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눈물이 멈추질 않는다. 꾹꾹 눌러둔 것이 터진 것처럼 쏟아져 나온다.
안방으로 들어와 침대에 누웠다. 소리는 내지 않고 울려고 했으나 소리는 내 입을 통해 흘러나온다.
점점 소리가 커지고 통곡이 되고 말았다.
주체할 수가 없다. 다시 집으로 간다고 한 그 말 때문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큰 감정의 소용돌이다.
하지만 오늘은 참지 않고 그저 두련다.
자기랑 이야기하다가 웃으며 들어간 엄마가 울면서 안방으로 들어와 통곡을 하고 있으니 유준이는 무슨 일인지 도무지 알 수 없는 표정으로 일어나 앉아서는 상황 파악 중이다.
대성통곡을 하며 울면서도 생각하는 내가 있다.
‘왜 이렇게 통곡을 하는 거야? 서운한 거야? 화가 난 거야?’
내 안에서 누군가 나에게 질문을 던진다.
들려오는 질문에 대해 생각할 여유도 없이 토해내듯 소리 내어 울던 울음이 잦아진다.
그리고 이내 알아차렸다.
오랫동안 아이들에게 내 마음을 들키지 않으려고 애를 쓰고 있었다는 것을 말이다.
아이들에 대한 서운함도 그리워하는 나의 마음도, 난 그럴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며 살았던 거다.
잘 이겨냈다고, 온전히 이해했다고 생각했는데, 그저 아주 오랫동안 참고만 있었다는 것이 밝혀지고 만 것이다.
갑자기 대문 열리는 소리가 들린다.
지금 시간이 밤 11시.
잘못 들었나 싶어서 큰소리로 아들의 이름을 불렀다.
“이유찬! 이유찬!”
바로 몸을 일으켜 일어나 현관 쪽으로 가면서 작은방을 보니 유찬이가 없다.
바로 따라 나왔다고 생각했는데 보이질 않는다.
그래봐야 아파트를 나가는 길은 하나이니, 빠른 걸음으로 길을 따라 나간다. 안 보인다.
단지 내에 있는 건가? 저 멀리 아파트 입구 쪽 횡단보도 앞에 서 있는 게 보인다.
신호가 바뀌기 전에 이름을 부르며 뛴다.
-너 지금 뭐 하는 거야? 왜 집을 나와?
-엄마 우는 소리 듣는 게 너무 힘들어서요...
-들어! 참아! 이렇게 나가서 엄마 걱정하게 만들어서 울지 못하게 하려는 거야? 엄마 우는 게 싫으면 옆에 같이 있으면 되는 거야! 일단 들어가. 누가 이렇게 도망을 쳐. 없어져서 엄마한테 복수하려는 거야?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지껄이며 집으로 돌아왔다.
#11
혹시 다시 자기 집으로 가고 싶다던 마음이 바뀌지 않을까 기다리며 며칠이 흘렀다.
서로 그 부분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았다. 아들은 자신의 마음을 확실히 전했다고 생각하고 있었고, 나는 변할 수 있는 것이라고 믿고 싶었던 거 같다.
-요즘에도 층간소음 심해?
-심할 때도 있고 아닐 때도 있어요.
-그럼 방을 바꿔보는 건 어때?
-그게 문제가 아닌 거 같아요. 그리고 저 공부하고 싶지가 않아요.
내가 정말 대학 진학을 하고 싶은 건지도 잘 모르겠어요.
공부하겠다고 가져온 저 문제집을 보기만 해도 가슴이 답답해요.
-혹시 엄마랑 약속한 것을 지켜야 하는데 라는 마음이 들어서 불편한 거야?
공부 안 해도 괜찮아. 누가 보면 내가 너 대학 가기를 엄청 원하는 엄마 같네.
다시 간다고 달라지는 게 없는데 알면서 굳이 다시 가려는 이유가 뭐야?
-모르겠어요. 층간소음보다는 원래 집이 나을 거 같아요.
그래도 애들 학교가 있는 시간은 조용하고, 예측이 되니까요.
층간 소음이 문제가 아니라 그냥 아이의 속이 시끄러운 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든다.
#12
부모의 이혼은 아이들에게 깊은 무기력감을 준다는 글을 본 적 있다.
나의 선택이 아닌 일로 한쪽 부모와 떨어져 지내야 하니 불안정감과 두려움을 가지게 되고, 본인들이 어떻게 할 수 없는 상황을 맞이하면서 무기력감을 느낀다고 한다.
별거하고 이혼하기까지 3년 정도는 나도 어찌 살아가야 하나 암담했기에 아이들을 신경 쓰지 못했다. 하지만 아이들 집 근처에 거처를 잡고 일자리를 구하면서 매주 주말이면 함께 시간을 보냈다.
더 이상은 상처를 주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살았다.
가끔 애들 아빠랑 부딪히는 일이 있어도 내 감정을 내세우기보다 아이들 입장을 생각하려고 노력했다.
이미 난 충분히 이기적인 엄마였다고 생각한다.
아이들은 어릴 때 일을 잘 기억하지 못했다. 어설픈 내 배움으로 해석해 보건대, 기억하고 싶지 않아서이지 않을까라고 생각하곤 한다.
유찬이 중3 겨울 방학 때 아이가 원해서 상담을 받은 적이 있다.
메모강박이 있다고 했다.
메모는 좋은 건데 강박이 되었다는 말이 뭔지 물었다.
분야별 메모수첩이 있고, 그것을 한 곳에 모으는 노트가 있는데, 메모의 양이 많아지다 보니 정리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린단다. 문제는 그것이 정리될 때까지 다른 일을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강박은 불안을 기저에 깔고 있다. 그래도 스스로 문제를 파악하고 도움을 청했으니 다행이었다.
그렇게 10회 상담을 신청했다.
아이는 강박을 치료해 주는 방법이 필요했던 모양이다.
문제가 강박이라는 것으로 드러났을 뿐, 내 안에 진짜 원인을 찾아가는 게 상담인데 아이는 6번째 상담에서 그만하겠다고 했다.
그 시점이 부모의 이혼에 대한 이야기로 들어가려고 하니 아이가 심한 거부를 했고, 상담선생님은 아이가 아직 준비가 되지 않은 거 같다고 하셨다.
그 부분을 풀어내야 아이가 편안해질 거라는 것을 나도 알고는 있었다. 아직은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말에도 충분히 동의했다.
그리고 아이는 메모강박을 고쳤다고 했다. 그냥 안 하면 되는 거였다고 하면서 이제는 메모를 하지 않는다고 했다. 결국 극과 극은 같은 것인데.... 유찬이는 내가 미안해하는 것도 싫어했다. 모든 원인을 이혼 때문이라고 이야기하는 것도 싫어했다.
이번엔 틱장애 친구로 인해 불안도가 커지면서 소리에 극도로 예민하게 반응하게 된 것이다.
불안도가 높은 사람은 불안을 낮추기 위해서 통제하려는 경향이 짙다. 그러나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이 자꾸 벌어지는 것이다.
졸업만 하면 괜찮질 줄 알았는데, 소리에 예민할 때로 예민해진 상태에서 아빠의 재혼으로 새로운 환경에 노출되고, 그래서 엄마네로 도망을 왔는데 여기에선 층간소음이라니.
외부의 소음은 네 안에 해결되지 않은 눌러놓은 여러 마음들이 소리일 수도 있다고, 그러니 이번엔 도망치지 말고 함께 헤쳐나가 보자 했지만, 전혀 받아들이지 않았다.
하긴 아직 회복되지도 않는 아이에게 같이 뛰어보자고 한 격이니, 나도 참 어리석다.
#13
아무도 없는 집에 있는 건 너무 좋다. 엄마하고 좋게 이야기하고 온 게 아니라 마음이 좀 불편하지만, 내가 지금 누구 마음을 헤아릴 만큼 여유롭지가 못하다.
밤낮이 바뀌어서 아침에 잠이 드는데 애들 등교준비 때문에 잠이 깨는 것이 너무 짜증이 난다.
그래도 이 몇 시간이 있으니 좀 낫다. 곧 아이들이 학교에서 돌아올 시간이다. 얼른 밥 먹고 들어가야지.
평화도 잠시. 아이들이 들이닥쳤다. 괜찮을 줄 알았는데 괜찮지가 않다. 어떻게 참아야 하는 건지 모르겠다.
-좀 조용히 좀 해라
결국 한마디를 했다.
순간 애들이 멈칫한다. 역시나 금방 시끄러워진다. 갑자기 같이 살게 된 애들에게 유준이에게 하듯이 할 수가 없다.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주의를 주지만, 자기 엄마말도 안 듣는다. 도저히 용납이 안 되는 아이들의 행동이다.
나도 층간소음만 해결되면 엄마네서 지내는 게 더 좋다.
그러고 보니 엄마네서 내가 아무것도 시도해보지 않고 그냥 왔다는 생각이 든다.
조만간 다시 짐을 싸야겠다. 어쩌다 내 몸 하나 뉘일 곳이 없게 된 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