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정은 돈으로 주세요"
오후 2시의 사무실
신입 직원이 귀에 이어폰을 꽂은 채 모니터를 응시합니다. 부장님은 그 모습을 보며 혀를 차거나, 부르기를 주저합니다.
“저 친구는 일이 장난인가?”
기성세대에게 이어폰은 단절이자 무례입니다.
하지만 청년들에게 노이즈 캔슬링 이어폰은 소란스러운 사무실에서 유일하게 나만의 공간을 확보하는 디지털 파티션입니다.
그들은 이어폰으로 노래를 듣는 것이 아닙니다.
불필요한 감정 소모, 업무와 무관한 참견,
그리고 “우리 가족 같은 회사지?”라는 식의
은근한 가스라이팅을 차단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차단막 뒤에서 그들은 조용히
조용한 퇴사를 준비합니다.
사직서를 내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해고하는 것입니다.
조용한 퇴사는
직장을 그만두는 것이 아닙니다.
직장에서 영혼을 분리하는 것입니다.
정해진 업무는 완벽하게 처리하되,
그 이상의 초과 근무나 열정은 단호히 거부하는 태도. 이것은 게으름이 아니라,
아주 철저한 계산의 결과입니다.
심리학의 공정성 이론에 따르면, 인간은 자신의 투입(노력)과 산출(보상)의 비율이 타인과 비슷할 때 안정감을 느낍니다.
하지만 지금의 청년들은 부모 세대처럼 회사가 내 인생을 책임져주지 않는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압니다.
평생직장이라는 신화가 깨진 자리,
“회사가 성장하면 너도 성장한다”는 말이
거짓임을 깨달은 자리에서, 그들은 묻습니다.
“보상은 최저인데, 왜 열정은 최고를 요구합니까?”
그들의 소극적 태도는,
불공정한 거래에 더 이상 내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겠다는 에너지 보존 법칙의 발동입니다.
“어디까지가 내 업무이고,
어디서부터가 당신의 감정인가?”
상사의 기분을 맞춰주는 것
회식 자리에서 분위기를 띄우는 것
주말 등산에 따라가는 것
기성세대는 이를 사회생활이라 불렀지만
지금 세대는 이를 영역 침범이라 부릅니다.
이어폰을 꽂는 행위는 타인의 과제가 내 안으로 침범하지 못하도록 선을 긋는 시각적 경고입니다.
“업무 지시는 메신저로 주세요.
감정 쓰레기는 받지 않습니다.”
그들은 이어폰을 통해
업무라는 본질에는 집중하되,
관계라는 껍데기는 걷어내려 합니다.
그것은 조직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조직 안에서 ‘나’를 지키며 롱런하기 위한 그들만의 생존 전략입니다.
기성세대는 묻습니다.
“요즘 애들은 왜 이렇게 열정이 없어?”
아닙니다.
그들은 퇴근 후 그 누구보다 뜨겁게 삽니다.
러닝 크루에서 땀을 흘리고
사이드 프로젝트로 밤을 새우고
유기견 봉사 활동을 갑니다.
열정이 사라진 것이 아닙니다.
열정을 투자할 대상이 바뀐 것입니다.
과거에는 회사가 나의 정체성이자 전부였지만,
지금의 회사는 내 삶을 지탱하기 위한 수단일 뿐입니다.
내 삶의 주도권이 없는 곳에 열정을 쏟아붓는 것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것을 그들은 본능적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회사에서는 절전 모드로 존재하고,
회사 밖에서 비로소 로그인합니다.
이어폰을 꽂고 모니터만 바라보는 후배가 야속하게 느껴지시나요? 하지만 한 번쯤 생각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그동안 ‘가족 같은 회사’라는 명분 아래,
너무 많은 희생과 감정 노동을 강요해 온 것은 아닐까요? 그들이 귀를 막은 것은 소통을 거부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무례한 요구들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일지도 모릅니다.
조용한 퇴사는
나를 지키기 위해 스스로 그은 정지선입니다.
“나를 갈아 넣어 회사를 키우는 시대는 끝났다”는 선언입니다.
그들의 이어폰을 억지로 빼려 하지 마세요.
대신,
이어폰을 꽂고도 몰입할 수 있는 명확한 업무와
그 노력에 합당한 공정한 보상을 보여주세요.
그때 비로소
그들은 스스로 이어폰을 빼고
당신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것입니다.
공정함이야말로 이 시대의 새로운 열정의 조건이니까요.
여러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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