은 너무너무너무 하기 싫을 수도 있으니까. 내일 급한 일이 생겨 못할 수도 있으니까.

오늘은 가슴 운동을 했다. 벤치에 누워 덤벨을 양손에 들고 위로 밀어 올리고 있었다. 항상 이 시간대에 운동하시는 트레이너분은 옆에서 어깨 운동을 하고 있었다. 둘 다 쉬는 타이밍이 겹칠 때가 있었는데, 트레이너분이 손목 각도를 조금 바꿔보라고 하셨다. 벤치에 누워서 시범을 보여주시며 지금 내 손목 각도도 괜찮지만, 가슴에만 자극이 오는 게 아니라 팔도 같이 자극이 와서 효율적이지 않을 수 있다고 하셨다. 그래서 이렇게 살짝 각도를 틀어서 해보라고 하셨다.

알려주신 대로 손목 각도를 틀어서 덤벨을 밀어 올렸다. 확실히 팔의 개입이 줄고 가슴의 개입이 늘었다. 샘, 진짜 이게 더 낫네요. 감사 인사를 드리고 운동을 계속했다. 오늘 운동 오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스케줄을 바라보는 시선의 각도와 덤벨을 쥔 손목의 각도에 대해 생각했다. 각도를 살짝 바꿨을 뿐인데 결과가 이렇게 달라지는구나, 생각했다. 덤벨을 양손에 꽉 쥐고, 오늘 생각해냈던 핑계들을 중력의 반대 방향으로 밀어 올렸다. 가슴에 새로운 자극이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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