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화

by 한희정

-엄마, 저 내일 면접가요.
-면접? 무슨 일인데?
-한촌설렁탕? 홀 서빙하는 거 같아요.
-무슨 요일에 하는 건데?
-화요일, 목요일이요.
-뭐? 진짜? 말도 안 돼! 대박! 결국 찾았어?
-엄마는 다른 방법을 찾아보라고 하고, 매일 알바구인 앱 들어가도 그게 그거고.
근데 제 생각은 확고했어요. 하루에 아르바이트 두 탕 뛰는 건 해봤는데 절대 아니고, 주방일 아니어야 하고, 아직은 배우고 싶은 것은 없고. 아르바이트 없는 날은 지루하고. 그러다 설렁탕집 아르바이트가 나타난 거예요. 그래도 가봐야죠. 11시까지 오래요.
-데려다줘?
-아니에요. 이번엔 저 혼자 움직일래요.


나라면 계획을 수정했을 거다. 그렇게 같은 실수를 여러 번 했는지 모르겠다.
유찬이는 상황에 휘둘리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밀고 나갔다. 그것만으로도 유찬이가 점점 나아지고 있다는 증거였다.


원래 그런 아이였다. 누구보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던 아이.
나는 나를 미워했기에, 그것이 삶에서 얼마나 방해가 되는지 너무 잘 알기에, 아이들에게 대물림하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물론 나부터 실천하려고 애를 썼지만, 쉽지 않다.
진흙 속에 묻혀 있던 진주가 스스로 그곳에서 나와 묻어 있던 진흙을 털어내고 있는 거 같다.
고집스럽게 원하는 일자리를 구하겠다고 하는 아들을 한심하게 생각했던 내가 부끄러워지는 순간이었다.


밤새 눈이 내렸나 보다. 아침에 창 밖을 보니 아파트 도로가 눈으로 덮여 있었다. 차들은 아직 눈이 녹지 않는 도로를 거북이처럼 기어서 이동한다. 경비 아저씨들은 염화칼슘을 곳곳에 뿌리고 계셨다. 유찬이가 생각했던 시간보다 20분 정도 더 일찍 나서게 했다. 초행길에 눈까지 왔으니 변수가 많다. 길 미끄러울 테니 서두르지 말고 면접 잘하고, 끝나는 대로 톡 하라는 당부를 했다.
공부방 수업 시간이 다 되어 가는데 연락이 없다. 11시까지 가야 한다고 했으니 끝나고도 남을 시간인데 말이다. 전화를 해 볼까 하다가 좀 더 기다려보기로 했다. 혹시나 바로 일을 시작했을 수도 있을 거 같았다. 공부방 수업이 막 시작되고 톡이 왔다. 내 예상대로 일을 하고 나서 면접을 봤단다.


***
엄마 말 듣고 일찍 나오기를 잘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11월에 눈이라니. 며칠 일 안 하고 쉬었다고 움직이려니 귀찮음이 하늘을 찔렀다. 그래도 이렇게 원하는 요일에 할 수 있는 아르바이트 구하기가 쉽지 않다. 저기 보인다, 한촌설렁탕.


문을 열고 들어가서 아르바이트 왔다고 하니 매니저라는 사람이 아직 사장님 안 나오셨다고 하면서 앞치마를 줬다. 이게 뭐지 싶었지만, 엉겁결에 앞치마를 입고 눈치껏 시키는 대로 홀 서빙을 했다. 눈이 와서 그런 건지 점심시간 가게에 손님이 많았다. 3시 브레이크 타임이 되자 사장님이 나를 부른다.


-나는 학생 안 올 줄 알았어.
온다고 하고 안 오는 경우가 많거든. 게다가 눈도 많이 왔지, 집도 거리가 좀 있는 편이지. 난 그래서 100% 안 온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왔다길래 놀랬네.
오자마자 일 시켜서 놀랬겠어. 엄청 어려운 일이 아니기도 하고 며칠만 하고 안 나오는 경우도 있어서 할 수 있겠어요?
-네, 처음이라 어색하지만 할 수 있을 거 같습니다.
-우리가 근무 요일이 정해진건 없어요. 일주일에 며칠 일 할 수 있어요?
-저는 화요일, 목요일 가능합니다.
-그렇구나.... 그럼 2주 정도는 11시~3시까지 하면서 일 좀 더 배우고, 익숙해지고 나면 가게 오픈하는 시간으로 옮기면 좋겠는데 괜찮아요?
-오픈 시간이 어떻게 되나요?
-9시예요. 오픈조로 옮기면 9시~2시까지 근무하면 될 거 같아요. 급여는 주급으로 지급할 거예요. 뭐 또 궁금한 거 있어요?
-아니 없습니다.
-참 메뉴 중에 먹고 싶은 거 하나 골라봐요. 포장해 줄 테니 가져가요.


4시간을 앉지도 못하고 서빙을 했더니 다리가 엄청 아프다. 빨리 집에 가서 쉬고 싶다. 엄마 걱정하실 텐데, 톡을 보낼 정신이 없었다.


***
설렁탕가게 아르바이트를 하고 오는 날에는 유찬이 저녁거리를 고민하지 않아도 되었다. 가게 메뉴 중에 하나를 포장해서 가져온다. 아마도 식대 대신에 챙겨주는 거 같았다. 사장님은 유찬이에게 요즘 보기 드문 청년이라며 칭찬을 받았다고 한다. 날씨가 추워지면서 점심시간에 사람이 너무 많아졌다며 힘들다며, 목표금액을 맞추려면 언제까지 일해야 하는지 확인하곤 했다.
그러고 보니 요즘 들어 소음에 대한 이야기가 거의 없다. 망치질은 윗집이 새로 이사오고는 한 번도 한 적이 없다. 맞춤 귀마개 때문일까? 아니면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규칙적인 생활패턴으로 민감도가 줄어든 것일까?


맞춤 귀마개가 6주 후에나 도착한다고 했지만, 그래도 난 좀 더 일찍 배송될 수 있다는 희망을 갖고 열심히 기다렸다. 물론 희망으로 끝났다.
투명한 귀마개에 유찬이의 이니셜과 R\L로 방향이 표시되어 있었다. 귀마개를 끼고 빼는 방법은 제작하는 날 배웠다. 귀마개를 착용하면 정면에서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끼고 잘 수 있는 것이다. 귀속으로 들어가는 형태이기 때문에. 유찬이 말로는 새끼손가락으로 귀를 꾹 막고 있는 느낌이라고 했다. 처음엔 생각보다 편하지 않아서 걱정을 했는데 일주일 정도 지나고 나서는 적응이 된 모양이다.


안정이 되어가면서 혹시 유찬이의 마음에도 변화가 생기지 않았을까?
나는 독립 자체를 반대하는 것이 아니다. 단지 지금 심리적인 상태로는 오히려 혼자 있는 것이 더 위험하고, 더욱이 유찬이가 바라는 요양 하며 쉴 수 있는 그런 공간이 존재하기는 할까?


병무청에 요청받은 보충서류가 12월 16일까지 도착해야 한다. 최소 6개월의 진료기록이 되려면 12월 13일 진료받은 내용까지 적혀있어야 하고 다음날인 14일에 우편발송을 하면 주말이 걸려서 혹시라도 16일에 도착하지 못할까 봐 걱정이 되었다.
진료기록과 심리평가보고서에 대한 원장님의 소견은 12월 13일 진료를 하고 받기로 했다.


-목요일 진료받고 서류받아서 금요일에 붙이면 월요일에 도착할 거 같기는 한데, 불안하면 월요일 오전에 직접 병무청으로 가서 서류 제출하면 되지 않을까?
-우편발송이라고만 적혀 있던데...
-어차피 병무청으로 배달되는 거잖아. 그럼 병무청에 전화해서 물어봐.
-엄마 말이 맞기는 한 거 같은데... 전화해 볼게요.


병무청에 전화를 해서 직접 서류를 제출해도 된다는 말을 듣고 나서야 안심을 하는 듯했다. 정말 공익근무를 하게 되는 걸까? 일부러 현역을 가지 않으려고 한 것이 아닌데 일련의 과정들이 신기하게 맞아떨어져서 여기까지 왔다는 것이 유찬이보다 내가 더 결과를 기대하게 된 거 같았다. 그리고 왠지 그렇게 될 거 같았다.
꼼꼼히 다시 한번 더 제출서류를 확인하고 병무청으로 향했다. 병원에서 받은 서류들은 황토색 서류봉투에 넣어서 뜯으면 무효라는 경고문구가 적힌 스티커로 밀봉해서 주었다.
두 번째 방문. 서류만 제출하고 오면 되는 거라 금방 나왔다. 서류를 제출하면 바로 결과가 나오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일주일 후에 전화로 알려준다고 안내를 받았다고 한다.
아, 또 기다려야 한다니... 정말 지겹다

***
‘여보세요?
네... 네...
뭐라고요? 언제요?
네... 알겠습니다.’


수업준비를 하고 있는데 유찬이 방에서 통화하는 소리가 들린다. 아침부터 전화를 기다렸는데 다행히 아르바이트 끝나고 와서 쉬고 있는데 전화가 온 모양이다. 전화를 끊은 거 같은데 나오지를 않는다.


-통화한 거 아니야?
-맞아요. 짜증 나네...
-왜? 뭐라는데?
-3개월 있다가 재검받으러 오래요. 도대체 몇 개월째 이러고 있는 건지 모르겠어요.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현역 가고 말지. 몇 번을 사람을 오라 가라 하는 건지. 오늘은 진짜 짜증이 나요 엄마.
-병원 다니고 검사받고, 사실 엄청 신경 쓰이는 일인데 말이야. 뭘 더 봐야 한다는 거래....
-원장님이 진료기간이 조금 애매하다고 하시기는 했거든요. 너무 딱 맞는 6개월이라...
-그렇다고 이제 와서 그냥 현역 가겠다고 할 수도 없는 거잖아. 가능한가?
-재검받아야죠 뭐.
-그래서 언제 가야 하는 거야?
-3월 24일이요. 그동안 치료 더 받으시고 추가 진료기록 가지고 오래요.


나의 세 번째 병무청 방문이 정해지는 날이었다. 그래도 어쩌랴, 최선을 다해야 후회가 없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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