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
-드디어 1,000만 원을 돌파했어요 엄마!!
-대단하다 진짜. 축하해.
근데 솔직히 천만 원에 엄마 지분이 300만 원은 되지 않을까?
-그게 무슨 말이죠?
-먹여줘, 재워줘, 차비까지. 나 아니었으면 너 6개월 만에 그 돈을 모을 수 있었을까? 인정?
-노 인정입니다요.
-됐다 됐어! 너 잘났다.
-목표금액에 도달했기 때문에 이제 곧 설렁탕 아르바이트는 관두려고요. GS 마트는 다 결정되고 나면 그때 관두면 될 거 같아요. 이제 본격적으로 집 알아봐야 할거 같아요.
-충격이다. 솔직히 난 네가 생각이 바뀔 거라고 예상했거든. 결국 나가서 경험을 해봐야겠어? 그래서 어디로 알아볼 건데?
-너무 시골은 싫고, 그래도 엄마 아빠랑 가까운 곳이었으면 좋겠는데. 일단 탑층으로만 알아볼 거예요.
-그래서 어느 지역을 알아볼 건데?
돈 천만 원 들고 뭔 조건이 그리도 많은지, 세상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 아들이다.
-유찬아, 적어도 내가 알기로는 학교를 멀리 가게 되거나, 회사를 옮기게 되면서 학교나 회사를 중심에 두고 집을 구하거나, 아니면 정말 이 지역에서 살아보고 싶다 할 때 움직인단 말이지. 지역이 정해져야 그다음에 내가 원하는 조건을 맞출 텐데, 지금 너는 거기서 막히잖아. 너의 독립을 반대하지만 네가 경험해야 끝나는 거라고 하니 거처를 알아보러 가는 것은 내가 도와줄게.
-어디 적당한 지역이 없을까요? 그렇다고 엄마네 집 근처의 원룸을 알아보는 건 좀 그렇죠?
-혼자만의 공간이 필요해서 나가겠다고 하면 그럴 수도 있지만, 넌 지금 요양해야 한다며? 이 근처 원룸으로 간다면, 엄마집이 가장 조용하다에 내 손모가지를 건다 진짜!
하긴 이제 막 성인 된 아이가 세상물정을 안다는 게 말이 안 되기도 한다. 나도 겨우 유찬이보다 조금 더 알고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직접 눈으로 보는 거 말고는 답이 없다.
-그럼 유찬아, 강화도에 가볼래?
-거기가 어디예요?
-내가 아는 가장 가까운 거리의 시골 같은 곳이라고 해야 하나, 그런 지역이야. 한 시간 정도 걸려. 드라이브 겸 가보자. 부동산 들려서 집도 좀 보고. 부담 갖지 말고 엄마랑 하루 바람 쐬고 온다 정도로 가볍게 다녀오자고.
-좋아요. 그럼 이번 주 토요일 어때요?
-그래, 강화도에서 점심 먹게 맞춰서 출발하자. 오케이.
웬일로 내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래도 유찬이에게 삶의 길라잡이가 되어 줄 수 있어서 감사하다.
강화도에 도착해 점심을 먹자며 토요일 아침 출발했다. 나도 강화에 대해서 잘 모른다. 목적지는 정하고 출발해야 하기에, 유일하게 생각나는 장소가 ‘보문사’였다. 일단 강화도로 진입하는 것이 목적이었기에, 내비게이션에 ‘보문사’를 목적지 입력하고 출발했다. 치열하게 1년을 보내느라 이런 여유 있는 시간을 가져 본 적이 없었다. 2월의 추운 날씨 때문인지 도로는 한산했다. 강화도로 들어가는 초지대교를 건너자마자 도로에 차를 정차하고 우리는 점심을 먹기 위해서 목적지를 수정했다. 주변을 검색해 보니 주말이라서 쉬는 가게들이 생각보다 많았다. 그나마 시내 쪽에는 영업을 하는 가게들이 많기도 했고, 간 김에 시내 쪽 부동산에 들려보자고 결정하고 목적지를 바꿨다.
강화도에 들어와 식당을 찾는다고 시간이 꽤나 걸려서 점심을 먹고 나오니 1시가 훌쩍 넘었다.
-어디 부동산을 가야 할지 모르겠네.... 일단 돌아다니다가 끌리는 곳을 들어가자.
그래도 시내로 들어서니 곳곳에 부동산이 보였다. 그러다 기와집 지붕 모양의 부동산이 눈에 들어왔다. 큰 도로변에 있는 것은 아니었고 단독주택이 모여있는 골목에 있었다. 부동산 앞에 차를 주차하고 보니, 잠깐 자리를 비웠다며 전화를 달라는 푯말이 붙어있었다.
다시 차에 타서 유찬이가 문 앞에 적혀 있던 전화번호로 전화를 건다. 근처라며 조금만 기다려 달라는 여자 목소리가 전화기너머로 들린다.
부동산 중개인이 도착하고 문을 여니, 사무실이 춥다. 사장은 급하게 난로에 불을 켜고 우리를 테이블로 안내하고 본인은 컴퓨터가 있는 책상에 앉으며 나를 바라보며 말을 건넨다.
-어떤 거 알아보러 오셨을까요?
-제가 아니고 이 친구가 지낼 곳을 알아보려고요.
내가 유찬이를 가리키자, 사장이 유찬이를 바라본다.
-혼자 지낼 만한 곳을 알아보려고요.
-그럼 원룸 알아보시는 거예요? 혹시 일 때문에 이쪽으로 오시는 건가요?
-아니 꼭 그런 건 아니고...
머뭇대며 나를 쳐다본다.
-그런 건 아니고요, 조용하게 지낼 수 있는 곳을 좀 알아보고 있는 중이라서요. 탑층으로 있을까요? 옵션 있는 곳을 하려면 원룸을 해야 하는 거죠?
-탑층은 원룸이나 빌라도 있기는 해요. 옵션이 필요하시면 원룸으로 하셔야 하기는 하죠.
-혹시 단독주택도 월세로 나온 게 있나요?
-지금 지은 지 4년 된 2층짜리 단독주택 2층이 나온 게 있어요. 빌라들은 오래돼서 난방이 잘 안 되는데 이 집은 지은 지 얼마 안 된 새집이라 난방이 잘되요.
-그래요? 거긴 얼만가요?
-보증금 1,000만 원에 월세가 55만 원이에요.
-아... 빌라는 됐고, 원룸 탑층이랑 그 단독주택 좀 볼 수 있을까요?
-그럼요. 두 곳 다 시내랑 가까워서 차 없어도 지내기 좋아요.
우리는 부동산 사장님의 차를 타고 먼저 단독주택으로 향했다.
살짝 비탈진 골목을 조금 올라가니 그 골목 끝 왼쪽에 아담한 2층짜리 건물이 보였다.
노부부가 살던 오래된 집을 허물고 2층으로 지은집이라고 했다. 본인들이 살 집이라 꽤나 신경 써서 지은 집어서 베란다 새시며 좋은 자재들로 지었는데 사정이 생겨 1층, 2층을 따로 월세를 내놓은 집이라고 했다. 현재 2층에는 성인 남자가 혼자서 살고 있다고 했다.
주변은 조용했다. 골목 끝은 산자락이었고, 집 앞, 뒤쪽으로는 논밭이 펼쳐져 있었다. 2층으로 올라가서는 문을 두드리니 아무도 나오지 않았다. 익숙한 듯 번호를 누르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 세입자가 혼자 살다 보니 아마도 부재 시 들어오라고 번호를 알려준 거 같았다. 집은 아담했다. 부동산 사장님 말로는 19평 정도 된다고 했다. 구조며 크기, 주변환경이 생각보다 훨씬 좋았다. 새시가 튼튼해서 난방비도 많이 나오지 않는다고 했다. 하지만 세탁기며 에어컨 등등 준비해야 할 물품들이 있었다. 시내까지 걸어서 10분 정도이니,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더라도 접근이 좋을 거 같았다. 나부터도 탐이 났다. 유찬이 눈은 반짝였다. 욕심이 나는 눈이었다. 하지만 천만 원이 조금 넘는 돈으로 보증금 내면 나머지를 처리할 돈이 빠듯해진다. 그렇다고 아주 불가능한 것도 아니었다. 일단 보기로 했던 원룸을 보러 이동했다.
단독주택에서 멀지 않은 거리였다. 탑층이긴 했지만 한 층에 여러 집이 있는 구조였다. 일하는 사람들이 많고 1인가구가 많아서 소음이 크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어떤 공간이든 살아보지 않는 이상 알 수 없는 부분이다. 원룸은 층간소음도 그렇지만 벽이 얇아서 옆집의 소리도 들리는 경우가 다반사다. 엘리베이터가 없는 건물이었고, 5층으로 올라가 맨 끝집을 안내해 줬다. 문을 열고 바로 싱크대가 있었고, 문 뒤쪽으로 세탁기가 있었다. 오른쪽으로 생각보다 큰 방이 보였고, 창문 밑에 이불이 개켜져 있었으며, 깔끔히 정리되어 있었다. 식탁으로 사용하는 듯한, 포장마차에서나 볼 수 있는 빨간색 플라스틱 탁자가 보였다. 밖에서 건물을 볼 때 보다 안에서 보니 조금 오래된 시설처럼 느껴졌다. 오래 둘러볼 것도 없었다. 싱크대에 물 잘 나오는지 화장실은 어떤지 정도만 보고 다시 부동산으로 이동했다.
단독주택 2층은 3월 말에 이사가 가능했고, 원룸은 날짜를 충분히 맞춰 줄 수 있다고 했다. 명함을 받고 좀 더 생각해 보고 다시 연락을 드리겠다는 전형적인 멘트를 건네고 부동산을 나왔다. 유찬이의 생각이 궁금했다. 공장을 개조해서 만든 카페가 유명하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검색해 보니 멀지 않은 곳에 있기에 이야기도 할 겸 카페로 향했다. 길거리에는 사람이 그렇게 없더니 카페에 다 모여있는 느낌이 들었다. 주문을 하고 자리를 정하고 진동벨이 울리기 전까지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었다. 진동벨이 울리고 유찬이가 음료를 가지고 왔다.
-기대 안 했는데 여기 오길 정말 잘했다. 그치?
-그러게요. 저도 별 기대 안 했는데 볼거리가 정말 많아요.
-페공장을 이렇게 개조해서 카페를 만들다니 아이디어가 좋은 거 같아.
집 본 건 어땠어?
-원룸은 확실히 아니고요...
-미 투. 원룸이 나쁜 게 아니라 네가 생각하는 조건에 안 맞아. 지역에 상관없이 보통 그런 식으로 구성되어 있어. 오히려 여기는 지방이라 같은 가격에 방이 큰 편인 거 같더라고. 잠만 잘 거다 하면 거기도 나쁘진 않지. 단독주택은 맘에 들었어?
-거긴 맘에 들긴 들어요.
-나도 탐나긴 하더라. 난 절대 네가 말한 그런 조건의 집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강했는데 거기라면 요양이 가능하겠다 싶더라고. 근데 너무 여유가 없잖아? 보증금 내면 돈이 안 남잖아?
-한 달은 더 일할 거니까 백만 원 정도 더 들어올 거고....
-그래봐야 월세 한 달 내면 끝인데, 세탁기며 에어컨 등등 생각하지 않는 비용이 발생하잖아.
-그건 당근이나 중고로 알아보면 크게 문제가 될 거 같지 않은데요.
-무리해서 들어간다고 해도 다음 달 월세는 어떻게 하려고?
-어차피 아르바이트할 생각이긴 했어요.
-그래도 최소한 석 달 치 월세는 통장에 가지고 있어야 좀 쉬면서 아르바이트를 찾을 거 아니야?
-모르겠어요. 일단 원룸은 절대 아니라는 건 확실해졌어요.
-나도 반대였는데 단독주택으로 알아보면 될 수도 있겠구나 라는 걸 알게 되긴 했다만... 오늘 결정하려고 온건 아니니까, 정리를 좀 해보자.
역시 직접 눈으로 확인시키는 게 빨랐다. 단독주택 2층은 나도 탐이 나는 집이었다. 그 정도의 집이라면 유찬이가 좀 쉬면서 회복하는데 도움이 될 만한 곳이었다.
시간을 보니 여차하면 차가 막힐 시간이었다. 서둘러 카페를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