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 준비생들과 면담을 하다 보면
장래 희망을 묻는 질문에 약속이라도 한 듯 똑같은 대답이 돌아옵니다.
“그냥 남들처럼, 평범하게 사는 게 꿈이에요.”
번듯한 직장에 다니고
적당한 시기에 결혼하고
내 집 하나 마련해서 아이 키우며 사는 삶.
예전에는 그것이 인생의 기본값 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청년들에게 그 삶은
모든 운과 노력을 쏟아부어야 닿을까 말까 한
기적값에 가깝습니다.
그들이 말하는
평범하게 살고 싶다는 말은
소박한 바람이 아닙니다.
“이 거친 파도 속에서 제발 익사하지 않고 싶다”는
생존을 향한 절박한 비명입니다.
우리 사회에는 기이한 현상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평균의 인플레이션입니다.
SNS와 미디어가 보여주는 보통의 삶은 이미 상위 10%의 삶입니다.
“30대라면 명품 가방 하나쯤은 있어야지”,
“신혼집은 서울 아파트 전세 정도는 되어야지”
“일 년에 한두 번 해외여행은 가야지.”
이런 말들이 보통이라는 이름표를 달고 전시될 때,
실제 평균에 해당하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순식간에 평균 미달로 전락합니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상향 비교가 만든 집단적 박탈감이라고 부릅니다.
우리는 너무 높은 곳에 그어진 평균선을 바라보며
그 선에 닿지 못한 나를 낙오자라고 스스로 낙인찍습니다.
“중간만 가라”는 말은 이제 위로가 아니라
“죽을 만큼 노력해야 겨우 남들 흉내라도 낼 수 있다”는 가장 잔인한 채찍질이 되었습니다.
『미움받을 용기』로 유명한 아들러 심리학에는 ‘평범해질 용기’라는 개념이 등장합니다.
우리는 왜 평범해지는 것을 그토록 두려워할까요?
아들러는 그 이유를 우월성 추구의 왜곡에서 찾습니다.
남보다 특별해야만, 남보다 나아야만
내 존재 가치가 증명된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평범함을 무능함이나 지루함과 동의어로 착각합니다.
하지만 아들러가 말하는 평범함은 남들 평균에 맞추는 삶이 아닙니다.
“특별하지 않아도 괜찮다”
“굳이 남들에게 나를 증명하지 않아도 나는 가치 있다”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자기 수용의 태도입니다.
지금 청년들에게 필요한 건
남들만큼 사는 평범함이 아니라
나답게 사는 평범함입니다.
세상이 정해놓은 기준선에 도달하지 못해도
오늘의 나를 긍정할 수 있는 그 단단한 마음 말입니다.
우리는 모두 다르게 태어났는데
왜 모두 같은 곳(평균)을 향해 달려야 할까요?
평범하게 사는 것이 꿈이라는 말 속에는
튀지 않고 안전한 무리에 속하고 싶다는 소속감의 욕구가 숨어 있습니다. 하지만 그 안전함의 대가는 너무 큽니다.
바로 나 자신을 지워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는
평균이라는 폭력적인 잣대를 걷어내야 합니다.
연봉이 평균보다 적어도 내 워라밸이 만족스럽다면 그것이 나의 행복이고, 자가 아파트가 없어도 내 취향이 담긴 방이 있다면 그것이 나의 안식처입니다.
행복의 기준을
세상의 평균에서 나의 만족으로 옮겨오는 것.
그것이 평균 올려치기에 대항하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혹시
“남들 다 하는데 나만 못한다”며 밤잠 설치고 계신가요?
그 남들은 실재하지 않는 허상일 가능성이 큽니다.
SNS 속 편집된 하이라이트와
나의 비하인드 씬을 비교하며 괴로워하지 마세요.
당신이 오늘 아침
무거운 몸을 일으켜 출근한 것
밥을 챙겨 먹은 것
친구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준 것...
그 모든 사소한 일상이 모여
당신이라는 고유한 우주를 지탱하고 있습니다.
당신은 이미 충분히 치열하게 살아내고 있습니다.
세상이 말하는 평범함에는 도달하지 못했을지 몰라도, 당신은 이미 당신만의 방식으로 위대하게 하루를 완성했습니다.
그러니 부디
평균이 되려 하지 말고, 온전한 당신이 되세요.
평범함은 도달해야 할 고지가 아니라
지금 발 딛고 선 당신의 일상을 수용하는 태도니까요.
여러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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