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작가가 되기 위한 준비였는지도 모른다.
지금도 정확히 기억하고 있는 날짜.
2025년 1월 15일 수요일 A형 독감 진단을 받았다.
전날 급격히 컨디션이 악화되면서 밤새 아파서 잠을 못 자고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아들 알바 출근시키고 곧장 내과에 갔다.
병원을 잘 안 가는 타입이지만 수업을 해야 하니
더 아파서 수업을 못하게 되면 그게 더 골치 아파서 더 심각해지기 전에 병원에 갔다.
열이 38도가 넘었다.
밤새 잠을 못 잤다고 했더니 그럴만하다고 의사 선생님이 말한다.
건강체질인 나는 이럴 때면 나이 탓을 한다.
코로나랑 독감검사를 해보자고 하신다.
두둥~ 코로나도 아닌 A형 독감이란다.
사실 나는 집에서 영어공부방을 하고 있고,
회원이 많지도 않은데 면역이 떨어져 있었는지
그 틈을 타고 바이러스가 들어왔나 보다.
타미플루 5일 치를 처방받았다.
하루도 빼먹지 말고 약을 잘 챙겨 먹어야 낫는다고 하신다.
약을 먹고 열을 내렸지만, 3일 동안 밤에 제대로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알 수 없는 불안함과 착각인지 모르겠지만 몸에 경련이 있었던 거 같기도 하고
어찔할 바를 몰라 새벽이면 거실을 막 돌아다녔다.
나중에 보니 타미플루 후유증이었던 모양이다.
게다가 3일째 되던 날부터는 부정출혈도 있었다.
많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무서웠다.
전에는 한 번도 없었던 일이니 말이다.
독감전에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나?’ 해결되지도 않는 반복되는 질문만 하다가
막상 아프기 시작하니 그런 고민은 온데간데없고,
'아프지만 않게 해 주세요' 하고 있는 내가 있었다. 사람이란 참 간사하다.
5일을 수업할 때만 겨우 일어나 앉아서 일하고 나머지는 몸져누워 있었다.
그렇게 5일이 지나고 일요일 저녁 80% 회복이 된 느낌이었다.
그렇게 회복되는가 했다.
월요일 가뿐한 몸과 마음으로 수업을 하고 5일 동안 아들 밥도 제대로 못 챙겨주고 해서
수업이 끝나고 장을 보러 마트에 갔다가 몸이 급격히 다운되는 것이었다.
집에 가서 눕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그리고 나는 독감 후유증을 끔찍이도 앓았다.
속이 메슥거려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상태는 점점 더 안 좋아져서 머리까지 아파온다.
어찌할 바를 몰랐다. 끙끙대다 잠들고 깨어나면 끙끙대고
수요일 도저히 참아지지가 않아서 내과가 갔다. 수액이라도 맞을까 하고 말이다.
헌데 선생님이 수액 맞으라는 말은 않고, 독감 후유증인 거 같다면서 약을 처방해 주셨다.
그리고 나가는 나에게 한마디 한다.
"위내시경한 지 얼마나 됐어요?"
"음... 기억이 안 나는데요...., 안 그래도 올해 하려고 했습니다."
"그래요, 낫고 나면 내시경 합시다"
그렇게 나와서 처방전을 기다리며 생각해 보니 2011년에 한 게 마지막이었다.
정말 올해 목표 중에 하나가 몸을 좀 살펴야겠다였는데, 이렇게 탈이 나버렸다.
그렇게 처방받아 온 약을 먹고 한숨 자고 일어났는데, 큰일이다.
상태가 더 악화되었다. 결국 수업을 못했다.
무서웠다. 약 먹고 안 괜찮아지니 두려움이 잠식해 왔다.
삶에 대해서 불평불만을 하던 내가 독감 때는 '아프지만 않게 해 주세요' 그러더니 이젠 '살려주세요!'라고 하고 있다. 아프면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다음날 아침 다시 병원엘 간다.
"선생님, 저 어제는 일도 못했어요. 속은 계속 메슥거리고요... 수액이라도 맞으면 좀 괜찮을까요?"
"수액 맞으면 좀 낫기는 할거 같은데... 그냥 위내시경 합시다. 초음파 한번 보고, 내시경 하고 수액 맞으세요. 이상하네 왜 그러지?"
초음파로는 크게 이상이 없었다. 간과 신장에 아주 아주 작은 물혹 같은 것이 있다고 하셨지만 그건 문제 되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수면 내시경을 하고 수액 맞고, 대기실에서 검사 결과를 듣기 위해 기다렸다.
"심각한 위궤양이네요, 여기 화상자국 같은 거 보이죠? 이미 여러 번 위궤양이 발병했다가 나은 거예요. 그리고 여기 위벽들이 많이 헐어있어요. 조직 떼려다가 못했습니다. 지금 상태에서 떼면 출혈이 있을 거 같아서요. 두 달 약 드시고, 후에 내시경 검사하면서 그때 조직 떼어야 할거 같아요. 속이 많이 메슥거렸겠어요."
아.... 내 위여....
그렇게 한 보따리 약을 받아오며 생각에 잠긴다.
2011년도에 내 위는 선홍색의 이쁜 위였는데,
14년 만에 대면한 내 위는... 너무 안쓰러웠다.
그동안 내가 생각보다 속앓이를 많이 했나 보다 싶은 게 정말 짠했다.
사실 타미플루 5일 치 약을 처방받을지, 타미플루 수액을 맞을지 선택하라고 했는데
돈 좀 아낀다고 약을 처방받은 건데, 초음파에 내시경에 수액에... 결국 더 많은 돈을 썼다.
수액을 맞아서 인지 그날 하루는 오랜만에 정신이 들었다.
하지만 드라마틱한 회복은 아니었다. 그저 하루하루 서서히 좋아지기 시작했다.
위장약은 정말이지 끼니를 잘 챙겨 먹어야 하는 게 기본인데 그게 가장 힘들었다.
그래도 속이 메슥거리는 것이 사라지니 살 거 같았다.
그렇게 위궤양 진단을 받고 나서도 열흘은 더 아팠다.
보름을 넘게 핸드폰을 볼 수도 없는 상태로 아팠다.
그러다 상태가 조금 좋아지면서 핸드폰을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때 마침 쇼츠 하나가 내 눈에 들어온다.
‘90일 작가 되기’라는 제목의 쇼츠였다.
나는 알 수 있었다. 이건 운명이라고. 이건 해야 한다고.
24년 4월부터 따라다니던 '책을 쓰고 싶다'라는 생각이 끌어당긴 결과라는 것을 나는 알았다.
그렇게 나는 작가가 되기 위한 준비를 했는지도 모르겠다.
2편은 목요일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