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화

by 한희정

‘똑똑똑’

엄마....


방문이 열렸다.
놀라서 눈이 떠졌다. 핸드폰을 보니 새벽 2시가 다 되어가고 있었다.

-왜? 무슨 일이야? 안 잤어?
-도저히 잠이 안 와요. 응급 시 먹으라는 약을 먹었는데도 마음이 잘 안 잡혀요.
-그 정도로 힘든 거야? 어떡하니....
-아빠는 내 맘을 좀 알지 않을까 해서 전화했는데 자기 하고 싶은 말만 하세요.
막상 가야 한다고 생각하니 내가 잘할 수 있을까 겁나요. 내 상태가 괜찮은 건지 그것도 잘 모르겠고요.
-오늘 결정된 거잖아. 당장 군대로 끌려가야 하는 것도 아니고. 네가 준비 됐을 때 가면 되는 거야. 억지로 편안해지려고 하지 말고 그냥 둬봐. 불안한 게 당연하지 않아? 무서운 게 당연하지. 더욱이 예상이 안 되는 곳이잖아. 네 성향에 그게 더 불안하다고 느껴지는 걸 수도 있어. 너에게 조금 시간을 줘. 너무 밀어붙이지 마. 엄마도 막상 네가 입대해야 한다니까 이상한 기분이 들지만, 네가 건강해져서 이런 결과가 나온 거라고 생각이 들어서 한편으로 감사하기도 해.
-저도 그런 생각이 들기는 해요. 그래서 오늘 병무청에서 제가 결정을 한 거니까요. 현역으로 가는 건 당연한 결과예요. 알면서도 마음이 진정이 잘 안 돼요. 결과에 대한 미련이 아니라 내가 견뎌낼 수 있을까 라는 두려움 같아요.
뭔가 저를 둘러싸고 있던 것이 무너진 기분이랄까? 사실은 내가 굳이 집을 나가지 않아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나가야 하는 명목을 내세우려고 내가 계속 힘들어야 한다고 주장한 기분이었거든요.
-너의 세상이 무너진 거네. ‘난 지금 너무 힘들어. 그래서 쉴 공간이 필요해. 이 상태로는 군대를 갈 수 없어’라는 네가 만들어놓은 공간을 네가 오늘 완전히 무너트린 거네. 바뀐 거야 네가! 갑자기 허허벌판에 놓인 느낌이 드는 거 같은데.


평소 같으면 듣지도 않을 말들을 유찬이는 불 꺼진 방의 어둠 속에서 내 말을 귀담아듣고 있었다.


-보호막이 사라진 기분이 그래서 일수도 있을 거 같아요.
-건강해진 거야. 이 순간이 정말 신기하다 엄마는. 건강해진 너를 받아들여.


벌써 새벽 3시 반이 넘었다. 같은 말을 몇 번을 반복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엄마, 이제 잘 수 있을 거 같아요.


우리는 그렇게 독립에서 입대라는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40
다음날 저녁, 유찬이가 어이없다는 얼굴로 내 방으로 들어온다. 내가 궁금해서 방에 들어가면 맨날 나가라고만 하던 놈이 이제는 걸핏하면 방으로 들어온다.


-군대도 내 맘대로 못 가요.
-이건 또 뭔 말이야? 넌 어째 맨날 내가 알아듣지 못하는 말만 하는 거 같냐.
-지금 입대신청하면 11월에나 갈 수 있대요. 말이 돼요? 11월이라니...
-헐, 6개월 이후에나 입대가 가능하다고? 나 원참. 뭐 하나 쉽게 되는 게 없네. 헛웃음이 난다 헛웃음이 나.
-저야 말로 미치겠어요.
-아니 그럼 군대 가고 싶으면 6개월 전에는 신청을 해야 한다는 거야? 다른 방법이 없어?
-너무 어이가 없고 11월은 너무 늦어서 찾아봤거든요. 병무청 홈페이지에서 매주 월요일에 입대가능한 날짜와 모집인원을 공지한대요. 그리고 수요일 2시에 신청할 수 있게 사이트를 오픈하는데 1분도 안 돼서 마감이 된대요. 아이돌 콘서트 티켓팅 보다 치열하다고 되어 있더라고요.
아마도 입대하겠다고 신청해 놓고 사정이 생겨서 취소하는 사람들 자리를 집계해서 매주 오픈하는 거 같아요.
-그래서 그거 해보려고?
-그래야죠. 해보는 데까지는 해봐야죠. 만반의 준비를 하고 준비하고 있다가 한 번에 실수 없이 클릭클릭클릭해도 쉽지 않은 거 같더라고요. 몇 개월째 실패하고 있다고 하는 사람들 글도 꽤 많아요. 다음 주 월요일에 인원 공지 올라오니까 그거 보고 수요일에 시도해 볼 거예요. 전 6개월 못 기다려요.


그렇게 입대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
이 상태로는 군대를 절대 갈 수 없다던 놈은 이제 반드시 군대를 가겠노라 눈에 혈안이 되어있었다. 세상 일이라는 게 의지만으로 될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인간들은 어리석게 자신이 신이라도 된 거처럼 애를 쓸 때가 있다. 간절함이 하늘을 감동시켜 두 달 후에 입대를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신을 쉽게 유찬이의 팔을 들어주지 않았다.


유찬이는 6월 입대를 원했지만 월요일이 되어야만 알 수 있었고, 매주 6월 입대날짜가 나오지 않기도 했다. 7월, 8월은 더워서 그런지 그래도 선택하면 갈 수 있었으나 내키지 않아 했다.


4월 첫째 주 수요일, 실패.
4월 둘째 주 수요일, 실패.
4월 셋째 주 수요일, 실패.
이렇게 계속 도전하다가는 11월 입대도 미뤄져 12월로 변경될 판이었다.
다음 주면 4월 마지막주, 곧 5월이 된다. 6월이 무리수면 조금 안전한 8월로 바꿔야겠다고 했다. GS마트 아르바이트가 끝나고 점심을 사 먹고 피시방에 들어가기 전에 전화가 왔다. 어젯밤에 내가 이번 주까지는 6월에 해보라고 했는데 확률이 적다며 자기가 알아서 한다고 하더니, 생각이 바뀐 모양이다. 나야 언제 가든 크게 상관은 없지만 옆에서 안달복달하는 놈을 보고 있노라면 신경이 쓰인다.
매주 수요일 2시가 되면 나도 같이 긴장이 되었다. 오늘도 “두시네~” 하고 2분 후에 전화가 왔다.


“악~~~~~~~~~~~~~~~~~악~~~~~~~~~~~~~~”
전화기 너머로 기쁨의 괴성이 들렸다. 피시방이 인 거 같은데 아랑곳하지 않고 소리를 질러댔다.
6월 둘째 주 입대날짜가 확정되었다. 한 달 동안 노심초사하던 마음이 뻥 뚫리는 기분이 들었다.


안 될수록 집작하고 꼭 돼야만 한다는 생각이 짙어질수록 원하는 상황은 점점 더 멀어진다는 것을, 결과는 나의 영역이 아님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다. 앞으로 유찬이가 어떤 일이든 힘을 빼고 가벼운 마음으로 살아가길, 사뿐히 살아가길 바란다.


입대 날짜가 나오고 오랫동안 결정하지 못한 일을 하기로 했다. 바로 유찬이의 짐을 우리 집으로 옮기는 일이다. 딱 1년 만이다. 유찬이가 현실을 받아들이는 데 걸린 시간이 1년이다.


유찬이가 나오고 방을 사용하지 않고 있으니, 애들 아빠가 몇 달 전에 짐을 가지고 가는 게 어떻겠냐고 먼저 유찬이에게 이야기했다고 한다. 그때까지도 유찬이는 내키지 않았던 모양이다. 생각해 보겠다는 말로 두어 차례 미루었고, 입대 날짜가 결정되고 나니 짐을 정리하고 입대하는 것이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면서 5월 1일 근로자의 날에 이사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아침부터 비가 내렸다. 침대, 책상, 책상 의자, 책장, 옷들이며 갖가지 물건이 든 박스를 싣고 1톤 트럭이 도착했다. 작년부터 도대체 몇 번의 짐정리인지, 지긋지긋하다.
작은 이사지만 이사의 상징 자장면을 시켜 먹고 마저 짐정리를 했다.


***
드디어 군대를 간다. 작년 10월부터 장장 6개월이 걸렸다. 나도 나지만 엄마도 그 시간을 함께 하시느라 고생하셨다는 것을 안다. 군대를 가는 것이 목표가 아니었는데 그 문제를 받아들인 걸 보면 엄마 말대로 내가 건강해졌다는 증거가 맞는지도 모르겠다. 엄마의 오버스러운 의미부여가 때로는 마음을 편하게 해주기도 한다.
빛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던 칠흑 같던 동굴 속에서 한걸음조차 내딛을 수 없던 내가 빛을 찾아 나가겠다고 용기를 냈다. 그리고 이제 밖으로 나가는 동굴 입구 앞에 서 있는 기분이다. 기쁘지만은 않다. 두렵기도 하지만 그래도 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마음을 되새겨본다.


4월 초 입대를 계획할 때는 2달의 여유가 있었지만 계속되던 실패 속에 한 달 후면 입대를 하게 된다. 설렁탕 아르바이트는 2월 강화도 집을 알아보고는 관뒀고, GS 마트 아르바이트도 다음 주면 마무리한다. 엄마랑은 서울 나들이를 가기로 했고, 아빠랑은 강원도로 여행을 가기로 했다. 두 분이 함께였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어쩔 수 없다는 걸 알지만, 아쉬운 마음이 든다. 입대할 때 누구와 갈 거냐는 엄마의 물음에, ‘아빠가 군대를 갔다 왔으니 아빠가 좀 더 제 마음을 이해할 거 같으니... 아빠랑 가는 게 낫지 않을까요’라고 했지만 언제나 그랬듯 내 마음은 두 분 모두와 함께하고 싶다.
아빠네 집에 남겨두었던 내 짐들도 이제 제자리를 찾았다. 그러고 보니 내가 원하던 집이 엄마네 집이었나 보다. 조용하고 편하게 쉴 수 있는 그런 공간. 이젠 엄마네 집이 아닌 우리 집.
이제 내가 돌아온 집이 정해졌으니 건강하게 군생활을 마치고 돌아오는 일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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