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드디어 졸업
여름방학이 끝나고는 반이동이 진행됐다. 벗어나고 싶은 마음뿐이었을 거다.
전학을 반대했던 거처럼 반이동도 크게 의미가 없을 거라고 말했다.
말해도 내 말을 듣지 않을 거라는 걸 알았지만, 그렇다고 아무 말도 안 할 수는 없다.
그리고 그때쯤 애들 아빠는 합가소식을 전했다. 전에 살던 지역으로 다시 이사를 나가 합친다고 했단다.
졸업해서 학교에서 벗어나기만 하면 좀 쉬면서 앞으로의 삶을 계획하겠노라, 그 생각으로 버티던 아들은 다시 이사를 나간다는 소식에 화가 나기도 했지만 지금 당장 닥친 일을 처리하기에도 많은 에너지가 소모된다고 했다.
-반이 문제가 아니었던 거 같아요. 소리를 완전히 차단할 수는 없는 거 같아요. 학교라는 공간을 벗어나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에요. 그래도 바뀐 담임선생님은 참 좋아요. 3학년 올라왔을 때, 이 분이 담임이었다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어요. 그리고 학교에 ‘숙려제’라는 게 있대요. 최대 7주까지 신청가능하다고 하더라고요. 선생님이 좀 더 알아보고 알려주신대요. 숙려기간 동안 출석인정 해주고요, 대신 일주일에 한 번 학교에 있는 위클리에서 상담을 받아야 한대요
‘학업중단숙려제’는 학교생활에 어려움을 겪는 학생이 자퇴 등 학업 중단을 고민할 때, 일정 기간 동안 학교를 쉬며 자신을 돌아보고 진로와 심리적 안정을 찾을 수 있도록 지원하는 제도였다.
아마도 새로 바뀐 담임 선생님이 제안해 주신 듯했다.
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새로운 가족과 합가 하기 위해 전에 살던 계연구로 이사를 나왔다.
#7
엄마네로 거처를 옮기는 게 맞는 선택일까? 매일 고민한다.
졸업하고 좀 쉬고 회복되고 나면 하고 싶은 일을 하려고 했건만, 졸업하고 나면 소음에서 벗어날 줄 알았는데 여전히 소음 속에 있다.
편하게 늦잠을 자고 싶건만, 선생님의 아이들이 학교 갈 준비하는 소리에 잠이 깬다.
그렇게 모든 식구가 나가고 나서야 조용해진다. 그리고 다시 오후가 되면 아이들이 하교하고 계속 시끄럽게 떠들어대는 애들 때문에 정신이 나갈 지경이다.
학교에 틱 장애가 있던 친구가 집에 있는 느낌이다. 조용히 하라는 말도 하기 싫다.
엄마는 정 힘들면 엄마네로 오라고 한다. 아니 오기를 바라는 듯하다. 하지만 엄마네 간다고 뭐가 달라질까?
이젠 무엇을 고민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일단 주말에 엄마랑 이야기를 해봐야겠다.
방학이지만 유준이는 입시학원 공연연습이 있다며 일찍 나갔고, 거실에서는 애들이 게임하는 소리가 들린다. 엄마한테 연락 올 때가 됐는데 오늘은 좀 늦어지네.
카톡
‘유찬아, 몇 시쯤 데리러 가면 될까?’
‘엄마 언제쯤 편하신데요?’
‘4시 30분~5시 사이 어때?’
‘괜찮아요.’
‘알겠어, 출발할 때 톡 할게.’
‘네’
엄마 출발 톡이 오면 그때 씻고 준비해도 충분하다.
엄마 톡 기다리면서 게임하고 해드폰을 벗으니 다들 외출을 했는지 집에 아무도 없는 거 같다.
제발 엄마네 가지전까지 아무도 오지 않기를 바란다.
#8
아침에 일어나 작은방 노크를 한다.
-잘 잤어?
-안녕히 주무셨어요? 엄마 말대로 매트리스라도 있어야 할거 같아요.
-그럼 인터넷으로 한번 찾아볼래? 아니다, 엄마 수업 끝나고 같이 이케아 가자. 거기 가면 직접 누워보고 고를 수 있어. 엄마 수업 끝나면 다녀오자.
-알겠어요.
-짐 정리는 다 한 거야?
-정리라고 할 것도 없어요. 가져온 게 별로 없는걸요.
아들은 내내 표정이 시큰둥하다. 내가 예민한 걸까?
이케아에 도착해 매트리스 매장으로 향했다.
많은 종류의 매트리스들이 전시되어 있어, 직접 누워보며 자신에게 맞는 매트리스를 고를 수 있도록 해 놓았다.
알 수 없는 표정이던 아들은 열심히 누워보고 또 누워보며 자신이 사용할 매트리스를 체크한다.
신나 보이기까지 한다. 그렇게 선택의 폭을 좁혀갔다.
그동안 나는 몇 개월 할부를 해야 할 것인가 열심히 머릿속으로 계산기를 돌리고 있었다.
이럴 때면 나 자신이 참 싫어진다.
싱글 매트리스 하나 사는데도 생각할 것이 많으니 말이다.
그렇게 머릿속으로 계산기를 두들기면서도 아들에게는 가격보지 말고 일단 맘에 드는 것을 골라보라고 한다. 감사하게도 가성비 좋은 매트리스를 골랐다. 싱글 사이즈의 매트리스는 강하게 압축된 상태여서 바로 집으로 가져올 수 있었다.
함께 구입한 매트리스 커버를 씌우고 바닥에 놓고 올라가 눕는다.
#9
새로 산 매트리스가 맘에 든다. 어젯밤에 잘 잤다.
엄마네로 거처를 옮기기 전에 오게 되면 며칠 쉬고, 슬슬 대입 공부 시작하고, 알바도 좀 알아보고 운동도 좀 규칙적으로 해보겠노라 큰소리를 치고 왔는데, 공부가 너무 하기 싫다.
일단 며칠 아무 생각 없이 충전을 좀 해야 할 듯하다.
‘이게 무슨 소리지?’
엘리베이터 움직이는 소리, 세탁실 빨래 돌아가는 소리, 출처를 알 수 없는 작은 소리들이 들려오기 시작한다. 가장 문제는 윗집에서 들리는 층간소음이다.
오후 3시~4시 사이에 시작되는 아이들의 말소리 웃음소리 쿵쾅거리는 소리가 엄청나다.
아마도 윗집의 내 방 위치가 아이들 장난감 방인 듯했다.
한번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니 온통 신경이 쓰여서 미칠 지경이다.
저녁이 되면 어른들 걷는 소리까지.
엄마의 수업이 시작하는 시간과 윗집에 아이들이 하원하는 시간이 겹치면서 난 방에 갇혀서 층간소음에 고스란히 노출되어 있어야 한다.
엄마네 온 지 5일째 되는 날이다. 마침 주말이라 준영이도 엄마네 왔다.
함께 저녁을 먹고 나는 방으로 들어왔다. 오랜만에 온 준영이와 엄마는 이야기 꽃을 피우고 있다.
엄마네도 답이 아니었다는 생각이 든다. 다시 내 집으로 가는 게 맞지 않을까?
이 지구상에 사는 이상 소음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인가 보다. 다시 돌아가야 할거 같다. 그래도 계용구 집은 층간소음은 없다. 지금은 방학이니까 개학하면 다시 가겠노라 엄마에게 말해야겠다.
준영이와 대화가 마무리되어야 내가 할 말이 있다고 할 텐데, 둘의 대화가 끝도 없이 이어진다.
-엄마, 할 말이 있어요.
-어 뭐야? 너 얼굴이 편해 보이는데, 말해.
-아니, 둘이서 이야기하고 싶어요.
-알겠어. 엄마 하던 거 마무리하고 방으로 갈게. 근데 무슨 이야긴데? 에이, 궁금해~.
어떻게 말을 해야 하나 고민하는 사이 엄마가 들어오셨다.
-너 며칠 동안 본 얼굴 중에 가장 편안해 보이는 얼굴이다. 할 말이 뭐야?
-엄마... 저 다시 집으로 들어가려고요.
-뭐? 뭐라고? 지금 장난해? 고작 5일 있겠다고 이 난리를 친 거야?
엄마는 생각보다 화를 크게 내셨다. 아니 제어가 안되시는 듯 보였다.
사실 난 왜 저렇게까지 화를 내시나 의아했다.
내 얼굴이 편안해 보였던 건 어쩌면 어쩔 수 없는 현실을 받아들여서였는지도 모른다.
결국 소음이 없이 살 수 없구나라는 현실말이다.
-엄마, 이 지구상에 살려면 소음을 피할 수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결국 집에서 소음을 피해서 왔는데 결국 층간소음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어요. 차라리 집에의 소음이 더 나은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당장은 아니고 2주 후쯤 갈 거예요.
엄마는 노발대발 그럴 거면 당장에 가라고 흥분하셨다. 뭔가 잘못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가 저렇게 흥분하시는 분이 아니신데 그렇다고 내 생각을 바꾸고 싶지도 않다.
당신을 무시하는 거냐며, 이 매트리스는 왜 산거냐며, 이렇게 쉽게 마음이 바뀔 거였냐며 엄마가 우신다.
엄마가 흥분을 하시니 나도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그냥 원래대로 돌아가는 게 맞다는 생각인 건데. 엄마는 방을 나가셨고, 밖에서는 엄마가 우는 소리가 들린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거지? 내가 뭘 그렇게 잘못한 거지? 엄마는 이해해 줄거라 믿었는데, 현실을 받아들이고 돌아가려는 나를 잘했다고 이야기해 주실 줄 알았는데, 엄마의 울음소리를 듣는 게 너무 힘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