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결이 끝난 사람들

민낯

by 한가을

신고를 마친 박 씨는,

서약서 앞에서 다시 몸을 비튼다.


'주거지에 상주하고 생업 활동에 종사할 것.' 종이 위를 훑던 그의 시선이 멈춘다. 낮게 웅얼거리는 그의 숨소리가 텁텁하게 면담실의 공기를 오염시킨다.


에어컨 바람에 담배 연기는 씻겨 나갔지만, 그가 걸치고 온 삶의 악취는 냉기 속에 섞여 기묘한 불쾌감을 남긴다. 그는 결국 참았던 헛웃음을 피식- 내뱉으며 의자 다리를 끼익 문지른다.


“주무관님, 지금 당장 일이 없는데 어떡합니까?

그리고 이사 가는 것도 일일이 미리 신고하라는 겁니까?”


그의 말투는 껄렁하다.

자신은 아무것도 모르니 당신이 알아서 대안을 내놓으라는, 무책임하고도 끈적한 태도. 나는 그의 얼굴을 보지 않은 채 키보드 위로 시선만 둔다.


“맞습니다.

이사 계획이 있으면 사전에 신고하셔야 합니다.”


내 단호한 대답에 그는 의자 깊숙이 몸을 묻는다. 이어지는 보호관찰관의 지도·감독에 순응하고 방문하면 응대할 것에 대한 설명을 들으며, 박 씨의 눈동자에 노골적인 불만이 고인다.



“아니, 그럼 집에는 언제 오시는 건데요?

제가 집에 없으면 어떡하실 건데요?”


“출장은 불시에 갑니다.

방문했을 때 없으면 확인서를 남길 것이고, 정당한 사유 없이 응대하지 않으면 준수사항 위반입니다.”


“우와... 이거 뭐 자유가 하나도 없네요.

보호관찰 이거 꼭 받아야 합니까?”


그의 목소리에는 법집행을 선택 사항 정도로 여기는 오만함이 똬리를 틀고 있다. 나는 키보드 위에 놓았던 손을 떼고 천천히 의자에 몸을 기댔다.


에어컨의 낮은 기계음이 유난히 선명하게 고막을 긁는다. 침묵이 깊어질수록 그 소음은 오히려 더 거대해져 면담실의 정적을 무겁게 짓누른다.


박대기 씨, 지금 판결에 불만이십니까?”


“아니, 내 말은 너무 빡빡하다는 거지...”


“지금이라도 판결에 불복하고 항소하시겠습니까? 아니면, 판결 자체를 거부하시는 걸로 이해하면 되겠습니까?"


내 서늘한 질문에 박 씨의 입이 닫힌다.

판결 거부라는 단어가 주는 실질적인 무게.

즉, 다시 수감될 수도 있다는 현실적인 위협을 그제야 인지한 모양이다. 그는 내 시선을 피하며 슬그머니 말려 들어가는 어깨를 추스른다.



기 싸움은 나의 판정승이다.

이제 이 인간을 낱낱이 해부할 시간이다.

나는 기계적인 무심함을 유지하며 다시 키보드에 손을 올린다. 하루에도 수십 명을 마주해야 하는 반복적인 노동 속에서도, 내면의 촉수는 예리하게 깨어난다.


내 눈은 흔들리는 그의 눈빛, 삐딱하게 기운 자세, 그리고 틱틱거리는 말투에 배어 있는 비협조적인 심리 상태를 실시간으로 읽어낸다. 낡은 셔츠의 소매 끝과 그 사이로 언뜻 비치는 거친 삶의 흔적까지, 모든 것이 나의 기록 대상이다.


“과거에 보호관찰 받으신 적 있습니까?”


“...없습니다.”


“범죄 전력은 몇 회 정도 됩니까?”


“…성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나는 그의 출생부터 성장 과정, 가족관계, 그리고 현재의 직업까지 파고든다. 초기 면담은 단순한 정보 수집이 아니다. 그가 살아온 궤적을 훑으며, 어디서부터 이 인간의 삶이 뒤틀렸는지 그 틈새를 찾아내는 과정이다.


“현재 직업은요?”


“아까 말씀드렸잖습니까, 지금은 없다고...”


귀찮다는 듯 내뱉는 박 씨의 말 한마디, 책상 밑에서 꼼지락거리는 운동화 앞코, 불안하게 움직이는 손가락 하나를 나는 놓치지 않고 낚아챈다.


“몸에 문신 있으십니까?”

무심한 질문에 박 씨가 움찔하며 나를 본다.


“...네.”


“어디 어디 있습니까?”


“양쪽 팔뚝이랑... 등쪽에 있습니다.”


“어떤 모양입니까?”


그는 귀찮다는 듯 셔츠 소매를 걷어 올린다. 살을 파고든 검푸른 잉크의 궤적. 나는 그 문신의 크기와 형태를 무표정하게 화면에 옮겨 적는다.


면담실의 정적 속에서 나는 박대기라는 인간의 파편들을 모아 하나의 실체를 조립한다.


막연한 서류상의 존재였던 그는,

이제 우리 사회가 외면했던 민낯을 드러내며, 내 관리 명단 위에 생생하게 살아 움직이기 시작한다.





우리 곁의 불편한 이웃들에 대한 낯선 이야기입니다.

※모든 사례는 개인정보보호를 위해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철저히 재구성하였습니다.


#법무부 #보호관찰 #공무원 #보호직 #공안직 #범죄심리 #범죄예방 #사회복귀 #무너진심리 #불편한이웃 #많관부

월, 일 연재
이전 02화판결이 끝난 사람들