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3학년 새 학기
어렸을 때부터 신중하고 섣불리 움직이지 않는 성향이 짙었다.
성향 자체가 적응하는데 시간이 필요한 스타일이다.
그래서 항상 급하게 무엇인가 하지 말고 스스로에게 적응할 충분한 시간을 주라고 알려주었다.
전학하고 나서의 지금의 상황을 나름 이해하고는 있지만, 그렇다고 힘들지 않은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렇게 3학년 새 학기가 시작되기를 기다렸다.
모두가 같은 출발선에서 시작하는 거라고, 그렇다면 자신 있다고 생각했던 거 같았다.
하지만 현실을 예상과 다르게 흘러가는 듯했다.
모두가 같은 출발선이라고 생각했지만, 쉽사리 풀리지 않는 모양이었다.
하루 종일 말 한마디 안 하고 하교한다며, 수업에 전혀 집중이 안된다고 했다.
벙어리처럼 있다가 집에 오는 날이 늘어갈수록 아들은 혼자 가슴앓이를 하고 있는 듯했다.
3학년이 되고 나서는 자기 전에 전화하는 횟수가 줄었다.
크게 달라지지 않는 현실을 포기한 것일까? 그저 아이가 나를 찾을 때 그곳에 있자라는 마음으로 하루하루 지내고 있었다.
날개가 꺾인 아이처럼 지내는 것이 안타까웠지만, 자신의 선택한 것이고 겪어야 하는 것이기에 기다리는 수밖에 방법이 없었다.
그렇게 3학년이 되고 6주 정도가 지난 무렵, 나에게 SOS를 쳤다.
저녁시간 자기에게 와 줄 수 있냐는 연락이었다.
그 순간 그동안의 아이의 마음을 잘 알고 있었기에 최악의 겨우 아이가 자퇴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인터넷 검색을 했다. 자퇴 후 검정고시를 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데 대한 검색이었다.
그 무엇보다 난 아이가 중요하다. 아이의 마음보다 중요한 건 없다는 신념이다. 무조건 참고 인내하는 것만이 답이 아니며, 어떤 선택이든 용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유찬이네까지는 차로 45분 정도 걸린다.
신도시로 이사 가며 우리 집에서도 20분 이상 더 멀어지게 되었다.
저 멀리 아파트 입구 쪽에 아들이 서 있는 게 보인다.
가까운 카페를 갈까 물으니 그냥 차에서 이야기하자고 했다.
-하루종일 한마디도 안 하고 집에 와요. 수업에 집중도 안되고, 이야기할 사람이 없는 게 너무 힘들어요. 학교를 가야 하는 거 자체가 너무 힘들어요. 내 인생이 왜 이런지 모르겠어요. 뭐 하나 되는 게 없어요. 이럴 줄 알았으면 전학을 안 하는 건데...
-그래서 엄마가 그때 말렸잖아. 고등학교 때는 보통 전학을 하지 않아. 그리고 니 성향상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데 시간이 걸리는데 엄마는 지금 이 시점에서 불필요한 거라고 생각이 들었던 건데, 네가 너무 쉽게 결정하는 거처럼 보여서 걱정스러웠는데 결국 이런 사달이 나네.
-엄마가 반대했었다고요?
-뭐야? 기억 안 나?
-기억 안 나요. 좀 적극적으로 말려주시지 그랬어요.
기가 막혔다.
현실을 부정하고 싶으니 다른 사람의 탓을 하고 싶었을 거라 짐작했다.
-2학년때보다 더 힘들어요. 거기다가 반에 반복적으로 소리를 내는 애가 있어요. 미쳐버릴 거 같아요.
-반복적인 소리? 틱 장애가 있는 건가?
-모르겠어요. 시도 때도 없이 소리를 내요. 불규칙적으로 소리를 내니까, 언제 또 그 소리가 들릴까 싶어 마음이 불안해서 도대체가 집중이 안 돼요.
-틱 인가보다. 그게 일부러 내려고 해서 내는 게 아니라 조절이 안 되는 거라, 참으라고 한다고 참아지는 게 아닐 텐데...
-그럼 조치를 취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학교를 나오지 말든가, 약을 먹든가?
아들은 극도로 예민해져 있었다.
-엄마가 너 만나러 오기 전에 네가 너무 힘들다고 하면 자퇴를 권해야 할 수도 있겠다 싶어서, 검색을 해봤어. 만약 지금 자퇴를 한다면 어떻게 되는지 알아야 너에게 말할 수 있을 테니까 말이야.
아이는 가만히 내 이야기를 들었다. 그 생각을 안 해 본 거 같지 않아 보였다.
-자퇴를 하고 6개월이 지나야 검정고시를 볼 수 있는데 검정고시는 4월과 8월에 있대. 지금이 4월 초니까, 지금 자퇴를 하면 올해 검정고시는 못 보는 거야. 내년에 봐야 하는 거지.
-나는 맘대로 자퇴도 못하는 거예요? 하고 싶어도 못하네요.
웃으며 울었다.
-저 자퇴 안 해요. 아니 억울해서 못해요. 어떻게 다닌 학교인데, 조금만 참으면 졸업인데...
-다른 거 생각하지 말고, 어떤 대학 갈지, 어떻게 공부해야 할지 등등 고3이면 의례 하는 그런 목표 말고 올해 목표는 졸업이야.
차 안에서 3시간을 토해내듯 이야기하며 그동안 쌓인 답답함을 눈물과 함께 흘려보내는 거 같았다.
자식의 아픔을 본다는 건 정말 힘든 일이다.
내가 대신할 수 없는 일이기도 하지만 대신해 줘서도 안되기에 아이가 성장할 때 부모도 함께 성장하게 되는 건 아닐까?
이런저런 방법을 제안해보고 싶었지만, 그런 모든 말들을 삼켰다.
그리고 삼킨 그 말들은 애들 아빠에게로 향했다. 아이가 전학을 한다고 해도 더 생각해 보라고 해야 할 사람이 오히려 전학을 하면 어떻겠냐고 부추기고, 정작 본인은 뒤로 빠져있었다.
몇 개월동안 힘들어하는 아들은 내가 수습하고 있으니, 마치 옛 기억을 몸이 기억하는 듯 애들 아빠에 대한 분노가 마음에 들끓었다.
하지만 그건 나의 감정이기에 전염시키고 싶지는 않다. 이혼하고 지금까지 아이들 앞에서 아빠에 대한 험담을 하지 않으려고 애썼다.
#5
소리에 대한 예민함은 극에 달하고 있었다.
모두 자기에게 틱 장애가 있는 친구를 이해하라는 말뿐이라며, 틱에 대한 설명은 필요 없다고 도대체 왜 내가 그 아이를 이해해야 하는 건지 모르겠다며, 그럼 자기는 어떻게 해야 하냐면서 조퇴를 하는 날이 늘어갔다.
그 친구의 불규칙적인 소리들을 참아보려고 했으나 도저히 참아지지가 않았다고 했다.
그런 이야기를 나눌 친구가 없으니 답답함이 심해진다고 했다.
3M 귀마개를 구입해서 끼워보았지만 소용이 없었단다. 소음 차단되는 해드폰도 써보고, 나중에는 30만 원 가까이하는 아이팟 프로도 구입했다.
하지만 그런 것들이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해 줄 수가 없으니 결국은 그 장소를 나오는 길을 선택하게 되는 듯했다.
-언제 소리가 날지 모른다는 게 너무 불안해요. 조용해도 불안하고, 시끄러워도 불안하고.
정말 어떨 때 죽이고 싶은 마음이 들어요.
내가 생각하는 거보다 심각했다.
그 아이를 학교에 나오지 말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아들에게 참으라고만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힘들어서 어떡하니? 전에 엄마가 말한 거처럼 우리 목표는 졸업이니까, 졸업을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출석일수 알아봐.
말해봐야 해결되지 않는다는 생각에 그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참는 거뿐이었을 아들. 아빠나 선생님, 엄마조차도 그 친구 편에서 이해하라고만 하니 말하기 싫다고 했다.
몇 날 며칠을 고민만 하던 아들이 어느 날 용기를 내서 그 친구에게 ‘좀 참아볼 수는 없는 거야?’라고 말했단다.
당황한 친구가 ‘미안해, 조심할게.’라고 했단다. 물론 크게 달라진 건 없었겠지만 그래도 그날 아들이 그렇게 자신의 마음을 말한 것은 아주 잘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1학기가 끝나갈 무렵, 아이는 반을 바꾸고 싶다는 말을 했다. 아이 아빠가 담임을 만나 반 이동에 대한 상담을 했다고 했다.
아이는 그 친구가 문제라고 확신했다.
그 친구만 없다면 괜찮아질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그 친구의 문제가 아니라 아이 마음의 문제라는 것을 말이다. 왜냐하면 그 친구의 틱장애가 그 반 모든 아이들에게 같은 반응을 불러일으키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마음의 문제는 본인이 찾겠노라 하지 않는 이상 찾기가 어렵다.
보이지 않는 마음을 들여다본다는 건 쉽지 않기에 보통은 눈에 보이는 문제를 해결하려는 경향이 많다.
이미 감기에 걸려서 골골 대는 사람에게 왜 당신이 감기에 걸렸는지 분석해서 알려줘 봐야 아무 도움이 안 된다. 일단 감기를 낫게 하는 것이 우선인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