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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민규 Mar 16. 2021

회사 벗기

지하철을 타고 퇴근한다. 회사에서 나와 청담역까지 7분 정도 걷는다. 청담역에서 상봉역까지 20분 정도 지하철을 탄다. 지하철 문이 열린다. 잠시 고봉밥이었던 우리가 문이 닫히기 전 가까스로 눌러 담아진다. 빽빽한 사람들 틈에서 가방을 품에 안고 가까스로 서 있는 나. 지하철이 출발한다. 


청담에서 뚝섬유원지로 향할 때 창밖으로 한강이 펼쳐진다. 하루 중 내가 가장 멀리 보는 순간이다. 물결이 일렁이는 모습을 보며 잠시 멍을 때린다. 시선을 멀리 던지면 마음이 이완된다. 


한강이 지하철 벽으로 지워진다. 곧 뚝섬역 도착. 지금부터 상봉까지는 창문을 잊어버린다. 이어폰을 꽂고 팟캐스트를 듣는다. 책읽아웃을 듣거나 스몰포켓을 듣는다. 두 방송은 모두 책과 창작자에 관한 방송이다. 회사에서 잊고 있었던 창작의 세계를 이 방송을 들으며 되찾는다. 업계 안에서만 생활하던 내가 여집합의 이야기를 만끽한다. 


그러다 보면 상봉역이다. 역에서 10분 걸어가면 내 방이다. 가방을 놓고 외투를 벗고 손을 씻는다. 간단히 저녁을 먹고 샤워를 한다. 잠옷을 입고 머리를 말린다. 모든 불을 끄고 좋아하는 조명 하나만 켠다. 책상에 앉아 노트북을 켜고 글을 쓰기 시작한다.




이것은 나의 퇴근 과정이다. 남들에게 퇴근 과정을 이야기할 땐 ‘회사에서 역까지 몇 분+지하철 타는 시간+역에서 내려 방까지 몇 분= ‘으로 이야기한다. 그때의 퇴근은 내가 회사로부터 물리적으로 멀어지는 과정을 의미한다. 


하나 물리적 퇴근이 완벽한 퇴근이 되지 않을 때가 있다. 회사에서 받은 스트레스나, 회사에서 가질 수밖에 없는 경직된 사고방식을 집까지 가지고 올 때가 그렇다. 그래서 심리적 퇴근이 중요하다. 지하철에서 한강을 바라보며 잠시 멍을 때리고, 팟캐스트를 들으며 창작자의 세계를 느끼고, 샤워를 하며 기분을 전환하고, 조명 하나만 켜서 내가 좋아하는 분위기를 만들고, 책상에 앉아 노트북으로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쓰기 시작할 때 비로소 나의 퇴근은 완성된다.


집으로 돌아와 편한 옷을 입고 있어도 회사에서 받은 좋지 않은 기운을 간직하고 있다면, 나는 아직 회사를 입고 있는 것이다. 나의 워라밸은 회사를 벗는 과정에서 실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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