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화

by 한희정

커피와 케이크를 먹어서 인지 둘 다 배가 크게 고프지 않아서 간단히 저녁을 먹었다. 저녁을 먹고 유찬이는 책상에 앉아서 무엇인가 열심히 적고 있었다.


-뭐 해?
-대충 예산 짜보는 거예요? 잘하면 가능할 거 같기도 해요.
-빨래는 셀프세탁방을 이용한다고 해도 너 에어컨은 꼭 필요하잖아?
-중고로 해서 사면 크게 안 비쌀 거 같아요.
-그렇게까지 해서 들어가고 싶어?
-그렇기도 하고.... 다른 사람이 계약할 수도 있는 거잖아요...
-유찬아, 집이 그렇게 빨리 나가는 게 아니야. 그리고 그렇게 조급한 마음으로 결정하면 후회해. 만약에 누군가 그 집을 먼저 계약한다면 네가 갈 곳이 아닌 걸 거야. 조금 여유를 가지고 생각을 해봐. 이런 곳이 있다는 걸 알았으니 검색을 좀 더 해 볼 수도 있잖아.


독립을 반대하던 나였지만 막상 아들이 맘에 드는 집을 찾아 들어가고 싶어 하는데 상황이 여의치가 않아 고민하는 모습을 보니 짠한 마음이 든다. ‘월세 석 달 치 엄마가 해줄까?’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삼켰다. 그것은 유찬이를 위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너무 잘 안다. 그런 아들을 지켜보지 못하는 나의 문제인 것이다. 기다려야 했다. 유찬이가 입을 먼저 열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나는 노트북을 들고 식탁으로 나와 단독주택 월세를 검색해 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천만 원으로는 그만한 집을 갈 수가 없었다.


‘아니, 그 지역에 아르바이트가 있기는 할까? 현주 말로는 보통 시골은 일을 주변 사람들이 알음알음 소개해줘서 한다고 하던데. 유찬이는 아르바이트가 여기처럼 많다고 생각하는 거 같은데. 근데 거기 주소가 어떻게 됐지? 맞다. 부동산 명함. 거기 주소를 기점으로 해서 아르바이트 검색해 보자고 해야겠다.’

-유찬아! 부동산 명함 네가 챙겼지?
-여기 있어요! 왜요 엄마?


식탁에서 일어나 유찬이 방으로 들어갔다.


-갑자기 명함은 왜요?
-너 아르바이트 검색하는 앱으로 그쪽 동네 검색 좀 해봐. 내 생각에는 아르바이트가 많지 않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너 그냥 놀지만은 않을 거라면서?


앱에 들어가더니 주소를 입력하고 검색을 터치한다. 편의점 알바 하나가 검색되었다.
역시였다. 놀란 눈을 하고 유찬이가 다시 검색 아이콘을 터치한다.


-말도 안 돼! 엄마 하나 나와요. 하나. 이게 말이 돼요?
-거긴 시골이야. 엄마가 알기로는 특히 시골은 서로가 다 알고 지내고 해서 일을 도와달라고 하거나 일자리가 있다고 알려주거나 한다고 하더라고. 너도 살다 보면 그럴 수는 있겠지만, 당장 그 집으로 들어간다고 하면 생각보다 빨리 일을 시작해야 할거 아니야. 네가 애초에 계획한 대로 보증금 500만 원에 월세 40만 원 정도면 몇 달 쉬면서 천천히 일을 구해도 되지만 그렇게 갈 수 있는 원룸은 아니라는 결론이 났잖아. 그래서 혹시 다른 지역에 단독주택 월세 시세가 어떤가 찾아봤더니 엄두도 안나. 쉽게 말하면 2천만 원은 있어야 할거 같아.
-저 더는 돈 못 모아요. 못해요. 아니 안 해요.
-그럼 엄마가 300만 원 정도 해줄까?
-아니에요. 그것도 싫어요.
-유찬아, 지금은 네가 통장에 돈이 있고 지금까지는 엄마 아빠 밑에서 지내다 보니 잘 와닿지 않을 거야. 엄마가 걱정하는 건 네가 거기에 조금 무리해서, 아니 딱 맞춰서 들어갔다고 치자. 그럼 넌 다음 달 월세를 걱정해야 해. 월세만 있나? 생활비도 필요하잖아. 통장에 여윳돈 없이 월세를 내기 위해서 먹고살라고 일을 시작하면 새로운 문제가 발생하게 되는 거야. 네가 애초에 독립을 하려고 했던 본질적인 이유가 뭐야? 나를 포함해서 많은 사람들이 본질을 잊고 다른 문제를 발생시키는 경우가 많아. 돈에 대한 불안감은 네가 지금 겪는 그 어떤 불안감보다 커. 회복하려고 선택한 길이 너에게 더 큰 불안감이 될까 봐 엄마는 그게 걱정이야.
네가 그곳에 간다면 상황이 이렇다는 것을 충분히 인지하고 가야 하고, 아니면 돈을 조금 더 모아 독립의 시기를 좀 더 늦춰야 할거 같아.


진심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립을 한다면, 그것 또한 유찬이가 경험해야 할 일 일거다. 어차피 독립을 막을 수 없다면 돈을 좀 더 모아 나가는 후자를 선택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유찬이는 며칠 동안 말이 없었다. 나도 더 이상 어떻게 할 거냐고 묻지 않았다.


누군가 유찬이를 시험에 들게 한 거 같았다. 조금만, 아주 조금만 무리하면 진행해도 되는 딱 마음에 드는 집이 나타난 자체가 말이다. 그 집을 잡으면 독립했다는 기쁨은 잠시뿐, 돈을 벌기 위해 이리저리 뛰어나니게 될, 그런 달콤한 유혹 앞에 있는 아이 같았다.


벌써 강화를 다녀온 지도 5일이 지났다. 오늘은 GS 마트 출근날이다. 출근하는 차 안에서 출발하고 한참만에 입을 연다.


-엄마 말이 맞아요. 본질을 잊었던 거 같아요. 애초에 내가 나가려고 했던 목적이요. 며칠 동안 너무 우울하더라고요. 무리해서 들어가는 건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어요.
-500만 원만 더 모아 그럼. 그때 돼서 그 집 말고 더 좋은 집이 나올 수도 있는 거야.
-근데 지금은 독립을 위한 돈을 더 모으고 싶지가 않아요.
-그건 나중에 다시 이야기하자. 다 왔네.
수고해 아들.


내 진심이 잘 전달된 거 같아서 안도의 숨을 쉬었다. 하지만 의기소침해 있는 아들을 보는 것이 좋지만은 않다. 기왕 이렇게 된 거 몇 달 더 일해서 계획한 것을 실행해 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
엄마 말이 어느 정도 맞을 거라고 예상을 한다. 특히 엄마가 하는 말 중에 맞는 말인 거 같을 때 ‘예스’를 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든다. 왜 그런지는 나도 모르겠다. 때 늦은 반항인 걸까?
엄마가 600만 원에서 천만 원으로 목표금액을 바꾸라는 제안을 했을 때도 엄마한테는 계획대로 하겠다고 했지만, 엄마 말을 듣고 나니 나에게도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목표금액을 천만 원으로 바꿨고, 목표금액이 달성된 날 해방감을 느꼈다.
그리고 며칠 전 보고 온 단독주택 2층은 정말 욕심이 났다. 그런 집이 존재한다는 게 반갑기까지 했다. 집을 둘러볼 때만 해도 입주가 가능할 거라고 예상했다. 아니하고 싶었다. 딱 1년이면 된다. 조금 무리하면 가능할 거 같은데, 결정을 내리기 쉽지 않았다. 그러다 내가 생각지 못한 부분에 대해 엄마가 이야기를 해주셨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엄마 말대로 초심, 즉 본질을 잊어버리고 그 집에 들어가느냐 못 들어가느냐에 집중되어 있었다.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처음엔 그 집을 포기하고 싶지 않은 줄 알았다. 하지만 그건.... 독립을 포기하고 싶어 하지 않는 거였다. 아니 더 이상 독립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처음엔 알지 못했다. 그저 내 머릿속은 더 이상 독립을 위한 돈을 모으는 일은 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으로 가득해서 그것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 바로 알지 못했을 뿐이다.
독립에 대한 마음이 변한 것에 대해 엄마한테 말하고 싶지 않다. 곧 병역 신체검사 재검이 있다. 그 결과가 나올 때까지는 조용히 지내야겠다.



#39
드디어 오늘 신체검사 재검날이다. 벌써 3번째 병무청 방문이다.
재검시간은 2시였다. GS 마트에서 아르바이트 끝나는 시간에 픽업해서 병무청에 내려주고 오면 공부방 수업시간 전에 충분히 도착 가능했다. 어제 보충 자료 제출 후 3개월 동안의 진로기록을 챙겨서 병무청으로 향했다. 뭐가 됐든 오늘이면 끝이다. 제발 6개월 동안의 우리의 노고가 헛수고가 되지 않기를,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해 유찬이가 힘들어하지를 않기를 기도하며 유찬이를 병무청에 내려주고 집으로 돌아왔다.
1시간이면 된다고 했으니 3시쯤이면 연락이 올 때가 됐는데, 생각보다 연락이 늦어지고 있다.
공부방 수업을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톡이 울렸다.


‘아, 3급 ㅋㅋ’


톡을 보는 순간, 등에서 땀이 나는 것을 느꼈다. 갑자기 얼굴이 뜨거워지고 열이 났다. 입고 있던 카디건을 벗었다. 그리고 다시 톡을 봤다. ‘아, 3급 ㅋㅋ’
오 마이 갓!!! 나는 당연히 4급이 나올 거라고 믿었나 보다. 얼굴이 울그락 불그락.


‘고생했어, 근데 애를 오라 가라 개고생을 시키고! 열받네 진짜!’
‘그렇긴 해요’
‘유찬아, 너 괜찮아?’
‘네’
‘그럼 됐어, 조심해서 와.’


톡을 주고받고도 나는 한참 동안 충격이 가시지 않았다.
정말 유찬이는 괜찮은 걸까? 걱정이 되었다.


**
-너 진짜 괜찮아? 나는 당연히 4급이 나올 거라고 생각했나 봐, 톡 보고 충격을 먹었다니까.
-근데 엄마, 전 그 정도는 아니라는 걸 확실히 느꼈어요.
-그 정도가 어느 정도인데?
-심리적인 문제가 있다고 하는 애들은 따로 분리해서 뭘 묻거든요. 웃긴 건 그냥 오픈되어 있는 공간에서 상담을 해요. 일렬로 의자에 앉아서 앞사람 상담받는 동안 그 뒤에서 대기하니까 다 들려요. 알고 싶지 않은 가정사가 다 들린다니까요. 근데 애들이 대답도 잘 못하고 묻는 말에 이상한 대답하고 정말 심각하더라고요. 뒤에서 제 차례를 기다리는데 저 정도는 돼야 4급을 받는 건가 보다 싶은 게 난 현역 가야겠다 결정을 했어요. 그래서 군의관이 뭐 물어보는데 대답 칼같이 하고 일도 하고 있다고 말했어요. 3급이라고 찍어주더니 자기네도 6개월 동안 준비한 걸 봤으니 미안한지 이의제기 어떻게 하는 거라고 알려는 주더라고요. 전 현역이 맞아요. 그 부류에 있고 싶지 않았어요.
-막상 입대를 해야 한다니까 엄마 마음이 또 안 갔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기는 하지만, 네가 건강해진 증거 같아서 다행이야.


말은 그렇게 했지만 안 가도 되는 군대를 보내게 된 거 같은 마음이 들었다. 오히려 유찬이보다 내가 더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다. 특별히 오늘 더 힘든 일을 한 것도 아닌데 11시쯤부터 졸음이 몰려왔다. 그래도 자는 게 아까워 버티다가 자곤 했는데 오늘은 졸린 김에 일찍 자자고 불을 끄고 누웠다. 잠이 막 들려는 참에 유찬이가 들어온다.
괜찮다고 하더니만 유찬이도 막상 조용히 침대에 누워있으니 심란했던 모양이다. 내 침대 끝에 앉아서는 마음을 추스르는 듯했다. 그저 그렇게 옆에 있어 줄 수밖에.
그리고는 자신의 방으로 다시 갔다. 나도 다시 잠을 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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