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유찬이가 온 날
10년 만이다. 함께 지내게 된 게 말이다. 급하게 필요한 옷가지와 책들, 화장품들을 가지고 왔다. 매주 왔던 집이지만 이제는 거주하기로 했으니 지낼 방을 정해야 했다. 안방은 내가 쓰고 있고, 중간 방은 옷방, 가장 작은방은 서재로 쓰고 있다 서재라도 특별할 건 없었다. 30평대 아파트에 혼자 살고 있으니 그저 모든 방에 이름이 붙었을 뿐이다. 10년 가까이 주말마다 와서 함께 지냈지만 이렇다 할 아이들의 물건은 없었다.
분석희, 나는 이혼 10년 차 돌싱이다.
현관을 들어오자마자 있는 서재로 쓰던 방을 쓰겠다고 했다. 소위 말하는 문간방.
뭔지 모를 설렘이 있었다. 그것을 유찬이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애써 차분한 척한다. 내가 쓰던 책상과 책장은 두고 나머지 짐은 안방으로 옮기는 일을 먼저 했다. 책상이며 책장에 있던 짐들을 일단 안방에 넣고 나니, 넓은 집에서 좁은 집으로 이사하면 이런 기분일까 싶었다. 방안 가득 책이며 책상 위에 있던 물건들, 잡동사니들이 쌓여 있는 것을 보니 심란하다. 안방 문을 닫아두고, 바닥을 쓸고 닦고 나서 아들은 케리어와 여러 쇼핑백에 담아 온 물건을 풀기 시작했다. 유찬이의 표정이 밝지만은 않다. 그 표정이 신경 쓰이지만, 모르는 척 정리하는 아들 옆에 앉는다.
-침대가 없어서 어쩌냐? 네가 쓰던 책상이나 침대 가지고 오면 좋을 거 같은데...
-아니에요 엄마.
-일단 오늘은 대충 짐 풀고 필요한 거 있으면 차차 사지 뭐.
그렇게 말해놓고 머리가 복잡하다. 오전에 하던 협력교사일은 겨울방학을 시작하면서 계약이 종료되었다. 다시 새 학기에 지원하기 전까지 공부방 수입만으로 몇 달을 지내야 하는데, 현재는 총수입에 1/2 수준이니 마침 이 시기에 아들이 온 것이 조금 걱정이 되는 건 사실이다. 혼자서야 어떻게든 지내왔지만 내 상황을 어떻게 공유해야 할지, 아니 내 상황을 말하고 싶지 않다는 게 더 정확하다. 지금 당장 이야기해야 하는 상황인 것은 아니니, 아들이 방을 정리하는 동안 나는 저녁을 준비하러 주방으로 간다.
#2 우리 집으로 오게 된 계기
작년 12월 애아빠가 재혼을 하면서 합가를 하게 됐다. 초등학생 아이가 둘이 있는 사람이라고 했다. 이미 식은 1년 전에 올렸고, 바로 합가 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언젠가 합가를 할 거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나는 다른 건 관심이 없었다. 이미 중학생, 고등학생인 유찬이와 유준이, 거기에 상대방 아이들까지 함께라니, 내 새끼들이 편하지 않을 텐데 그 생각뿐이었다. 물론 같이 지내는데 문제가 없다고 하면 더할 나위 없이 없겠지만, 내 촉은 난항이 예상되었다. 아이들은 생각만 해도 머리가 아프다며 말하고 싶어 하지 않았다.
방 4개인 40평대 아파트라고 했다. 부부가 한방, 초등학생인 아이들 둘이 한방, 유찬이, 유준이가 각각 한방씩. 그렇게 여섯 식구의 생활이 시작되었다.
유찬이 졸업과 동시에, 유준이 예고 입학과 동시에 이루어진 일이다. 유찬이는 대학진학을 하지 않았고, 졸업 후 좀 쉬고 나서 진로를 정하겠노라 했던 참이었다. 하지만 그들과의 생활이 녹록지 않았던 모양이다.
-엄마, 엄마네 와서 함께 지내도 될까요? 도저히 집에서 쉴 수가 없어요. 마음 편히 지내기가 어려워요.
-당연히 그래도 되지. 엄마가 전부터 말했잖아. 네가 원하면 여기서 지내도 괜찮아.
아빠가 재혼을 하고 합가를 하면 당연히 견디지 못하겠다며 엄마랑 함께 지내도 되겠냐고 할 줄 알았다. 하지만 아이들은 그곳에서 모든 상황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려는 듯, 어떻게든 적응하려는 모습이 내심 서운하기도 했다. 이참에 엄마랑 함께 지내는 건 어떻겠냐고 물을 수도 있었겠지만, ‘그럴 수 없다’고, 아니 ‘그러고 싶지 않다’고 할까 봐서 그저 그들이 선택해 주기를 기다렸다. 왜 불편하게 그곳에 있냐고 이제는 엄마랑 함께 살아도 되지 않겠냐고, 엄마도 한 번은 너희들과 살고 싶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나는 그 마음을 들키지 않으려 애쓰며 아이의 선택을 기다리기로 한다.
나의 생각을 묻고도 유찬이는 쉽게 결정하지 못했다. 예고에 진학하면서 아침 일찍 등교해서 저녁 늦게나 집에 오는 유준이는 그냥저냥 지낼만하다고 했다. 하지만 유찬이는 상황이 달랐다.
그렇게 또 몇 주가 지나서야 유찬이는 거처를 옮기겠노라 결심했다.
#3 전학
고등학교 2학년 2학기, 유찬이가 전학을 하게 된다. 신도시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고 했다. 살던 집에서 30분 정도 더 들어가는 곳이었다. 이사 전에는 걸어서 다니던 학교이니 이사를 하게 되면 버스를 타고 다녀야 하는 불편함이 생기기는 하나, 보통 고등학생은 전학을 생각하지 않는다. 중학교 2학년이던 유준이는 전학을 하지 않기로 했으나, 유찬이는 전학을 하기로 했다고 했다. 나는 열렬히 반대했다. 고등학생이 전학해서 좋을 게 없고, 특히 유찬이 성향상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시간이 필요한 아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에 굳이 그 과정을 거쳐야 이유가 없다고 난 확신했다. 하지만 이미 아빠랑 이야기가 끝난 상태였다. 그리고 전학을 하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한 사람이 아빠였다는 사실에 화가 났다. 나의 반대가 무슨 소용이랴, 이미 마음을 정했는데 엄마가 불편하게 하지 말라고 하니, 자기가 알아서 하겠다며 더 이상 말하고 싶어 하지 않았다. 강하게 말하고 싶었지만, 그저 내 생각이 틀리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어디까지 내가 관여해야 하는지 이럴 때면 참 어렵게 느껴진다. 같이 살이를 하지 않았기에 나의 말에 더 이상 힘을 주지 못한다.
그렇게 9월 이사를 했다. 여름방학이 끝나고 일주일이 지난 후쯤 전학을 가게 되었다.
-엄마, 친구들이 생각보다 저를 많이 좋아했더라고요. 마지막 날이라고 인사하는데 아쉬워하는 친구들도 많고, 저도 기분이 좀 그래요. 사실 제가 전학을 하기로 한건 집이 멀어져서도 있었지만, 학교에 대한 미련이 전혀 없었거든요. 학교 생활을 열심히 한 게 아니어서 한편으로 새로 시작하고 싶은 마음도 있어서 결정한 건데, 아이들이 생각보다 저를 많이 좋아하고 있었다는 게 놀라웠어요.
자신이 얼마나 괜찮은 사람인지 모르고 있다는 것에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단지 귀찮아서만의 이유가 아니라 새로 시작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마도 환경의 변화를 가져옴으로써 자신을 재세팅하고 싶었을 거라 짐작했다.
새로운 학교에서의 생활이 시작됐다. 이미 형성된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가을 학기에 전학을 하게 된 것이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며 3학년이 되면 상황이 좋아질라고 믿으며 그 시간들을 버티고 있었다. 쉬는 시간에 아이들이 너무 떠들어서 정신이 나갈 지경이라며, 그럴수록 전학오기 전 친구들에 대한 그리움을 들어냈다. 저녁에 자기 전에 전화하는 횟수가 늘었다. 그나마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이 나밖에 없는 듯했다. 다행이면서도 마음이 안 좋았다.
-전에 다니던 학교가 정말 시설도 좋고 친구들도 좋았더라고요. 여긴 아파트만 새 아파트지 학교는 시설이 너무 안 좋아요. 엄청 시골 학교 같다니까요.
-그래? 신도시가 그렇긴 하지. 주변이 아직 개발 중일 테니까. 수양고 친구들하고 연락해?
-주말에 가끔 만나서 축구도 하고, 온라인 게임도 하고 그래요. 근데 처음엔 몰랐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만나면 뭔가 거리감이 느껴져요. 소속이 달라졌다는 생각 때문인 건지, 기분이 좋지만은 않아요. 이곳에도 저곳에도 속하지 못하고 있다고 해야 할까, 안정이 안되니 집중도 잘 안되고 그래요.
거의 매일 저녁,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아들의 힘없는 목소리가 안쓰럽기도 하고 짜증이 나기도 했다. 엄마가 전학가지 말라고 하지 않았냐고! 엄마 말을 왜 듣지 않았냐! 고 비난하고 싶은 마음이 들다가도, 내 말이 맞았다는 것을 확인해서 무엇하겠나 싶은 마음으로 비난하고자 하는 마음을 누르고 그저 아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함께 해주는 것밖에,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똥인지 된장인지 꼭 먹어봐야 하는 건지.
나도 엄마가 먹지 말라던 똥 먹고 탈도 많이 났었는데, 누굴 탓하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