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생각파업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빙기 Oct 18. 2023

09. 독서클럽인데 대충 읽고 싶은 걸 읽는

대충 끌리는 책을 골라서 읽자, 목적은 없어.


실행력 하면 빠질 수 없는 친구와 전화를 하다


: 아 책 읽어야 하는데- (원래 독서가 습관이었으나 멀어짐)

친구: 읽자

: 어,

친구: 읽자.



대중교통을 많이 또 오래 타야만 하는 위치에 살고 있다 보니, 이동하는 시간을 어떻게 쓰면 좋을지 고민이 된다. 물론 졸릴 때는 잠을 자고 과제가 바쁠 때에는 과제를 하지만 그 외의 시간에는 눈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모르겠는 상황이 종종 발생했다. 멍하니 핸드폰을 보자니 시간을 낭비하고 있음이 실시간으로 느껴지고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보기는 한다), 잠은 오지 않는 그런 상태.


자기 계발서에 푹 빠져버렸던 시즌에 그 시간이 아까워서, 낭비하는 시간 없이 하루를 운영해 보자는 일념 하에 독서습관을 들이기 시작했다. 전자책이건 실물책이건 빌려서든 구매해서든 자주 읽었다. 시행착오는 있었지만 그러다 보니 책이 없는 편이 어쩐지 허전하고 불안했다. 그렇게 항상 책을 한 권씩은 들고 다니는 습관도 생겼다.


그렇지만 최근 시간이 없다, 주로는 정신이 없다는 등의 이유로 내가 열심히 쌓아온 독서 습관과 멀리 떨어지는 일이 발생했다. 더는 내가 사랑하는 나의 좋은 습관을 잃어버리고 싶지 않았다. 어째서인지 쌓기는 어려운데 잃기는 정말 쉽다. 하지만 되찾으면 된다. 


이미 들인 습관은 처음부터 다시 쌓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 조금 손만 봐주면 기특하게도 원래대로 돌아와 준다. 



무언가를 해내고 싶다면, 꼭 널리 알리자


나는 이걸 서동요 기법이라고 부르고 싶다. 어쩐지 뭔가 있어 보이기 때문이다. 그 외의 다른 이유는 없다. 목표가 있다면 이를 이루고 싶을수록 주변 사람들에게 알릴 필요가 있다. 그럼 나의 체면을 위해서라도 노력하게 된다. 내적 동기가 가장 중요하긴 하지만 타인의 기대와 나의 평판과 같은 외부적 요인을 동기로 활용하는 것도 일종의 방법이다. 그렇게 몰입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내적 동기도 활성화된다.


그래서 독서클럽을 시작한 뒤 친구들에게 널리 알리고 다녔다. 나 이번엔 책 읽는다 이제 진짜 읽는다 따위의 발언이 주를 이루었다. 자격증 시험과 같은 것도 그냥 알린다. 아니면 시작을 안 하는 나를 알기에... 뭐 좋은 게 좋은 거다. 


다른 친구와 함께 책 읽기를 진행하고 토의를 위해 만난다는 독서클럽 자체도 동기부여가 되었다. 챌린저스 앱에 대해 이전 어떤 글에서 소개한 바가 있는데, 아마 그곳에서도 비슷한 챌린지는 있을 것이다. 같은 목적을 가진 타인과 함께하는 것은 목표를 밀고 나가는 데에 굉장한 원동력이 된다. 독서클럽이나 동아리, 학회 등의 경우는 내가 갑자기 그만둔다거나 할 수도 없기 때문에 책임감을 동력으로 이용할 수도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그냥 독서가 아니야, 나를 보듬는 독서야.


다만, 그냥 독서모임과 같았다면 '생각파업'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나의 사유에 여백을 되찾고 일상의 여유를 느끼고 싶었다. 최근 정신이 없었기 때문에 책을 읽지 못했는데, 억지로 독서하는 습관을 되찾아오자는 취지에서 글을 읽기 시작하면 이건 나를 혹사시키는 것이다. 


물론 책 읽기 좋다, 배우는 점도 많다. 그렇지만 그게 다가 아니다. 독서는 마음의 양식이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나는 독서를 통해 더 성숙하고 싶다. 성숙과 성장이라는 것은 내게 무엇이지? 내가 원하는 삶의 형태는 무엇이지? 


지금 원하는 것이 내 삶의 여유를 되찾고 나 자신을 인정하고 보듬어주는 일이라면, 나는 그에 걸맞은 행동을 해야 타당하다. 또 내가 추구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 독서를 하는 것이라면, 독서의 형태 또한 이전과는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SOLUTION: 너와 내 취향은 다르니까 대충 읽고 싶은 걸 읽자.


따라서 제안했다!


우리 원하는 책을 읽자, 독서 리스트를 정하지는 말자. 또 우리의 독서클럽은 책에 대한 우리의 흥미와 열망을 되찾기 위함이다. 그렇다면 재밌게 책을 읽되, 이를 거쳐 뭔가 달성해야 한다는 목적은 정하지 말자. 우리가 할 일은 그냥 평소처럼 좋아하는 책을 골라서 읽고, 즐기고, 정해진 시간에 모여서 상대방에게 그 내용을 공유하는 거야. 



멋지게 책을 읽는 나의 모습 (상상도) / ⓒunsplash


나와 친구의 독서 취향은 매우 달랐다. 나는 자기 계발서, 심리학, 뇌과학, 자연과학... 문학의 문자도 찾아볼 수 없는 책들이 취향이라면 친구는 소설을 사랑한다. 책을 가리는 것이 딱히 좋은 습관이라고 여겨지진 않지만 우리가 당장에 합의점을 찾아 같은 책을 읽기 시작했더라면 지속이 어려웠을 것이다. 


그도 그럴게 내게는 1주일에 한 권의 소설책을 읽을 자신이 없다. 친구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갑자기 과학책을 들이밀면 아마 던져버리고 싶을지도 모른다. 



책이 재미가 없으면 던집니다. (게임 아님)


이런 부분에서 우리의 독서클럽은: 목적 없이 현재 책 읽는 시간을 즐기면 된다가 취지이므로 재미가 없는 책은 냅다 던져버릴 수 있다. 하지만 취향이 반대인 우리, 내가 던진 책이라도 다른 친구는 재미있게 읽어준다. 따라서 독서 클럽이 시작되고 한 주가 흐른 뒤 내가 경제 자기 계발서를 들고 그 친구를 찾아갔을 때 그 친구는 역사의 깊이가 담긴 소설책으로 나를 맞이해 주었다. 그게 얼마나 좋은 취향의 조화인지 모른다. 그날 꽤나 흥미진진한 시간을 보냈다. 



평가:

책을 몇 권 격파하고 나니 점점 다음 책 고르기가 어렵다. 또, 바쁠 땐 활자가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하지만 어쨌든 책 읽는 시간은 내가 성장하며 휴식하는 시간으로, 꽤나 뿌듯하다.

마음이 맞는 나와 친구에게 박수.

매거진의 이전글 08. ¡Hablo español! 언젠가 이 말을 꼭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