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결이 끝난 사람들

첫대면

by 한가을

8월 어느 월요일 아침


사무실의 공기는 주말의 흔적을 채 털어내지 못한 채 무겁게 가라앉아 있다. 각자의 책상 앞에 앉은 동료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낮은 한숨을 삼키며 모니터 속으로 침잠한다. 누구 하나 먼저 침묵을 깨지 않는 이 정적 사이로, 8월의 건조한 열기만이 창틈을 비집고 들어온다.


내 책상 뒤쪽. 좁게 열린 창문 틈으로 불청객 같은 연기가 스며든다. 1층 흡연구역에 모여든 대상자들이 내뱉은 담배 연기다. 바람을 타고 2층 창가로 거슬러 올라온 그 매캐한 잔상은 사무실의 적막을 휘저으며 나의 호흡을 방해한다. 누군가의 폐부를 거쳐 나온 타르 냄새가 옷깃에 달라붙는 느낌이 싫어, 나는 의자에서 일어나 창문을 억세게 닫아버린다.


탁--

단절의 소리와 함께 소음과 연기는 유리창 너머로 유배된다. 하지만 등 뒤에서 쏟아지는 햇살은 여전히 목덜미를 뜨겁게 달구고, 그 열기 속에서 한 남자가 다가와 내 앞에 멈춰 선다.


50대 중반의 박 씨.

그의 낡은 운동화가 바닥을 지익, 직- 하며 문지르는 소리가 건조한 정적의 표면을 날카롭게 긁어낸다



“법원에서 판결 받았는데...

뭐 신고하러 가라 카던데요. 여기가 맞습니까?”


그는 바깥 골목의 달궈진 아스팔트 열기를 옷깃에 묻혀 들어와 내 책상 앞 낡은 의자에 엉덩이를 걸친다.


죄명은 강제추행

박 씨는 내 앞에서 '아무것도 모른다'는 무력한 표정을 가면처럼 빌려 쓰고 있었다. 그의 빳빳한 침묵 속에서 나는 그가 가져온 범죄의 냄새를 가늠한다.


탁자 위에 놓인 빈 신고서

박 씨는 굵은 손으로 볼펜을 쥔 채 종이를 이리저리 뒤척인다. 빳빳한 종이의 모서리가 그의 지문 끝에서 소리 없이 짓눌려 구겨진다.


“주무관님, 제가 이런 곳은 생전 처음이라서요.

도무지 뭘 써야 할지 모르겠네... 죄명이니 판결 기간이니... 그런 걸 제가 어떻게 알겠습니까? 좀 도와주십시오.”


도움을 청하는 말투였지만, 그 안에는 자신은 이런 범죄와 전혀 상관없는 사람이라는 강한 부정이 깔려 있었다. 입으로는 도움을 구하면서도, 그의 눈빛은 쉴 새 없이 내 기색을 살피고 있다. 내가 그의 실체를 어디까지 파악하고 있는지 가늠하려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 불쾌한 탐색이 내 피부에 와닿기 전에 나는 차갑게 말을 잘랐다.


“박대기 씨,

본인이 받은 판결입니다.

기억나는 대로 적으세요.

나중에 판결문 오면 대조해서 다시 확인할 거니까요.”


내 목소리는 낮고 건조하다.

친절을 베풀 여유도, 그를 다그칠 힘도 낭비하고 싶지 않은 무심함.


박 씨는 쩝, 하고 입맛을 다시더니 구부정하게 등을 숙이고 펜을 움직이기 시작한다. 사각, 사각. 종이를 파고드는 펜촉의 소리가 혈관을 타고 흐르는 듯 선명하다. 흰 종이 위로 ‘강제추행’이라는 네 글자가 낙인처럼 찍힌다.


그가 자필로 채운 신고서를 내 쪽으로 스윽 내민다.


이제부터가 진짜다.


그를 내 정면에 앉히고 전산 등록을 시작하는 순간, 책상 하나를 사이에 둔 공기의 밀도가 돌연 바뀐다. 아까의 비굴했던 가면은 온데간데없다. 박 씨는 의자 깊숙이 등을 기대며 삐딱한 자세를 잡는다.


시선은 내 눈을 교묘히 빗겨 나간다.

자신이 받은 집행유예라는 관용을 법의 무력함으로 오해한 자 특유의 오만함이 그의 땀구멍을 타고 슬금슬금 스며 나온다.


나는 키보드를 두드리던 손을 멈춘다.

그리고 내 시선을 오직 그의 눈동자 정중앙에 고정시킨다. 방금 닫은 창문 너머로 여전히 아른거리는 아지랑이가 우리 사이를 희미하게 가로지른다.


“박대기 씨,

자세 바로 하세요.

그리고 제 눈 보세요.”


낮지만 날 선 어조.

박 씨의 눈꺼풀이 미세하게 파르르 떨린다. 그는 못 들은 척 고개를 돌리려 하지만, 나는 그의 시선이 내 눈동자에 닿아 멈출 때까지 숨조차 쉬지 않고 그를 응시한다.


“지금부터

제 말 잘 들으세요.

제 눈 똑바로 보세요.”


박 씨의 시선이 마지못해 내 눈에 머문다.

당황과 불쾌함, 그리고 본능적인 경계가 뒤섞인 눈동자. 나는 그 흔들림의 결을 놓치지 않고 끝까지 응시하며 기선을 제압한다.


보호관찰은 종이 위의 행정이 아니다.


그것은,

짐승 같은 본능을

법의 차가운 테두리 안에 가두려는 물리적인 사투다.


이 좁은 책상 앞에서 주도권을 뺏기면, 남은 2년은 걷잡을 수 없는 무법지대가 된다.


나는 박 씨가 제출한 신고서를 전산 속에 탁, 탁- 거칠게 박아 넣었다.




우리 곁의 불편한 이웃들에 대한 낯선 이야기입니다.

※모든 사례는 개인정보보호를 위해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철저히 재구성하였습니다.


#법무부 #보호관찰 #공무원 #보호직 #공안직 #범죄심리 #범죄예방 #사회복귀 #무너진심리 #불편한이웃 #많관부

월, 일 연재
이전 01화[프롤로그]나는 보호관찰관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