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화

by 한희정

#36
올해가 가기 전에 꼭 해야 할 일 중에 병역 신체검사가 있었다. 올해를 넘기면 벌금을 내야 한단다. 군대 가기 직전에 받으면 되는 줄 알았는데 아니란다. 20살이 되는 해에 받고 입대는 나중에 하면 된다는 거다.
초반에 독립하겠다고 했을 때, 차라리 군대를 가는 게 어떻겠냐고 여러 번 말한 적이 있다. 그땐 유찬이가 말하는 독립에 대한 이해를 혼자 살고 싶어서라고 생각했기에, 어차피 가야 할 군대라면 하루라도 빨리 다녀오라고 이야기했다. 하지만 유찬이는 지금 상태로는 군대 안 간다며, 조용한 곳에서 좀 쉬면서 안정을 찾고, 앞으로 하고 싶은 것이 정해지면 그때 가겠노라 일관되게 이야기했다.
올해 초에는 거처를 정한다고 정신이 없었고, 거처를 정하고는 돈 모으겠다고 아르바이트를 시작해서 정신이 없었다. 그 사이 8월에 병역신체검사를 신청해 놓았던 날짜를 놓친 거다. 알게 모르게 조금씩 안정을 찾으면서 미뤄둔 병역신체검사를 내일 받으러 간다. GS 마트에는 미리 이야기해서 오전 근무를 조정했다.

-내일 몇 시까지 병무청에 가야 하는 거야?

-8시까지 오라고 되어 있더라고요.
-준비물은 없어?
-신분증만 있으면 되는 거 같아요. 병무청까지 얼마나 걸려요?
-40분 정도 걸린다고 나오네. 7시쯤 출발하자.
엄마 너 데려다주고 출근해야 해서 못 기다리는 거 알지?
-당연하죠. 그리고 뭘 기다려요. 애도 아니고.
어차피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서 오래 걸리나 보더라고요.

8시 20분 전 병무청에 도착했다.

유찬이가 언제 이렇게 커서 신검을 받으러 왔나 싶은 게 기분이 이상하다. 일찍 들어가기 싫다고 차에서 시간 되면 들어가겠단다. 5분 정도 있다가 사람들이 하나 둘 들어가는 게 보이니 자기도 그냥 들어가겠다며 내렸다.
이땐 몰랐다. 이곳에 내가 여러 번 오게 될 줄 말이다.

유찬이가 일찍 들어가서 학교에 여유 있게 출근하고, 점심 먹고 공부방 수업 준비를 하는데 끝났다고 톡이 왔다. 신체검사 등급이 나왔다고 물었더니 등급을 못 받았다고 한다. 이건 또 뭔 말인지, 뭐 하나 그냥 쉽게 넘어가는 법이 없다. 어차피 지금 집으로 와도 공부방 수업시간에 애매하게 걸려서 점심 사 먹고 천천히 오라고 톡을 보냈다.

***

-아니 왜 이렇게 오래 걸렸어? 원래 이렇게 오래 걸리나?
-제가 거의 마지막으로 나왔을걸요.
-왜? 일찍 들어갔는데 왜 거의 마지막으로 나와?
-행복하냐? 우울하냐? 뭐 그런 거 묻길래, 솔직하게 대답을 했더니 잠깐 저쪽에서 기다리라고 하더라고요. 저 말고도 여러 명 대기하고 있다가, 병원에서 물어보는 거처럼 이것저것 더 물어보더니 판정보류로 서류보충해서 12월 16일에 제출하라고 하더라고요.
-아... 요즘은 정신적인 부분을 좀 더 다루나 보네. 하긴 엄마 아는 언니 아들은 면제받으려고 몇 년 동안 주기적으로 진료받고 하면서 서류 만들긴 하더라. 결국 4급 나와서 공익근무 나왔다고 하던데, 이런 시스템으로 이루어지는 거였나 보네. 네 덕분에 별 걸 다 알게 되네.
-난 면제받으려고 그렇게 대답한 게 아니라 정말 그래서 그렇다고 한 거예요.
-알아. 그래서 무슨 서류를 준비해야 하는 건데?

초, 중, 고 학생 기록부와 병원에 요청해야 하는 몇 가지의 서류들이 있었다. 다른 병원과 다르게 강태성 정신의학과는 예약을 받지 않는다. 유찬이는 보통 한 달에 한번 정도 병원에 가는데, 이번엔 다음 주에 가려고 했던 병원을 한주 앞당겨 가서 보충 서류들에 대해 여쭤보기로 했다.

-엄마, 이렇게까지 하는 게 맞는지 잘 모르겠어요.

일단 최소 6개월의 진료기록이 필요하다고 한다. 제출일 12월 16일이면 거짓말처럼 6개월이 되는 시점인 거다. 조금 기간이 애매하니 남은 3개월 정도는 2주에 한 번씩 진료를 받기로 이야기했단다.

-어떻게 딱 6개월이 맞을 수가 있냐? 거봐 그때 엄마가 다른 병원 예약해 놓고 이 병원 다니고 있자고 했는데 이렇게 되려고 그랬나 보네. 너무 잘 된 일인데, 뭐가 고민이야?

-진료기록뿐만 아니라 30만 원 하는 검사를 받고, 검사 결과지와 결과에 대한 원장님의 소견을 제출해야 하는 거래요. 근데 30만 원을 써가며 하는 게 맞는지 잘 모르겠어요. 그렇다고 4급이 나온다는 보장도 없잖아요. 그 정도의 돈과 시간을 쓸 만한 일인가 싶어요.
-그런 생각이 들긴 하겠다. 30만 원이 적은 돈은 아니지.... 검사받으러 다녀야 하고...
근데 유찬아, 너도 너에 대해서 한번 확인해 보는 거 나쁘지 않을 거 같아. 이런 기회가 아니었으면 하지도 않았을 일이잖아. 혹시 4급이 나오지 않더라도 후회는 없지 않을까?
-진짜 모르겠어요. 아빠랑도 상의해 볼게요.

***

집을 구하기 위해서 돈을 모아야겠다고 결심하고 처음으로 시작한 아르바이트가 다이소에서 주 6일 저녁 7시~9시, 2시간 물류 하차 및 분리하는 일이었다. 이제 그만둬야 할 때가 된 거 같다. 내가 구한 일이지만 이런 비효율적인 일을 구했나 싶다. 그때는 앞뒤 가릴 여유도 경험도 없기는 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2시간 일하기 위해서 앞뒤로 버려지는 시간이 너무 많다는 생각이 든다. 오전에 GS마트 근무가 있는 날이면 저녁에 나가는 게 더 버겁게 느껴진다. 토요일까지 근무하는 것도 이제는 싫다. 이번 달까지만 근무한다고 말해야겠다. GS마트도 이제는 월, 수, 금 고정으로 출근할 수 있게 되었으니, 화, 목으로 일 할 수 있는 곳이 있으면 딱 좋을 거 같은데, 쉽지는 않을 거 같다. 내년 1월 정도면 얼추 1,000만 원이 될 거 같다. 그전에 신체검사 등급도 마무리하고 싶다. 아빠는 어찌 되었든 내가 군대를 가기를 바라시는 거 같다. 그래도 내 선택을 존중해 주신다고 하신다. 그래서 엄마 말대로 하는 데까지 해보기로 마음먹었다. 다행히 아빠가 검사비용을 내주신다고 한다.


#37

유찬이는 다이소를 관두고 화, 목 낮에 할 수 있는 일을 찾고 있는 듯하다. 그 덕에 나도 좀 편해졌다. 하루에 두 탕의 아르바이트는 하지 않겠다고 하니 화요일, 목요일만 일할 수 있는 곳을 찾기가 쉽지 않아 보였다. 그러다 마침 ‘맘스터치’에서 주 2회 근무자를 뽑는다는 해서 지원했다며 면접 보는 날 데려다 달라고 했다. 집에서 거리가 좀 있는 곳이었지만, 그래도 한 번에 가는 버스가 있었다. 토요일이라 데려다주고 기다렸다가 같이 집으로 왔다. 다행히 화, 목 근무가 가능하다고 해서 출근을 하겠다고 했단다. 노브랜드 버거처럼 레시피를 외워오라는 요구 같은 건 없었다. 첫날 일하고 와서는 사람들이 너무 좋긴 한데, 아무도 빨리하라고 하는 사람이 없는데 주방에서 조리를 할 때면 주문하고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는 게 너무 부담스럽고, 빨리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불안해진다는 거다. 그럴 필요가 없다는 걸 아는데도 마음같이 안된다면서 말이다. 두 번째 출근을 하고 돌아온 날, “정말 주방일은 저하고 안 맞는 거 같아요. 노브랜드 버거 때는 사람을 운영하는 시스템과 사장님을 잘못 만나서 그랬더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에요. 주방에서 하는 일이 나랑 맞지 않는다는 것을 확실히 알았어요.”라고 말했다.
두 번만에 어떻게 관둔다고 말해야 할지 고민된다며, 문자로 알리겠다는 말에 전화를 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했더니 역시나 돌아오는 말이 “내가 알아서 할게요”였다.
‘내가 알아서 할게요’는 결국 ‘엄마 말 듣기 싫어요’라는 말과 같은 말이다.
이틀 일한 급여는 받지 않겠다고 죄송하다며 문자를 보냈고, 하루가 지나도록 사장이 확인을 안 하니 결국은 전화를 걸었고, 잘 해결됐다.

유찬이가 일을 구하고 관두는 과정들을 지켜보면서, 난 20대에 저런 경험들을 스킵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잘하는 것을 찾는 것도 중요하지만 나에게 맞지 않는 일을 제거하는 것도 중요했던 것이다. 몇 번 안 되는 경험이지만 그 안에서 자신을 찾아가고 있으니, 소음에서 벗어나, 마음의 평온을 찾고 싶다는 목적이 결국은 자신을 찾아가는 여정이었음을 우리는 알지 못했다.

***

절대 포기하지 말라!
물론 포기하지 않는다고 원하는 것이 다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어쩌면 자신을 믿는 또 다른 방법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맘스터치를 그만두고 유찬이는 계속 화, 목에 일할 수 있는 아르바이트를 찾고 있었다. 쉽사리 알맞은 일자리는 나타나지 않고,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지자 생각이 많아지고 지루하다고 투정이었다. 나는 이참에 아르바이트를 구해야 한다는 생각만 하지 말고 운전면허를 취득하든가, 영어학원이나 운동을 배워두는 것도 생각해 보라고 했다.
누구 아들인지, 정말 말을 안 듣는다. 고집이, 고집이 대단하다. 그런 아들을 보며 속에서 울화통이 치솟다가 항상 엄마 생각이 난다. 내 말을 들을 거라고 기대하는 거 자체가 어리석음을 왜 매번 잊어버리는지.
배우고 싶은 것이 딱히 없기도 하고, 일을 해야 자신이 계획한 대로 독립을 할 수 있기에 열심히 구직을 하고 있었다.

-유찬아, 화요일, 목요일만 할 수 있는 일을 이 정도 찾아봤는데도 없으면 없는 거 아니야? 조건을 바꾸던가, 독립계획을 수정하던가...

유찬이는 별다른 말이 없다. 네가 원하는 조건의 일은 없을 거라고, 결국은 내가 말한 대로 계획을 수정하게 될 거라고 생각했기에 유찬이의 무반응에 신경 쓰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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